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기존에는 남쪽 국도 37호선을 사이에 두고 가막산과 서로 대치하고 있는 오대산성이 가막산성 또는 할애비성이라 불려왔다. 그런데 2002년 지표 조사에 의해 오대산성과 가막산성은 별개의 산성으로서 오대산성은 할미성으로, 가막산성은 할애비성으로 불려졌음이 확인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의 가막산성은 음성-괴산 사이...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남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연원역 소속의 감원역(坎原驛)이 있었던 자리. 조선시대에는 주요 도로에 대개 12㎞ 떨어진 거리마다 역을 두었는데, 역에는 마필(馬匹)과 역정(役丁)을 갖추어 공문을 전달하였으며, 공무 여행자에게 마필을 제공하거나 관물(官物)의 수송까지 담당하였다. 음성 지역에는 충주 연원찰방도에 속한 14개 역 중 용안역(用安驛)과 감원역이...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거석(巨石) 문화의 산물로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무덤 유적으로 무덤방의 위치에 따라 탁자식·바둑판식·구덩식 고인돌로 구분된다. 음성 지역에서는 고인돌의 발견 예가 많지 않으나 바둑판식 고인돌이 주를 이루고 탁자식이나 개석식 고인돌도 확인된다. 유적은 음성군 소이면 소재지에서 국사봉 방향으로 가다 이르는 갑산리...
-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선사시대부터 고려왕조의 통일 이전까지의 역사. 역사상의 고대라는 개념은 서양의 역사시대 구분을 원용한 것으로, 고대 노예제사회 혹은 엄격한 신분제사회의 성립과 해체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에서 문자기록 이전의 시기는 선사시대로, 문자기록 이후는 역사시대로 구분하는데, 고대라는 개념 속에는 선사시대를 포함하여 신분계층사회의 성립 과정과 고대적 사회체제...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청주고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자는 군명(君明), 호는 퇴암(退庵). 할아버지는 중랑장 고천련(高天連), 아버지는 고유렴(高有廉)이다. 부인은 순천박씨로 박장생의 손녀이다. 동생으로 고덕칭(高德稱), 고덕부(高德符)가 있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39년(세종 21) 강음현감(江陰縣監)에...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고덕수의 묘비. 고덕수는 자는 군명(軍明), 호는 퇴암(退庵),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중랑장 고천연(高天連)의 손자이다. 1432년(세종 14)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과 연풍현감을 지냈다. 1456년(세조 2)에 취금헌(翠琴軒) 박팽년과 재종매부(再從妹夫)라는 이유로 화를 입어 관(官)에...
-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역사. 고대 말기 지방 호족의 성장으로 통일신라가 분열되면서 시작된 후삼국시대에서 음성 지역은 서기 900년경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에 예속되었다. 그후 폭정을 일삼던 궁예가 쫓겨나고, 서기 918년 왕건이 여러 지역 호족들을 규합하고 인심을 수렴하는 데 성공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음성군이 속한 충청북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주. 자는 필경(弼卿).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호조참의 고경후(高景厚)이다. 형제는 고상설(高相說)이 있다. 고몽설(高夢說)은 나면서부터 도(道)를 알았고, 지략이 있었으며, 배우지 않고도 능히 천문에 통하고 팔진도(八陣圖)까지 통하였다. 1671년(현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효백(孝伯), 호는 삼소헌(三笑軒).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9세손이고, 아버지는 고우한(高羽漢)이며, 어머니는 순천박씨이다. 고봉래(高鳳來)는 품성이 온화하였으며, 12세에 학문에 몰두하여 몇 년 만에 문리(文理)에 통달하였다. 17세가 되면서는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었다. 후학을 가르치니 문하에서 많은...
-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선사시대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장례법은 매장·골장·화장·초장 등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물질적 증거로 남은 고분의 기본 장례법은 매장법이다. 초기의 매장법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검을 안치한 후 흙으로 덮어버리는 간단한 움무덤이며,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계속 전시대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선사시대의 분묘군은 주로 평야 지대나 낮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주. 자는 태경(台卿), 호는 퇴암(退庵).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증손이고, 호조참의 고경후(高景厚)의 둘째 아들이다. 형제는 고몽설(高夢說)이 있다. 고상설(高相說)은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첨정(僉正)을 거쳐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이르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법도에 맞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청주. 자는 응수(應壽), 호는 취병(翠屛) 또는 왕곡(枉谷). 고조부는 현감 고덕수(高德秀), 아버지는 고준(高遵)이다. 형으로 의병장 고응연(高應淵)이 있다. 1561년(명종 16) 식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힘이 세고 기골이 장대하여 수문장(守門將)으로 있었다. 선조 초 용호영장(龍虎營將)에 이어 내금위장으로 있다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청주. 자는 원약(元躍). 고조부는 현감 고덕수(高德秀), 아버지는 판결사 고준(高遵)이다. 동생으로 고응섭(高應涉)이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내금위장으로 있던 아우 고응섭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조령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녹훈되고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를 제...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사과(司果) 고준(高遵)이다. 고응잠(高應潛)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을 호종하였다. 인제현감(麟蹄縣監)으로 있다가 1604년(선조 37) 나이가 들어 백성을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여 체차(遞差)되었다.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음성읍지(陰城邑誌)』에 전한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 연풍현감 고덕수(高德秀)의 7세손이다. 조부는 주부 고응연(高應淵)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고영(高暎)이다. 처부는 무인 조영렬(趙英烈)과 방어사 이직(李溭)이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추천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글을 잘하고 인품이 고결하여 선비들이 많...
-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이 약 30,000여 기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지방에 집중적으로 20,000여 기가 밀집 분포되어 있다. 한국의 고인돌은 외형적 형태에서 크게 탁자식·기반식·개석식 등 3종류로 구분된다. 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 자는 순칠(舜七), 호는 설남(雪南).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11세손이고, 아버지는 충훈부도사 고익현(高益顯)이다. 고재선(高在璿)은 문학으로 이름이 났으며,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여 일대의 추앙을 받았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3년간 시묘하였다. 한시 「가섭사(迦葉寺)」와 1890년(고종 27)에 지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구만재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일월리, 지금의 쌍봉리에 은거하였다. 구만재가 살던 곳을 명촌(明村)이라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구계리에 있다.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 행장을 지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와 충도리 사이 국사봉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고문헌 기록에는 국사봉 산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일제시대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은 금고리의 서남 약 600간 거리의 국사봉 위에 있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암석 사이를 토루로 이어쌓았다. 둘레는 170간이고 높이는 4척이며 거의 무너졌다.”고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음성과 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걸의 묘비. 권걸(權傑)의 본관은 안동으로, 양촌 권근(權近)의 증손,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제(權踶)의 손자이며, 길창부원군 권람(權擥)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화강암 대석 위에 백대리석으로 비신과 상부를 조각하였다. 전체 높이는 126㎝로 비신은 높이 81㎝, 너비 38㎝...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권돈(權墩), 아버지는 함흥도호부사 권급(權伋)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배 양성에 힘썼다. 27세로 일찍 죽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묘소가 있다. 좌승지겸경연참찬관(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증조부는 권부(權溥)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비.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지석. 권근은 1409년(태종 9) 2월에 서거했으며, 같은 해 4월에 경기도 양주군 오포면(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으로 예장(禮葬)하였는데 이때 묘지석이 만들어졌다. 이후 1444년(세종 26) 3월 충주로 이장을 하였는데 이 묘지석은 가져가지 못하고 광 속에 보관하다가 1965년에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권근 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 권근(權近)의 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증판삼사사(贈判三司事) 이존오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의정부우찬성 권제(權踶), 차남은 길창군 권규(權跬), 삼남은 한성부소윤 권준(權蹲)이다. 딸은 판종부시사 최주(崔宙)와 결혼을 하였다. 묘비는 1444년(세종 26)에 건립되었다. 8...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사중(思中). 아버지는 권돈(權墩)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출생하였다. 1735년(영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사랑(備邊司郞)이 되고, 선전관·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지냈다. 1743년(영조 19)에 가산군수를 하였고 이어 삼척군수·영광군수를 역임하고 경흥도호부사(慶興都護府使)를 지냈다. 묘소는 충청...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응선(應善).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직 권익(權翊)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살았다. 음보로 기용되어 1590년(선조 23) 금산제원찰방,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역임하였으며 치적으로 비단을 하사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상주판관(尙州判官)으로 동래부(...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인 권념의 묘비. 권념(權念)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경(仲經), 초휘(初諱)는 권응(權應)이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정난공신 안천군 권준의 차남이다. 모친은 영춘현부인 해주정씨(永春縣夫人 海州鄭氏)로, 정도공(貞度公) 정역(鄭易)의 딸이다. 음보로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거쳐 옥천(沃川), 마전(麻田) 등...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념 부인 강화최씨의 묘비. 강화최씨(江華崔氏)는 마전군수 권념(權念)의 부인으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어머니는 강씨(姜氏)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1495년에 별세하였으며, 묘비는 1497년에 세워졌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부는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는 167㎝로, 비신 높이 11...
