항목 ID | GC40080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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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嶽大師 |
영어공식명칭 | Inak Daesa |
이칭/별칭 | 의선(義宣),의소(義沼),의첨(義沾)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승려.
본관은 성산(星山). 속성(俗姓)은 이씨(李氏), 속명(俗名)은 의선(義宣)·의소(義沼), 법명(法名)은 의첨(義沾), 호(號)는 인악(仁嶽). 아버지는 이휘징(李徽澄)이고,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이다. 고려조 개국벽상공신 대광사공 성산 부원군(開國壁上功臣大匡司空星山府院君) 이능일(李能一)의 23세손으로 알려져 있다.
인악대사(仁嶽大師)[1746~1796]는 1746년(영조 22) 대구도호부 인흥촌[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였고,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1763년(영조 39) 용연사(龍淵寺)에서 공부하다, 이곳 승려들의 엄숙함을 보고 가선헌공(嘉善軒公)에게 출가(出家)하였는데, 이때 나이 18세였다.
1767년(영조 43) 벽봉(碧峰)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금강경(金剛經)』, 『화엄경(華嚴經)』 등 대승경(大乘經)을 배웠다. 서악(西岳)·홍유(泓宥)·농암(聾巖) 등에게 수학하였으며, 1768년 벽봉으로부터 두 번째 계를 받은 뒤 강당을 열고 설법을 시작하였다. 이후 영원암(靈源菴)으로 가서 운파(雲坡)에게 선문염송(禪門拈頌)을 배웠으며, 1770년 설파(雪坡)에게 세 번째 계를 받았다. 이후 팔공산(八公山)·계룡산(鷄龍山)·불영산(佛靈山) 등의 산을 유력(遊歷)하며 불법을 강의하였다. 1784년(정조 8)에는 은해사(銀海寺) 운부암(雲浮庵)에 주석하였다.
1790년(정조 14) 수원용주사(龍珠寺) 창건 때 불상의 개안 의식(開眼儀式)을 주재하고 불복장원문(佛腹藏願文)을 지었다. 용주사는 정조(正祖) 임금의 아버지인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원당(願堂)으로, 정조가 인악대사의 문장을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고 한다. 1796년(정조 20) 비슬산 명적암(明寂庵)에서 법랍 34세로 입적하였다.
문집으로 『인악집(仁嶽集)』 3권 1책이 전한다. 문집에는 「용주록(龍珠錄)」을 비롯하여, 인악대사가 지은 여러 사찰의 중창기(重創記)가 수록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에 위치한 용연사에 부도(浮屠)가 있다. 부도에는 ‘인악대사탑(仁嶽大師塔)’이라고 새겨져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화동에 위치한 팔공산동화사(桐華寺)에 인악대사비(仁嶽大師碑)가 건립되어 있다. 인악대사비는 1808년(순조 8) 건립되었는데, 당시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있던 김희순(金羲淳)이 비문을 지었다. 또한 동화사에는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대구 동화사 인악당 대사 의첨 진영(大邱桐華寺仁嶽堂大師義沾眞影)[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61호]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