-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권람(權擥)[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넓었으며, 뜻이 크고 기이한 계책이 많았다.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다. 35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다가, 1450년(문...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람의 묘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이다. 양촌 권근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참모로서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1등 공신이 된 후 좌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이 되었다. 화강암 1매로 만들어졌다. 전체 높이는 194㎝로, 비...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權擥)의 신도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감찰(監察)을 거쳐 교리(校理)를 지냈다. 계유정란(癸酉靖難)에 앞장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책록되었고, 세...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의 부인 고성이씨의 묘비. 고성이씨는 문정공(文貞公) 이암(李嵓)의 손녀이며,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원(李原)의 딸이다. 1495년 81세로 졸하였으며, 영원군부인(寧原郡夫人)으로 봉해졌고, 2남 8녀를 두었다. 남편 권람(權擥)의 묘비와 동일하다. 묘소 앞쪽, 오른쪽에 위치한다. 화강암 1석을 이용하여 비면과 상단 장식...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료(權憭)의 묘비. 권료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명(彦明)이다. 양촌(陽村) 권근의 증손, 안천군(安川君) 권준(權蹲)의 손자이며 마전군수(麻田郡守) 권념(權念)의 장남이다. 모친은 강화최씨(江華崔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음보로 결성현감을 역임하였다. 묘비는 대석을 포함하여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1771년(영조 4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 5월에 제주에 선전관으로 갔다 온 후 그 공으로 6품으로 승진되었다. 명천현감·위원군수를 거쳐 여산부사를 지냈다. 여산부사 재임시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그 곳 사람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충청북도 음성군...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자룡(子龍), 시호는 안양(安襄). 할아버지는 양촌 권근(權近)이고 아버지는 지재(止齋) 권제(權踶)이다. 형으로 권람(權擥)이 있다.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하다가 음보(蔭補)로 현릉(顯陵)의 능지기가 되었고 후에 상서원승(尙瑞院丞)에 이르렀다. 형 권람과 함께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1455년(세조 원년) 수충경절좌익공신(輸忠勁節...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권부의 묘비. 총 높이는 127㎝이며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비석의 규모는, 비신(碑身) 높이 112㎝, 앞면 52㎝, 측면 20㎝이고, 방부(方趺)는 높이 15㎝, 앞면 74㎝, 측면 43㎝이다. 비석 앞면에는 ‘조산대부행사헌부감찰권공지묘 영인양천허씨부우(朝散大夫行司憲府監察權公之墓 令人陽川許氏祔右)’라 쓰여 있다. 비석 뒷면에는 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창보(昌甫). 권연의 아버지는 권점(權點)이다. 권연은 1764년에 출생하였다. 성리학(性理學)을 전공하면서 향약의 범례(範例)와 장정(章程)을 모아 엮은 『향약장정(鄕約章程)』을 충실히 실천하였고 향토 문화의 발전과 후학을 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러한 치적을 인정받아 사후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되었다. 묘...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백도(伯道), 호는 국우재(鞠又齋). 할아버지는 권징(權徵), 아버지는 현령 권경(權憬)이다. 1616년(광해군 8)에 출생하였다. 수직(壽職)으로 수의좌위부사위(修義佐衛副司尉)를 받았다.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김운곡(金雲谷)·정포옹(鄭抱翁)과 교유가 두터웠다. 1655년 향년 40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 대봉...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인지(仁之). 아버지는 대사헌 권휴(權休)이다. 권인은 1650년에 출생하였으며, 용양위어모장군(龍驤衛禦侮將軍)을 역임하고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능산리에 있다....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고조부는 경흥도호부사 권급(權伋)이다. 1824년(순조 24)에 출생하였다. 1850년(철종 1) 무과에 급제하여, 1853년 선전관, 1861년(철종 12) 호조좌랑, 1879년(고종 16) 언양현감, 1883년 응천(凝川)[경상남도 밀양(密陽)의 옛 이름] 군수를 역임하였다. 1885년(고종 22) 통정대부가 되었고, 1889년(고종 26)에...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권자선의 묘비. 총 높이 160㎝로, 3단으로 되어 있는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높이 100㎝, 앞면 49㎝, 측면 15㎝이고, 하엽(荷葉)은 높이 45㎝, 앞면 56㎝, 측면 15㎝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15㎝, 앞면 78㎝, 측면 53㎝이다. 비석 앞면에는 ‘통훈대부행개천군수권자선지묘숙부인선산김씨지묘(通訓大夫行价川郡守權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성흥(聖興). 권휴(權休)의 아들이다. 권점은 선조의 유훈에 따라 도학(道學)에만 전념하였다. 향년 93세로 죽자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오위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五衛都摠府副摠管)에 증직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능산리 산직말에 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판사 이휴(李携)의 딸이다. 음보로 경승부주부(敬承府主簿)에 기용되었고 후에 감찰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정랑·예문관응교를 역임하고, 1416년(태종 16) 성균관사예, 1418년 의정부사인·전사소윤·세자시강원문학을 지냈다. 1419년(세종 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제의 묘비. 권제는 세종 때 집현전부제학, 사헌부대사헌, 한성부윤, 경기도관찰사, 이조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편찬에 참여하였다. 전체 높이 170㎝, 비신 너비 59.5㎝의 크기이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단 장식을 한 돌로 만들었다. 묘비 상단에는 7엽의 연화문과 연...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제(權踶)의 신도비. 권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중의(仲義),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아갔다. 1440년(세종 22)에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정인지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영의정에 추존되었고,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이런 업적을 기리고자 18대손 권오호...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주백(周伯), 호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권교삼(權敎三)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1848년(헌종 14)에 출생하였으며 여덟 살 때 부모를 잃었다. 1863년(철종 14)에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이 되었고, 1881년(고종 18) 의정부공사관이 되었으며 1883년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1884년 선전관으...
-
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순좌(舜佐). 아버지는 권일규(權一圭)이다. 1879년(고종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1892년(고종 29) 의정부종사관(議政府從事官)을 역임하고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녹도(鹿島)의 난에 종군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오미(五美).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해주정씨로 찬성 정이(鄭易)의 딸이다. 1422년(세종 4) 문음(門蔭)으로 종묘부정에 제수되고 1430년(세종 12) 호조좌랑이 되었다. 1434년(세종 16) 종부시판관(宗簿寺判官)으로 강원도와 함길도에 가서 기민 구제 상황을 시찰하였다. 사헌부지평, 1438년(세종 20) 경기경력, 144...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준의 묘비. 권준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오미(五美)로 양촌 권근의 4남이다. 1422년(세종 4)에 음보로 종묘서부승(宗廟署副丞)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대사헌(大司憲)이 되었고, 수충협찬정난공신에 오르고 안천군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 정헌대부(正憲大夫)...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준(權蹲)의 신도비. 권준의 본관은 안동이며, 권근의 아들이자 권제(權踶)의 동생이다. 시호는 안숙(安肅)이다. 1427년(세종 9) 감찰에 기용되었고, 1430년에는 호조좌랑이 되었다. 권준은 호조좌랑 당시 공법(貢法)이 제정되었을 때, 척박한 산과 밭은 매년 경작할 수 없는데도 평야 지대의 전답과 같이 취급할 경우 폐단이...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권철인(權徹仁)의 선정비. 권철인은 1844년(헌종 10) 예빈시(禮賓寺) 참봉(參奉)을 거쳐 음성현감에 부임했다가 1851년(철종 2) 7월 신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권철인 혜휼군민선정비는 재직시인 1850년(철종 1)에 세운 것이다.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음성향교 앞쪽에 다른 선정비들과 함께 나란히...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헌의 묘비. 권헌(權憲)의 본관은 안동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景公) 권제(勸踶), 할아버지는 익평공(翼平公) 권람(權擥)이며, 아버지는 길창군(吉昌君) 권걸(勸傑)이다.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음보로 전생서봉사(典牲署奉事)에 올랐고, 이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9...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호는 수졸재(守拙齋). 조부는 송암(松菴) 권징(權徵)이며, 아버지는 권경(權憬)이다. 용양위부사직(龍驤衛副司直)을 역임한 후 과거를 포기하고 우암 송시열·동춘 송준길·이유태과 더불어 학문하면서 영호계(永好契)를 맺어 교유하다가 회덕(懷德) 와촌(瓦村)으로 옮겨 은거하였다. 1680년(숙종 6)에 향년 68세로 졸하였다. 가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 자는 중옥(仲玉). 증조부는 군자감주부 김덕항(金德恒), 아버지는 선교랑 김기제(金起悌)이다. 부인은 천안전씨로 전이종(全爾宗)의 딸과 전주이씨로 별검 이성장(李星長)의 딸이다. 김각은 1672년(현종 13)에 무과에 급제하여 삼화도호부사(三和都護府使)를 지내고, 1695년(숙종 21)에 정평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가 되었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산. 호는 희근(希芹). 증조부는 주부 김덕항(金德恒), 아버지는 통덕랑 김기효(金起孝)이다. 어머니는 초계정씨로 음성현감 정경례(鄭景禮)의 증손녀이며, 부인은 전의이씨로 진사 이수전(李壽全)의 딸이다. 12세에 사서에 통달하여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통덕랑에 제수되었으나 평생 독서만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묘가 있...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삼(慶三). 오은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고종 때에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김환유(金煥維)이다. 타고난 품성이 효성스럽고 우애 있으며 가훈을 준수하였다. 아우 김기화(金基華)가 수십 리 거리를 다니며 공부하는데, 비를 막아주고 눈을 쓸어주고 따라다니며 보살필 만큼 우애가 깊었다. 1908년(순종 2...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경(德卿), 호는 우춘(又春)이다. 참판 김낙회(金樂會)의 손자이며, 참판 김태희(金泰熙)의 아들이다. 사천현감을 역임하던 중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었다. 김기명은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간 통곡하였고 열흘이 지나도록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골짜기에서 태어나 충(忠)을 본받지 않아...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기화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기화는 자가 국현(國賢)이고, 호는 춘파(春波)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김환유(金煥維)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김기화가 글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마음이 이상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이상한 물건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광산김씨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구(士久). 아버지는 군수(郡守) 김봉서(金鳳瑞)이다. 음보(蔭補)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한성에 살다가 1593년(선조 26)에 임진왜란을 피하여 처가가 있는 지금의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에 와서 머물렀다. 1599년(선조 32)에 한성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전쟁으로 집이 불타 없어졌다는...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광산김씨 음성 입향조 김덕항(金德恒)의 묘비. 김덕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군수(郡守) 김봉서(金鳳瑞)의 아들이다. 자는 사구(士久)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음보(蔭補)로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를 지냈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성에서 음성읍 초평리 처가인 남씨(南氏) 집으로 와서 우거(寓居)하였다....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호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김두하의 선정비(善政碑). 김두하 선정비(金斗河 善政碑)는 무진 사월(戊辰 四月)에 제작되었다. 김두하의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으나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음성현감(陰城縣監)을 역임한 것으로 보이며,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존경을 받은 듯하다. 총 높이는 145㎝이며 2단으로 이루어진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13㎝,...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명진의 불망비. 개석 및 방부 없이 비신만 존재한다. 비신(碑身)의 총 높이는 139㎝, 앞면 54㎝, 측면 22㎝이다. 비신 앞면에는 해서로 ‘수의김공명진영세불망비(繡衣金公明鎭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
통일신라시대 음성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전하는 서예가. 자는 지단(知端), 별명은 구(玖). 『삼국사기』권 48 열전 김생조에 부모가 두드러지지 않아 가계를 알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원통산 아래에서 오로지 글씨에만 정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낙엽에 먹물로 글씨를 썼는데 그 낙엽이 계곡으로 모여 계곡물이 검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세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 두문동충신 김자수(金自粹)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영유(金永濡)이고 아버지는 충주목사 김훈(金薰)이다. 어머니는 진천송씨로 군수 송학(宋翯)의 딸이고, 부인은 고성이씨로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아들은 김숙(金䃤), 김구(金瞿), 김저(金䃴)이...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청일(淸一), 호는 성와(惺窩). 아버지는 의관(議官)을 지낸 김정훈(金正勳)이다. 김수홍(金壽洪)은 최익현(崔益鉉)에게서 학문을 익혀 문장이 탁월하고 의리가 뚜렷하여 춘추회(春秋會)에서 유생들에게 예(禮)를 강술하였다. 문묘와 태교사(泰喬祠)에 봉안되었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백오(伯五).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예(司藝) 김예원(金禮源)이다. 김숭종은 일찍이 초시에 급제하여 생원으로 학문에 전념하면서 조광조·김정과 함께 경학을 토론하였다. 1519년(중종 14) 4월에 별시문과에 합격하였고 조광조가 신진사류를 기용할 때 기용되었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쫓기다 행...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구안동(舊安東). 자는 선여(善餘),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김두서(金斗瑞)이다. 김시경(金始慶)[1659~?]은 1682년(숙종 8)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08년(숙종 34)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 1709년(숙종 35) 사헌장령겸지제교(司憲掌令兼知製敎), 1716년(숙종 42) 승정...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아들은 학문에 힘써 인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른 김약온(金若溫)이다. 1070년(문종 24) 상서우승(尙書右丞)·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이어 서북로병마부사(西北路兵馬副使)가 되었다. 1074년에 태복시경(太僕寺卿)으로 사은사가 되어 송나라에 가서 고려 사신들이 이용하는 등주(登州)를 요(遼)의 이목을 피하기 위...
-
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명보(明甫), 호는 오소재(吾巢齋). 아버지는 좌찬성에 증직된 김로(金簵)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로 조헌(趙憲)의 딸이다. 김여량(金汝亮)[1603~1683]은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으로 사환을 시작하여 봉상시주부겸승문원박사(奉常寺主簿兼承文院博士)·성균관전...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열지(烈之), 호는 맹암(孟巖). 아버지는 상서(尙書) 김굉(金紘)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음성의 인물로 등재되어 있다. 김영렬(金英烈)[?~1404]은 1394년(태조 3)에 전서(典書)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그 때 연해를 노략질하는 왜구를 물리치는 계책을 올려, 1395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시은(市隱). 조부는 김태희(金泰熙), 아버지는 김기명(金基明)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음성의 인물로 등재되어 있다. 기개와 절의가 있었으며 사람을 사귀고 담론을 좋아하니 선비들이 다투어 서로 따랐으므로 큰 뜻을 세워 난정수계(蘭亭修稧)을 만들었다고 한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입지(立之). 할아버지는 소윤 김백은(金伯隱)이고, 아버지는 사직 김우전(金雨田)이다. 부인은 윤씨이며, 아들은 김숭종(金崇宗)이다. 1466년(세조 12) 급제하였고, 승문원주서(承文院注書)가 되어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69년(예종 1) 예문관검열, 1471년(성종 2) 승정원주서·춘추관...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장. 1905년 을사륵약이 체결되자 가산을 팔고 의병을 모집하여 1906년 3월경에 이교율(李敎律) 등 2인과 같이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귀흥리에 이르렀다. 이미 해가 졌는데 마침 일본 수비대 10여 명이 귀흥리 어느 집에 투숙한 것을 탐지하였다. 동행한 사람들과 밀의하고 심야에 적 보초병을 돌로 타살하고 무기를 탈취한 후 일본 병사 숙소에 잠...
-
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다. 김육(金堉)은 9세 때 아버지 김흥우의 임지인 강동(江東)으로 따라가서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문하에서 배웠다. 그러나 잇달아 상(喪)을 당하여 상제로 7~8년간을 지내며 곤궁하게 떠돌아다니다가 25세 때 장가들고,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김응근(金應根)[1793~1863]의 선정비. 김응근은 조선시대 철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계경(溪卿), 호(號)는 의석(宜石)이다. 참판(參判) 김명순(金明淳)의 아들이며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의 동생, 영의정 김흥근(金興根)의 형이다. 1816년(순조 16)에 사마시 생원 3등 6위에...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여망(汝望), 호는 남곡(南谷). 상촌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아버지는 별제 김중경(金重慶)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보성군 이만년(李萬年)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로 부제학 성진선(成晋善)의 딸이다. 아들로 김진곤(金振坤)·김약곤(金躍坤)·김우곤(金遇坤)이 있다. 김의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음성현감 김의의 선정비. 김의(金嶷)는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직언을 하였거나 학행(學行)이 뛰어난 유생을 뽑아 6품직을 제수할 때 뽑힌 인물이다. 이때 음성현감에 부임한 것으로 보인다. 대좌를 갖춘 묘갈형이다. 윗부분은 이수형으로 조각하였는데, 턱을 이루며 비신으로 이어진다. 전체 높이는 155㎝이다. 선정비 앞면에 ‘...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삼(德三), 호는 난계(蘭溪), 자호는 난곡(蘭谷). 음성의 시거조(始居祖) 김덕항(金德恒)의 증손이고, 김기제(金起悌)의 손자이며, 삼화부사 김각(金珏)의 둘째아들이다. 부인은 함양박씨로 조부는 현감 박내창(朴乃昌)이며, 아버지는 박상채(朴尙采)이다. 아들은 김중화(金重華)이다. 김일관(金一觀)[1684~172...
-
충청북도 음성군의 지천서원에 배향된 고려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검교태자태사 김인관(金仁琯)의 8세손이다. 조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통례문부사 김오(金珸)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낭장 권수(權隨)의 딸이다. 아들은 평양소윤 김근(金根)이고, 사위는 중랑장 권후(權厚)이다. 김영유(金永濡)가 손자이며 십청헌 김세필(金世弼)...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김인관(金仁琯)의 9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김영백의 둘째아들인 양주목사 김대(金玳)이다. 어머니는 하음최씨(河陰崔氏)로 부제학 최급(崔岌)의 딸이다. 상촌 김자수(金自粹)와는 사촌간이다. 1401년(태종 1) 문과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1410년(태종 10)에 사노비를 부당하게 획득하여 죄를...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세필(金世弼)이다. 김저(金儲)[1512~1547]는 1539년(중종 34)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거쳐 지평(持平)에 이르렀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로 심한 고문을 받고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사(賜死)되었다. 선조 초에 관작(官爵)이 복...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며 지천서원 배향 인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길(重吉), 호는 추곡(秋谷), 자호는 송림(松林).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선경(金善慶)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순(金峋)이다. 어머니는 청주한씨로 한광윤(韓匡胤)의 딸이며, 부인은 나주정씨로 정언규(丁彦珪)의 딸이다. 아들은 김방(金滂), 김만(金...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손자는 김문상(金文商)이다. 김종립(金宗立)[?~1636]은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에서 주부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진천현 초관(哨官)으로서 충청감사 정세규를 따라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적과 싸우다가 대패하였다.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정세규를...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김지순의 선정비. 김지순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수(士秀), 호는 삼수당이며, 서울 태생이다. 1824년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부임했다가 1826년 공청도(公淸道)가 충청도로 되고, 충주목이 복구되면서 충주목사가 되었다. 비(碑)의 총 높이는 124㎝이며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
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김진강(金震綱)[1523~1581]은 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1563년(명종 18)에 음성현감을 지내고,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세거(世居)하여 안동김씨가 음성군에 옮겨 와서 살게 된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상촌에 있다....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육영 사업가. 본관은 의성(義城). 훈신 김영렬(金英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중삼(金重三)이다. 김창도(金昌道)는 성품이 인후하고 가족 간의 화목이 돈독하였다. 전답을 마련하여 학당(學堂)을 세워 육영 사업에 힘썼으며, 문사가 여기에서 많이 배출되어 사우 간에 추앙을 받았다....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성우(聖友), 호는 야춘(惹春). 참판 김낙회(金樂會)의 아들이다. 김태희가 완도군수로 있을 때 문덕(文德)으로 백성을 이끌어서 군민들이 강무정(降務亭)을 세워 자취를 기록하였다. 벼슬은 참판에 이르렀으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1894년 갑오변란 이후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지내다가, 1908년(순종 2) 7월 2일...
-
음성 출신의 조선 말기 문신. 김태희의 본관은 경주로, 김재(金在)의 5세손이고, 김성우(金聖雨) 아들이다. 김태희의 초명은 수인(秀仁)이고, 자는 성칠(性七)로, 법부주사(法部主事)를 지냈다. 『음성읍지』에 이름이 올라 있다.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 신대에 있다....
-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지천서원에 배향된 인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아버지는 김적(金積)이다.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범(公範), 호는 각회옹(覺悔翁). 고조부는 김자수(金自粹), 아버지는 참봉 김평(金萍)인데 중부(仲父) 경상우수사 김훤(金萱)에게 입계하다. 부인은 풍양조씨로 조승종(趙承宗)의 딸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발한 재질과 영매한 기상이 있었으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 사람들이 경모하였다. 스무살 때...
-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구안동(舊安東). 자는 용여(用汝). 오은(梧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으로, 김사렴은 정몽주, 이색과 더불어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있어 당대의 세력가 신돈을 위험인물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가 망하자 청주 도산(陶山)에 은거·두문불출하였다. 아버지는 김의택(金義宅)이다. 김환유(金煥維)는 고종 때 수직으로 돈령도정(敦寧都正)이 되...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남석린(南錫麟)[1852~1918]은 1876년(고종 13)에 무과에 급제하고, 1887년(고종 24) 영월군수, 1891년(고종 28) 나주영장·삼수군수를 역임하였다. 1900년(고종 37)에 고향으로 돌아와 음성읍에 광명학교(光明學校)를 개설하고 박제익(朴齊翼), 조충하(趙忠夏), 남궁모(南宮模) 등과 함께 협력하여 교육 사업을 하여 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어렸을 때부터 강개한 기질이 있어 『한서(漢書)』를 읽었고, “대장부가 눈을 씹어 먹고 담비 털로 잠을 자는 괴로움이 있어도 어찌 불가능이 있으랴”하고 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였는데 그때 남연년이 무술하던 초록바위가 노래기 중말 동쪽 산에 있다. 1689년(숙종 15)에는 부친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리는 효행이 있었으며, 아우 남극년(...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태종의 부마(駙馬) 남휘(南暉)와 정선공주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남빈(南份), 어머니는 현감 홍여공(洪汝恭)의 딸이다. 부인은 태종의 외손인 좌의정 권람(權擥)의 4녀이다. 1457년(세조 3)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에 이시애(李施愛)가 난을 일으키자 우상대장(右廂大...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 고려시대의 분묘는 신분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은 삼국시대 돌방 무덤의 전통을 이어받아 돌방을 만들고 흙을 쌓아 올려 봉분을 만들었으며, 일반인의 무덤은 돌을 정연하게 쌓아 석곽을 조성하였다. 음성군 금왕읍 소재지에서 대소면 방향으로 82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중원휴게소에 500m 못 미치는 지점의 오른...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설성공원 안에 있는 독립기념비. 1945년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총 높이가 283㎝이고, 비신의 경우 높이 200㎝, 앞면 폭 85㎝, 측면 폭 43㎝이고,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52㎝, 앞면 폭 94㎝, 측면 폭 51㎝이며, 방부(方趺)는 높이 31㎝, 앞면 폭 164㎝, 측면 폭 122㎝이다. 비석 앞면에는 ‘독립기념비...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망이산에 있는 전통시대의 통신 시설. 망이산 봉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망이성은 충주목 관내에 속하며, 동으로 음성의 가섭산에 이어지고, 서로는 경기도의 죽산 검단산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역시 망이성 봉수는 충주목에 소속된 봉수로서 동으로 음성현 가섭산으로 이어지고...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기산포지. 오갑초등학교에서 북동쪽으로 문촌제방을 따라 약 1㎞ 거슬러 올라가면 옥산사(玉山祠)와 삼효각(三孝閣)이 있다. 유적은 여기에서 문촌제방 건너편 남동쪽으로 약 250m 떨어진 지점에 있는 과수원으로 개간된 밭에 위치한다. 토기는 과수원을 중심으로 하여 과수원 북쪽으로 잇대어 있는 밭 일대에 산포되어 있다. 범위는 동서 10...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 아버지는 효자 민동량(閔東亮)이다. 큰아버지 민동상(閔東尙)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아버지가 했던 효의 덕업을 이어받아 어버이에게 대한 효도를 실천하여 온 집안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집안의 자랑이 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상평리에 있다.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묘. 민동량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군삼(君三), 호는 송암(松巖)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민휘정(閔徽鄭)의 아들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누가 아버지를 부르면 문득 눈물을 흘렸다. 10살에 어머니가 아프자 향을 피워 하늘에 기...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유허비. 총 길이는 158㎝이고, 비신(碑身)의 높이는 116㎝, 앞면 47㎝, 측면 11㎝이며,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38㎝, 앞면 61㎝, 측면 38㎝이다. 하단의 방부(方趺)는 높이 4㎝, 앞면 67㎝, 측면 40㎝이다. 비석 앞면에는 ‘효자증통훈대부호조좌랑송암민공동량유허비(孝子贈通訓大夫戶曹佐郞松巖閔公東亮遺墟碑)...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분충(奮忠). 증좌찬성(贈左贊成)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고, 증문하시중(贈門下侍中) 여원군(驪源君) 민백훤(閔佰萱)의 손자이다. 친형은 민서(閔叙)이다. 민발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크고 힘이 세어 13세 때 무술 연마를 위해 마을 앞 큰 바위를 움직여 등에 지고 사장(射場) 터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음보(蔭補)로...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민발의 묘소. 민발은 조선 전기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올랐다. 묘역은 약 150㎡인데 묘 앞에는 상석, 망부석, 대리석 묘표,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높이 총 227㎝이다. 신도비의 전액(篆額)은 ‘위양공민발신도비명(威襄公閔發神道碑銘)’이다. 1707년(숙종 33)에 세워진 이 비의 비문(碑文...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민발(閔發)[1419~1482]의 신도비. 민발 신도비는 민발의 사후에 평생의 행적을 담은 글을 돌에 새겨 세운 비로, 1707년 (숙종 33)에 세워졌다. 민발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며,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1453년(단종 1)에 사복시대호군(司僕寺大護軍)으로 있으면서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驢興). 아버지는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이고, 아들은 조선 초기 문신인 민수산(閔壽山), 손자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민발(閔發)이다. 민백훤은 어렸을 때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전평리 새눈이에서 살았으며 1374년(우왕 즉위) 11월에 전공판서(典工判書)로 사신이 되어 밀직사...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의 손자이고,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민백훤(閔伯萱)의 아들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민발(閔發)이 아들이다. 민수산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1382년에 어전 시회(詩會)에서 장원하였다. 1411년(태종 11)에 어머니가 죽자 형제인 민방보(閔邦寶)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 할아버지는 민동량(閔東亮)이고 아버지는 민경연(閔景淵)이다. 조상의 덕업을 받들어 모셔 어버이에게 효도하여 집안의 명성을 높였다. 정조조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아들 민백원(閔百元)과 손자 민국현(閔國顯)은 경서에 능하였고 증손 민치경(閔致慶)은 문예에 숙달하여 사람들이 산동(山東) 문장이라 칭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
고려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민의(閔懿)의 아들이다. 처는 배씨(裵氏)이며 아들로 민식(閔湜)·민공규(閔公珪)가 있다. 배씨의 동생은 유익겸(柳益謙)의 처가 되었다. 민영모는 인종·의종·명종 때 활동한 인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다. 민영모가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 부(賦)를 지었는데 격식에 맞지 않아서 동지공거(同知貢擧) 이지저...
-
조선시대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문신 민영모의 묘단. 민영모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여주(驪州)의 「인물조」에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기록에서는 고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을 지냈고, 명종 즉위 후 왕의 총애를 받아 문하시랑평장사를 거쳐 태자태사(太子太...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민치상(閔致庠)[1825~1888]의 치적을 기리는 비(碑). 민치상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경양(景養), 호는 하당(荷堂), 본관은 여흥이다.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며, 민용현(閔龍顯)의 아들이다. 1845년(헌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1)...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민충길(閔忠吉)이다. 민침(閔忱)[1600~?]은 1627년(인조 5) 27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51살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지 정창주(鄭昌胄)가 “세무(世務)에 통달하고 강어(强禦)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천거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이어서 문의현감(文...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자는 우경(虞卿). 박순(朴淳)의 현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윤진(朴胤陳), 아버지는 박유겸(朴惟謙)이며 부인은 함양여씨이다. 박계는 1568년(선조 원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벼슬은 감역(監役)에 이르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상곡리에 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박서(朴犀) 장군의 21세손이며 아버지는 박시중(朴時中)이다. 박대현은 조선 후기의 선비로 전우(田愚)의 문인(門人)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덕이 많았으며, 학문과 덕을 실천하였다. 고종 때 장릉참봉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자복(子復). 박서(朴犀) 장군의 18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정(司正) 박흥한(朴興漢)이다. 박래양은 1823년(순조 23)에 정시(庭試) 문과(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언(正言)에 이르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생원. 본관은 음성. 자는 득지(得之). 박서(朴犀) 장군의 1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첨지 박취도(朴就道)이고, 아버지는 박경세(朴慶世)이다. 박래태는 1786년(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그 해 28세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字)는 창세(昌世), 호(號)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성균관진사 박지흥(朴智興)이고,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박상은 성품이 강직·충정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강직하며 몸가짐이 정숙하여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1496년(연산군 2)에 진사가 되었고, 1501년(연산군...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귀주대첩에서 공을 세워 음성백(陰城伯)에 봉해진 후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호부상서(戶部尙書) 박인석(朴仁碩)이다. 박서는 무과에 급제한 후 1202년(신종 5)에 아버지가 진주도 안찰부사(按察副使)로 도적을 평정한 공에 의해 내시(內侍)로 근무하게 되었다. 봉선고판관(奉先庫判官)에 임명된 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사장(士章), 호는 시각(柴閣). 조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아버지는 박장흠(朴長欽)이다. 박성한은 조선 정조 때에 성균관 유생으로 1801년 감제시(柑製試)에서 수석을 차지함으로써 바로 전시(殿試)를 보게 하였다. 이듬해 초시 문과(文科)의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벼슬이 헌납(獻納)에 이르렀다. 사랑과 절...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묵재(黙齋) 박경상(朴景祥)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함경남도 고원군 남흥리에서 태어났다. 1860년(철종 11)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870년(고종 7) 향리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동하여 포상을 진정하려 하자 부끄럽다며 진정서를...
-
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박서(朴犀) 장군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박흔(朴昕)이고, 부인은 횡성윤씨로 윤의손의 딸이다. 박숙달은 1462년(세조 8) 추장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1465년 사관으로 경연에서 『논어(論語)』를 강하였다. 1476년(성종 7) 사헌부지평, 1478년 사헌부장령, 의정부사인을 거쳐 동년 10월 문례관이 되었고, 1481년...
-
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음성군 명묘조(名墓條)에 등재되어 있다. 본관은 음성(陰城). 충민공 박순(朴淳)의 손자이며, 증참판 박흔(朴昕)의 둘째아들이다. 형은 박숙진(朴叔蓁)이며, 아들은 박윤진(朴胤陳)이다. 박숙무(朴叔楙)는 1467년(세조 13) 12월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한 공로로 1469년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1471년(성종 2)...
-
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정지(挺之). 음성백 박서(朴犀)의 7세손이고, 함흥차사로 알려진 박순(朴淳)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박흔(朴昕)이며, 동생은 박숙무(朴叔楙)이다. 박숙진(朴叔蓁)[1424~1481]은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급제하고, 1453년(단종 1)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 권지정자(權知正字)로 벼슬에 나...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음성백 박서의 7세손이다. 조부는 충민공 박순(朴淳), 아버지는 증참판 박흔(朴昕)이다. 부인은 해주오씨로 생원 오시준(吳時俊)의 딸이다. 1465년(세조 10) 춘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67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어 병장설(兵將說)을 강하였다. 이어 경상도 도사(都事)에 이르렀으나 일찍 별세하였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음성박씨의 선조. 본관은 음성(陰城). 고려 평장사(平章事) 박서(朴犀)의 후손이며 시랑(侍郞)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효자문이 남아 있는 박호원(朴浩遠)이 박순의 아들이며 대사헌까지 지낸 박숙채(朴菽蔡)가 손자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박유겸(朴惟謙)은 박순의 후손이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는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 자는 계칠(季七). 박서(朴犀) 장군의 20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혁(朴基赫)이고, 형은 박시중(朴時中)이다. 박시재는 향리에서 인과 효, 의로 추앙을 받았으며, 1882년(고종 19) 성균관시에 51세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 청룡골에 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陰城). 자(字)는 희천(希天), 호는 오촌(梧村). 박서(朴犀) 장군의 20세손이고, 박기혁(朴基赫)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아버지 박지혁(朴趾赫)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자기가 사는 오류골의 이름을 따서 호를 정하였다. 박시중은 어질고 효행이 깊었으며, 온화하고 공손하며 겸손하였다. 누구라도 착하지 않으면 사귀지 않았고, 의가...
-
조선 중기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자는 겸지(謙之). 박순(朴淳)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박윤진이고, 부인은 문화유씨 사정 유세장(柳世長)의 딸이다. 박유겸은 생원으로서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역임하였다. 묘소가 경기도 광주시에 있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음성. 자는 경지(敬之). 고조부는 충민공 박순(朴淳), 아버지는 박윤진(朴胤陳)이다. 부인은 해평윤씨로 사과 윤렬(尹洌)의 딸, 그리고 전주이씨로 군수 이회(李檜)의 딸이다. 박유경은 부친에게 공부하여 문장을 잘 짓고 학우가 많았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명정(命旌)되었다. 장사랑(將仕郞)으로 있던 1519년(중종 14)에 기묘...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순천박씨 음성 입향조.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구(汝久).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고, 아들은 단종 때 중부녹사(中部錄事)를 지낸 박추(朴樞)이다. 박팽년(朴彭年)은 그의 종손(從孫)이다. 박장생은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판서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으나 만년에는 개성윤(開城尹)에서 물러나 산수(山水)를 소요하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 자는 여구(汝久). 충민공 박순(朴淳)의 12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박성구(朴聖龜), 아버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부인은 문화유씨 유철모의 딸로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박장흠은 1754년(영조 30)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공하(公夏), 호는 삼평와(三平窩). 현감 박경진(朴敬鎭)의 아들이다. 박재순은 1774년(영조 50) 37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1783년(정조 7) 46세에 식년 병과 문과로 급제하여 수찬(修撰)·응교(應敎)·좌승지(左承旨)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 후 1790년(정조 14)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박재순이 쓴 책으로 『삼평...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음성. 자는 기옥(其玉), 호는 인암(仁庵). 음성박씨 시조 박서의 22세손이고, 충민공(忠愍公) 박순(朴淳)의 1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시중(朴時中), 아버지는 장릉참봉 박대현(朴大鉉)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인창(李寅昶)의 딸이다. 아들로 박충근(朴忠根)과 박형근(朴瀅根)이 있다. 1887년(고종 24) 출생하였다. 효우와...
-
조선 말기에 음성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길보(吉甫), 호는 설초(雪樵). 아버지는 승지(承旨)를 지냈던 박준우(朴浚遇)이다. 35세인 1864년(고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교하현감과 횡성군수를 지냈다. 이때 여러 치적이 있어서 군민들에게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79세 되던 해인 1908년(순종 2) 3월 12일 음성군수로 부임하였다가 8월 29일 그만 두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덕삼(德三), 호는 정산(貞山). 박화철(朴和喆)의 아들이다. 박준우는 1844년(헌종 10) 39세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1850년(철종 1) 50세에 좌승지가 되었다. 이어 5년 뒤에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박준우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所餘里)에 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덕여(德汝), 호는 입암(立庵). 박서(朴犀) 장군의 16세손이고, 아버지는 아산현감 박정규(朴廷珪)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 장령 이행민의 딸이다. 박준흠은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여 한번 읽은 글은 반드시 기억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성장하면서 경학을 연구하였고, 의문점은 도암 이재와 여호 박필주에게 배...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여진(汝進), 호는 죽남(竹南). 아버지는 부사용 박상채(朴尙彩)이다. 도암(陶菴) 이재(李縡)에게 배웠는데, 학문을 좋아하며 대의를 위한 절개가 있었다. 1721년(경종 원년) 태학생 윤지술(尹志述)의 피화 사건을 듣고는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지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도기(道器). 아버지는 박근순(朴謹淳)이다. 26세 때인 1780년(정조 4)에 음보(蔭補)로 인릉참봉(仁陵參奉)이 되었고 1801년(순조 1) 화순현감으로 부임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청소년을 모아 향약을 베풀고 경서를 강의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을 잘하여 명성이 높았고 효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벳돈마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자앙(子昻). 박서(朴犀) 장군의 12세손이고, 아버지는 사과(司果) 박충준이다. 아들로는 박문욱·박문술·박문빈·박문형·박문성의 다섯 명이 있다. 1605년(선조 38)에 이질수(李質粹) 화변에 무고로 연루되었다가 광해군 때 교부(校簿)가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폐모 후에 “비록 미물이라도 충효를 능히 아...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대경(大卿), 호는 두산(斗山). 아버지는 반진홍(潘鎭洪)이고, 형은 반필순(潘弼淳)이며, 아들로는 반시동(潘始東)·반혁동(潘爀東)이 있다. 반달순은 문장과 학문에 있어 사람들이 아버지 반진홍, 형인 반필순과 함께 삼소(三蘇)라고 칭하였다. 아들 반시동과 반혁동도 문장과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묘는 충청북도 음성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복원(服元), 호는 난파(蘭坡). 주부 반운익(潘雲翼)의 8세손이고, 반경제(潘景濟)의 아들이다. 반면주는 음성문묘 중수 때 도유사로 책임을 완수했고, 향시시관(鄕試試官)을 네 번이나 역임했다. 가풍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 탁월한 품행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전하는데, 당시 음성현감 정현석(鄭顯奭)은 ‘겸손한 마음은 근...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붕거(鵬擧). 아버지는 반인경(潘仁慶)이고, 부인은 보성오씨로 진사 오행원의 딸이다. 아들은 반윤기(潘潤沂), 반윤국(潘潤國), 반윤수(潘潤洙)이다. 반명익은 향년 91세까지 장수하여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 해산에 있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정착한 광주반씨 입향조.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평보(平父). 아버지는 반서린(潘瑞麟)이다. 형은 판서 반석평(潘碩坪)이다. 1507년(중종 2)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여러 차례 대과에 응시하지 못한 채 1540년(중종 35) 율봉찰방에 제수되었다. 1545년(인종 1) 사온직장, 1547년(명종 2) 내자시주부로 승진하였다. 영춘현감(永春縣監) 때...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이며, 호는 송애(松崖). 아버지는 반서린(潘瑞麟)이다. 원래 재상가의 종이었으나 재상이 반석평의 재주와 성품을 사랑하여 글을 가르치고 아들 없는 부잣집으로 보내 공부에 힘쓰게 하였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김식(金湜) 등과 교유하였다. 1507년(중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예문...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반석평의 묘소. 반석평은 천얼 출신임에도 당상관에 오른 조선 중종 때의 인물로, 반서린(潘瑞鱗)의 둘째아들이며, 1472년(성종 3)에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崖)이다. 제8대 유엔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이 반석평의 16세손이다. 본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조안리에 있었던 묘를 음성군 원남...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희순(羲舜), 호는 죽재(竹齋). 판서 반석평(潘碩坪)의 후손이며, 반진두(潘鎭斗)의 아들이다. 반성순은 학식이 뛰어나 향리에서 신망이 두터웠고, 후학들로부터 추앙되었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백실(伯實),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현감 반윤기(潘潤沂)이다. 부인은 임천조씨(林川趙氏)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나 세상에 알려졌다. 관계(官階)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능골에 있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백거(伯擧). 증조는 현감 반석권(潘碩權), 아버지는 반인후(潘仁後)이다. 부인은 천안전씨로 전욱(全郁)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반인후(潘仁後)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왜적과 싸우다가 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지자 아버지를 업고 적의 포위를 뚫고 나왔다. 충효가...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성칠(成七). 시조 반충(潘忠)의 18세손이고, 통덕랑 반세영(潘世榮)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진국(潘鎭國)이다.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현도(李賢道)의 딸이다. 부인은 충주최씨(忠州崔氏)이다. 아들로 반필동(潘必東)·반한동(潘漢東)·반회동(潘淮東)이 있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돈독하여 향리에...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도원(道源). 아버지는 반명익(潘溟翼)이다. 161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48년(인조 26)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註官), 호조정랑·형조정랑을 거쳐 흥양현감과 회덕현감을 지냈다. 1674년 향년 58세로 사망하였다. 충...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효선(孝先). 할아버지는 반석권(潘碩權)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반사렴(潘士濂)이다. 155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효성이 깊었다. 1598년(선조 31) 효행으로 천거되어 국자감주부(國子監主簿)에 제수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 등...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응선(應先), 호는 국오(菊塢). 할아버지는 반석권(潘碩權)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반사렴(潘士濂)이다. 1555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명경과(明經科)의 『대학(大學)』에서 떨어진 뒤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글에만 전념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반인후의 묘. 반인후의 자는 응선(應先), 호는 국오,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음성현감 반석권의 손자이고, 선무랑(宣務郞) 반사렴(潘士濂)의 아들로 음성 지역에 거주하였다. 1591년(선조 24) 식년사마시(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 25위로 입격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공을 세웠으며, 벼슬은 군자감첨정에 이르렀다. 반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제향(濟鄕). 조부는 반윤기(潘潤沂)이고, 아버지는 반계영(潘啓榮)이다. 반주석은 1720년(숙종 4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치정(致楨), 호는 현포(玄圃).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우택(潘禹澤)이고, 형은 반진홍(潘鎭洪)이다. 반진간은 효도와 우애로 덕망이 있어 사우간에 공경을 받았다. 고종 때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치우(致于), 호는 설포(雪圃). 초명은 진정(鎭楨)·진홍(鎭鴻).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우택(潘禹澤)이고, 동생은 반진간(潘鎭幹)이다. 반진홍은 문학이 뛰어났으며 사람됨이 단정하고 말이 적었다. 고종 때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 자는 계실(季實). 아버지는 현감 반윤기(潘潤沂)이다. 1690년(숙종 16) 반최영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열경(說卿), 호는 사산(司山).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반진홍(潘鎭洪)이다. 반필순은 문장에 능하고 덕행이 있어 사우간에 추앙되었다. 성균관 과거에 합격하여 통덕랑(通德郞)이 되었으며, 1892년(고종 29) 음성향교 장의(掌議)로 있다가 1893년 금영 이시에 1등으로 뽑혔으나 발...
-
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 횃불)으로, 낮에는 수(燧: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이다.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서 미타사 방향으로 약 500m 올라간 지점에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 옆에 밭과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는 지역과 구릉 지역, 인삼포로 경작되고 있는 지역은 고려장터로 불리는 돌널 무덤이 조성된 곳이다. 비산리 고분군도 이와 같이 돌널 무덤이 떼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군이 위...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음성읍 삼생리는 원남면과 경계를 이루며, 원래는 삼산(三山)이라 했는데 이곳에 거주하면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전설로 인해 삼생(三生)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충신 장충범의 정려와 청주이씨의 열녀문 등이 있다. 삼생리 유물산포지는 장충범의 정려각 주변 야산의 동남 사면 기슭 나대지로 정려각의...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돌칼. 무기인 돌칼은 칼자루를 나무에 끼워 쓰는 슴베식인 유경식(有莖式)과 몸체와 자루가 일체형의 자루식인 유병식(有柄式)으로 나뉘고, 유병식은 다시 홈 수에 따라 일단병식(一段柄式)과 이단병식(二段柄式)으로 나누어진다. 석검은 과거에는 세형동검(細形銅劍)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으나 지금은 세형동검 출현 이전에 만들어진...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돌화살촉.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 노래기 뒷산에서 발견되어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돌화살촉은 신석기시대에 비하여 그 형식이 다양하고 지역에 따라 다른 형식이 출토되고 있다. 돌화살촉은 모두 10점이 출토되었는데 유엽형의 화살촉이 4점, 슴베 달린 화살촉이 5점, 소형 화살촉이 1점이다. 돌화살촉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선돌은 큰돌〔巨石] 기념물의 한 종류로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선돌은 그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우나 서유럽의 경우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시장하여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생리 선돌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박장수라고 불리던 사람과 그의 아내가 모두 쌀을 몇 가마씩 들 수 있을 정도로...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에 있는 고대의 산성. 석인리 산성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석인리 성지, 석인리의 서북 약 5백간에 있음. 석축으로 둘레 71간, 높이 3척, 두께 3척, 완전함’이라고 하여 처음으로 산성의 존재가 소개되어 있고, 『전국유적목록』에 ‘석축, 주위 70간, 높이 3척, 두께 3척’이라고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문화...
-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선사시대는 주로 고고학의 대상으로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가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의 출현이나 각 단계별 존재 형태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 등의 차이와 사회·경제·문화 등의 발달 단계에 따라 시기나 양상의 편차가 크다. 따라서 당시의 문화를 반영하는 유적과 유물도 그에 비례하여 존...
-
전통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축조한 방어 시설. 방어 시설은 도랑 파기와 같은 형태의 해자(垓子), 나무 울타리를 만드는 목책(木柵)이나 나무 말뚝인 목익(木杙) 등을 거쳐 보다 견고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순수한 우리말인 ‘잣’을 한자로 성(城)이라 하며, 성벽이 여러 겹을 가지면서 안쪽의 성(혹은 내성)과 바깥쪽의 곽(혹은 외성)을 아울러 ‘성곽’이라 한다. 방어 시설인 성...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불망비를 세웠다. 성규주 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충주로 가는 구 도로를 따라 1㎞쯤 올라가면 음성향교가 나오는데 그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를 세웠다. 성규주 선정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하당저수지로 올라가는 길옆 하당1리 마을회관 근처 비닐하우스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1매석을 요...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는 연대 미상의 토성. 성본리 토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은 전혀 없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산동의 동북 약 600간에 있음. 토축으로 둘레 600간, 폭 10간, 높이 2간, 완전함.” 이라고 처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국유적목록』에는 앞의 자료를 인용하여 “토축, 둘레 600간. 폭 10간, 높이 2간”이라고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22세손이고, 성일교(成一敎)의 6세손이다. 성덕주(成德周)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성덕후(成德厚)의 양자가 되었다. 부인은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진하(安鎭夏)의 딸로 문성공 안유(安裕)의 후손이다. 성기동(成耆東), 성기형(成耆亨), 성기환(成耆煥) 세 아들을 두었다. 1834년 충청북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13세손이고, 성담명(成聃命)의 5세손이며, 성축(成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진천송씨(鎭川宋氏) 송근(宋瑾)의 딸이며, 부인은 순천박씨(順天朴氏) 박민(朴敏)의 딸이다. 성담(成紞), 성유(成維), 성적(成績), 성표(成縹) 네 아들을 두었다. 1572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화(子華). 청성군(淸城君) 손필영(孫弼榮)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손희언(孫希彦)이며, 아버지는 손계선(孫繼先)이다.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손필영 이후 후손들이 주로 음성군에 세거하여 청주손씨이지만 음성군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청성군(淸城君) 손필영(孫弼榮)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손지(孫漬)이다. 섬계(剡溪) 이잠(李潛)의 문인으로, 선조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이 중추부동지사에 이르렀다. 손희성(孫希聖), 손희철(孫希哲), 손희준(孫希濬) 형제 모두가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
조선 후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송규복은 1864년(고종 1) 식년시에 합격하였다. 1870년 익릉참봉(翼陵參奉)이 되었으며,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공조좌랑을 거쳐 1876년 음성현감이 되었다. 1879년(고종 16) 김포군수로 옮겼다. 1881년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가 세워졌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경빈(敬賓), 호는 정와(定窩). 득우재(得寓齋) 송상철(宋相哲)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송헌삼(宋憲三)이다. 인효(仁孝)에 밝고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다. 송달용이 임종 때 “인간 일생이 오랜 것이 아닌데 어찌 영화만을 바라겠느냐”라고 탄식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이 감동하여 “현인(賢人)이 이제는 가고 말았...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인. 본관은 진천(鎭川).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9세손이며, 아버지는 송저(宋儲)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살았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 1440년(세종 22) 경원판관에 제수된 이후 경원(慶源)과 자성(慈城) 수령을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벽동군사(碧潼郡事)에 제수되었다. 1455년(세조 즉위년) 의정부사인에 올랐...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8세손이며, 송광도(宋匡度)의 아들이다. 송저는 단종 대 충신인 송석동(宋石仝)의 아버지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살았다. 문과에 급제하고 1417년(태종 17) 홍천현감(洪川縣監)이 되었다가 1422년(세종 4)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441년 평양소윤(平壤少尹)으로 있으면서 요동...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생골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저의 묘. 송저는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본관은 진천이다. 상산백 송인(宋仁)의 8세손이며, 낭장 송광도의 아들로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사인동(지금의 생골)에 살았다. 문과에 급제한 뒤 1422년(세종 4)에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지보성군사(知寶城郡事)로 있을 때 백학자[새매]를 바친 공...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휴경(休卿).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신오성(申五星)이다.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으며, 경종 때 대사간(大司諫)에 추증되었다....
-
조선 후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이자 화가.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신명한(申命漢), 자는 정평(正平), 호는 소하(小霞). 아버지는 신위(申緯)이며, 동생은 신명연(申命衍)이다. 1831년(순조 31) 생원시에 합격하고 헌종(憲宗) 때 음성현감을 역임하였다. 그림에 뛰어났으며 시도 잘 지어 동생 신명연과 함께 이름이 알려졌으나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소하...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취경(聚卿), 호는 휴정(休停). 어사 신윤평(申尹平)의 후손이며 신대방(申大防)의 아들이다. 벼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仁顯王后) 폐비에 반대하고 귀향한 뒤 대궐을 향하여 통곡하고 서궁(西宮)을 배례하는 절의를 지켰다.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정서(廷瑞). 현감 신경진(申景進)의 증손이고, 용양위부호군 신상용(申尙容)의 아들이다. 신정은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관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번거롭게 공부하지 않아도 학문이 일취하였다. 20세인 1671년(현종 12)에 과거에 올랐는데, 이 해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두 아우와 한방에서 거처하며 효우가 독실하였고,...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성 터. 신천리 토성에 관한 고문헌의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처음으로 “군내면, 신천리, 한천에 있음. 토축으로 주위 약 300간, 높이 6척, 폭 5척”이라고 소개되었다. 『전국유적목록』에서는 앞의 자료를 요약하여 “사유, 토축, 주위 300간, 높이 6척, 폭 5척”이라고 간단히 소개하였다. 『문화유적...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순첨(舜瞻). 증이조참판 신상철(申相哲)의 아들이다. 1645년(인조 23) 음보로 벼슬에 나아가 감역(監役)이 된 뒤 제천현감을 역임했다. 이후에 평산신씨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 세거하기 시작하여 자손이 음성군 각지에 분산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천휴(天休), 호는 임하당(林下堂). 조부는 신상철(申尙哲)이고, 아버지는 신형구(申衡耈)이다. 신후명은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대사간을 거쳐 1685년(숙종 11)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 병조참판이 되었다. 1700년 당상(堂上)으로서 죄인 김인지(金麟至)를 서민으로 호적에 올렸다는 이유로 정언 윤헌주(尹憲柱...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으로 은거한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덕부(德夫), 호는 규정(葵亭)·서암(恕庵). 아버지는 현감 신항구(申恒耈)이다. 신후재는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지평·부교리 등을 역임했다. 1679년(숙종 5) 강원도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 정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후재의 묘. 신후재(申厚載)[1636~1699]는 강화부유수, 개성부유수, 한성부판윤을 지냈고 1694년에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서인에 의해 여주에 유배되었다. 1697년에 석방되었으나 은퇴하여 충주 오갑장에서 학문에만 전념했다. 주요 저서로는 『규정집(葵亭集)』이 있다. 신후재 묘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IC에서 국도 38...
-
1948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신도비. 신후재(申厚載)는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호는 규정(葵亭) 또는 서암(恕庵)이고, 자는 덕부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가 부교리를 지냈고,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다시 남인이 집권하자 도승지 등을 역임...
-
충청북도 음성군 읍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심의신을 기리는 비. 관찰사는 충청도를 다스리는 입법·사법·행정의 수장으로, 충주목에 거주하며 백성을 다스렸다. 음성은 충주목 관할하의 현이기에 관찰사가 가끔 들르던 길목으로, 음성의 백성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수령을 기념하기 위해 송덕비나 불망비를 세우곤 하였다. 심의신 영세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충주 쪽으로...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쌍봉리에 있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고분. 음성군 금왕읍에서 삼성면 방면으로 8㎞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쌍봉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약 1㎞ 들어가면 쌍봉1리가 위치한다. 이 마을은 낮은 구릉성 산지에 논과 밭이 대부분이고 쌍봉초등학교가 있다. 쌍봉리 고분은 쌍봉1리 옆에 위치한 쌍봉2리의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쌍봉리 고분은 말무덤[馬塚]으로...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화(子華). 가선대부 안응인(安應仁) 아들이다.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54세로 죽자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에 증직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각회리에 있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내숙(內叔), 호는 월창(月窓). 광양군(光陽君) 안황(安滉)의 증손이고, 동몽교관 안시수(安時秀)의 아들이다. 1666년(헌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를 지냈다. 1670년 주서에 임명되었으며 1674년 이후 장령, 필선, 정언을 거쳤다. 1680년(숙종 6) 다시 장령, 정언이 되어 유명견·...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주로 강을 낀 낮은 구릉 지대나 주변의 자연 지세에 알맞은 골짜기 방향이나 강·해안선을 따라 분포한다. 고인돌은 죽은 사람을 묻은 무덤이 대부분이나 제단으로 쓰인 경우도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굄돌에 따라 탁자식(북방식)·바둑판식(남방식)·구덩식(개석식) 등으로 나뉘며, 덮개돌 밑에 있는 무덤...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1리 동리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은 양덕1리 동리 뒷편 산기슭 산 흐름이 끝나는 밭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탁자식의 형태를 띠고 있다. 덮개돌은 장축 방향이 NE40°로 산줄기의 흐름과 나란하다. 거정화강암으로 현재의 크기가 285×150×40~60㎝이다. 굄돌은 마구리벽의 한쪽이 없어지고 나머지 세 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세...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유적은 음성군 삼성면 소재지에서 양지회관 방향으로 들어가 동리저수지를 지나 위치한 양덕1리의 우측 산자락 마이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유적이 위치한 지역은 마이산의 기슭이라 하더라도 경사가 없는 평지에 가까웠으며, 주변은 밭으로 개간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유물은 지표에서 청자편·백자편·고려 토기 등이 수습되었...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종. 자는 성순(聖淳). 아버지는 어용인(魚用仁)이고, 형은 어재연(魚在淵)이다. 어재순은 형인 어재연을 따라 군직(軍職)에 있다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광성진(廣城鎭)에서 싸우다가 형과 함께 전사하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다.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되었다. 묘 아래에 쌍충재(雙忠齋)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종. 자는 성우(性于). 아버지는 어용인(魚用仁)이고, 아우는 어재순(魚在淳)이다. 어재연은 1866년(고종 3) 충청도병마절도사, 회령부사를 지냈고, 이 해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 우선봉장(右先鋒將)으로 적을 격퇴하였다. 1871년(고종 8) 2월 도총관을 제수받았으며, 같은 해 6월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진무중군(鎭撫中軍)으...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재연·어재순의 신도비(神道碑). 신도비는 보통 정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의 묘소 입구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재연은 1871년(고종 8) 도총관을 제수받았으며, 순직 후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오르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동생 어재순은 현직에 있을 때 2품관에 이르지 못하였고, 순직 후에도 이조참의(吏曹參議)로...
-
조선 후기 허준이 저술한 의학 서적. 『언해 두창 집요(諺解痘瘡集要)』는 고 김두종(金斗鐘) 박사가 한독 의약 박물관에 기증한 상권 1책이다. 2012년 10월 12일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346호로 지정되었다. 허준(許浚)[1539~1615]은 1537년(중종 32) 평안도 양천에서 태어나 1569년 유희춘이 내의원 의원으로 천거하였고, 1573년 정삼품 내의원 정이 되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1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충주목사를 역임한 엄찬의 선정비. 목사 엄찬 진휼비(牧使 嚴讚 賑恤碑)는 총 높이가 168㎝이고, 비신은 높이 110㎝, 앞면 67㎝, 측면 34㎝이며, 개석(蓋石)은 높이 59㎝, 앞면 76㎝, 측면 40㎝이다. 방부(方趺)는 높이 9㎝, 앞면 75㎝, 측면 40㎝이다. 비석 앞면에는 ‘목사엄후찬진휼혜선비(牧使嚴侯讚賑恤惠善碑)’...
-
전통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설치된 통신 및 교통 제도. 역원(驛院)은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이라고도 하였는데, 신라 소지왕 때인 487년(소지왕 9) 처음으로 우역(郵驛)이 설치되었다. 그 뒤 통일신라시대 이후 9주(九州) 5소경(五小京)이 설치되는 등 지방 제도가 확립되고 중앙 관리의 지방 출장 및 상인과 여행자의 왕래가 증가함에 따라 그 기능이 활발해졌고, 고...
-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한의사. 고려 말 명상 염제신(廉悌臣)의 17세손이다. 염두경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민하고 슬기로워 문학에 전념하였으나 과거에는 뜻이 없고 질병에 허덕이는 만민을 구제할 인술에 뜻을 두어 정진하더니 신기한 의법에 정통하여 신의(神醫)로 이름을 날렸다. 각지에서 난치환자가 쇄도하였는데 누구나 구하기 쉬운 생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에 특효를 보인 일이...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원(院)의 터. 원은 출장을 다니는 관리들이 숙박하던 곳으로, 국가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요한 도로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두었다. 원에는 원주(院主)가 배치되었고, 원위전(院位田)을 제공하여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도록 하였다. 오갑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00m 지점에 있으며, 국도 38호선이 지나가는 원거리...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의 오대산 정상부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오대산성은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와 괴산군 소수면 옥현리 사이의 해발 약 399.7m 오대산 정상부에 있는 테뫼식 토축 산성으로 오성산성 또는 할미성이라고 불려진다. 산성에 대한 고문헌 기록은 전혀 없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원남면 상노리, 오대산성, 상노리 동남 약 300간, 음성·괴산 경계에 있음, 토...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오병선의 선정비. 오병선(吳秉善)은 1860년(철종 11) 순강원수봉관(順康園守奉官)을 거쳐 음성현감에 부임, 1870년(고종 7) 서산군수(瑞山郡守)로 자리를 옮겼다. 1873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부임했다. 선정비는 1866년(고종 3)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상단이 둥글게 처리...
-
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응용(應龍)·응기(應祈). 옹몽진은 순창옹씨 시조이다. 원래 옹몽진의 선조는 고려 때 교목세신(喬木世臣)의 거족이었으나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이성계의 미움을 받아 서인이 되었다. 옹몽진은 음성향교지기를 지내다가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판관에 이...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유적은 용성리 뒤쪽의 과수원 일대 산기슭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중부내륙고속국도 건설 부지의 문화 유적 지표 조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용성리 선사유적은 산기슭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유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표토층은 과수원 조성으로 인해 대부분 교란되었고, 과수원의 대부분은 석영질 암석이 보이며, 그 아래층은 붉은 색의 석비레...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월정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무덤 유적. 월정리 돌무지무덤은 돌을 쌓아 올려서 널방[墓室]을 덮은 묘의 형식을 갖추었다. 돌무지무덤은 주로 석재가 풍부한 해안, 하천 부근, 산간지역 등에서 축조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인 고구려, 백제 초기까지 나타난다. 월정리 돌무지무덤은 그 일대가 능모랭이, 또는 뱀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사주열이라 불리기...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월정리 중현에 서 있는 입석. 월정리 선돌은 화강암 판석을 사각 기둥 모양으로 약간 치석하여 세웠다. 1983년에 마을 회관 주위에 담을 쌓으면서 선돌이 담 안으로 들어갔으나 지금은 담이 무너져 밖에서 볼 수 있다. 선돌의 크기는 높이 135㎝, 너비 44㎝, 두께 16㎝로 앞면과 뒷면에 다듬은 흔적이 보이고 이끼가 많이 끼어 있다. 현재 신앙의 대상이 되지...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형(自馨), 호는 연균(緣筠) 또는 어수(漁叟). 유사근(柳士根)의 손자이고, 교리 유승순(柳承順)의 아들이며, 사육신(死六臣) 유성원의 큰 조카이다. 아들로는 서경(瑞卿) 유인종(柳鱗鍾)이 있다. 유계분은 1441년(세종 23) 20세에 진사(進士)가 된 후 1453년(단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문화. 아버지는 유백종(柳伯宗)이다. 재종조(再從祖)인 장령 유정수가 경기도 고양군 수색에 살던 중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이를 간하다가 연산군의 노여움을 받아 초산으로 유배되었고 유배에서 풀린 뒤에도 복직되지 못하였다. 어려서 이러한 상황을 본 유광총은 자신의 가문에서 과거길이 막힌 것을 근심하다가 십승지지(十勝之地)를...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중현(仲賢), 호는 혜인(兮人). 서예가 유한지(兪漢芝)의 손자이며, 이조참의 유초환(兪初煥)의 아우이다. 1855년(철종 6) 사마시에 급제하여 창릉참봉, 제용봉사, 오위사과 등을 거쳐, 1871년(고종 8) 통례원인의, 한성부주부, 판관을 역임하고, 태조태종추상존호도감낭청을 담당하였다. 1872년 의령현감, 1874년 평강현감, 1...
-
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1638년(인조 16)에서 1640년(인조 18)까지 음성현감으로 재직하였으며, 재임하는 동안 청백리로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간신의 모함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 안성 향리로 돌아갔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아버지는 한성부판윤을 지냈던 유호(柳滸)이며, 아들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성원(柳誠源)이다. 유사근(柳士根)은 1401년(태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이 되었다가 1425년(세종 7)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쳤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있다. 아들 유성원이 1691년(숙종...
-
조선 중기에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1695년(숙종 21) 음성현감으로 부임하여 1699년(숙종 25)까지 재임하였다. 부임하던 1695년과 이듬해까지 2년 동안 목민관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여 칭송을 받았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태초(太初), 호는 낭간(琅玕)이다. 사인(舍人) 유사근(柳士根)의 아들이며 조부는 한성부판윤 유호(柳滸)이다. 연균(緣筠) 유계분(柳桂芬)이 큰 조카이다. 유성원은 144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의방유취(醫方類聚)』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3년 후에는 문과 중시에 합격, 집현전 학사를 지내며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
조선 전기 음죽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서경(瑞卿). 아버지는 괴산군수 유계분(柳桂芬)이다. 유인종(柳麟種)[1450~1513]은 1472년(성종 3) 진사가 되고 8년 뒤인 1480년(성종 1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84년(성종 15)에 이조좌랑이 되었고 이듬해 음죽현감(陰竹縣監)이 되었다. 1487년(성종 18)에 헌납·사간을 지냈다. 정언으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백선(伯善), 호는 남강(南岡). 서예가 유한지(兪漢芝)의 손자이며, 사복시판관 유능환(兪能煥)의 형이다. 1849년(헌종 15) 진사가 되고 1863년(철종 14) 문과에 급제하였다. 학문이 깊고 문장에 능하며 선대 3대의 필법(筆法)을 이어받아 글씨가 정묘(精妙)하였다. 벼슬에 나아가 정언, 교리, 사성, 승지, 대사간을 거쳐 이조...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덕휘(德輝), 호는 기원(綺園). 산청현감 유언수(兪彦繡)의 아들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가 감역, 영춘현감을 역임하고,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필법을 이어받아 필재(筆才)로 명성을 얻어 “동방 전예(篆隸)의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동호보(海東號譜)』에 “유기원은 전예를 잘해서 그 명성이 일세(...
-
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군익(君翼), 호는 능호(凌湖). 아버지는 윤택진(尹宅鎭)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서 출생하였는데, 날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였다. 1861년(철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선공감역이 되었다가, 1870년(고종 7) 승지 민병승(閔丙承)의 천거로 훈련원첨정이 되어 훈련원도정에 올랐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경춘(慶春), 호는 추암(棷庵). 충효공 윤환(尹桓) 후손이다. 윤병의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다. 노역(勞役)으로 20세에 이르러 이항로(李恒老)와 유중교(柳重敎) 두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894년 갑오개혁에 통분하다가 외세를 물리칠 것을 다짐했으며, 1895년 유인석(...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 좌의정 윤사흔(尹士昕)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윤교명(尹敎明)이다. 지금의 경기도 양근군 남시면 지탄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각모(申慤模)의 딸이다. 부인은 영월신씨로 신석하(辛錫河)의 딸이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청풍의 산중...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성언(聖言), 호는 일와(一窩). 할아버지는 의병 윤병의(尹秉義)이다. 윤정학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서 출생하였다. 유인석(柳麟錫) 문인으로, 고종 때 진사가 되었다. 1895년과 이듬해에 의병이 되어 스승 유인석, 조부 윤병의와 의거에 가담하여 충주와 제천 싸움에 참여하였다. 충주 싸움에서 패한 뒤 물러나 충...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계수(季守), 호는 희암(希菴)·송국주인(松菊主人). 아버지는 현령 윤해(尹海)이다. 한성에서 출생하여 4세에 책을 읽고 글씨를 써서 세상 사람들이 신동이라 칭하였다. 1554년(명종 9) 정산(鼎山) 박형(朴泂)의 문인이 되어 장차 대유(大儒)가 될 인물이라 하였다. 1580년 이조판서 윤국형(尹國馨)의 천거로 희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
조선 중기 무송윤씨 충청북도 음성군 입향조. 본관은 무송. 자는 자신(子新), 호는 낙옹(樂翁). 군자감정(軍資監正) 윤이관(尹李寬)의 아들이다. 1660년(현종 1)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살다가 천연두가 크게 유행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선대의 고향인 경기도 여주군으로 가던 도중에 충청북도 음성군 당곡(唐谷)[지금의 하당리]에서 외숙부인 주부(主簿) 반운익(潘雲翼)을 만나 하노리 능...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조선 태종의 제1서자 경녕군의 부인 청풍김씨의 묘.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태종의 장남이다. 경녕군 부인 청풍김씨는 1416년(태종 16)에 경녕군과 성혼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경신택주 안산군부인(敬愼宅主 安山君夫人)에 봉해졌다. 1450년(세종 32) 4월에 서거하여 현 위치에 안장되었다. 경녕군...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과 그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표. 매장 시에는 봉분을 만들고 봉분 앞에 묘표석과 혼유석, 상석, 향로석을 배치하고 장명등, 촛대석, 문인석 등의 석물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부 합장묘의 경우 묘표석을 하나 세워 그 안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좌우에 따로 묘표석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양촌 권근의 묘소는 경기도 성...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과 그의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의 3대 묘소 및 신도비(神道碑). 조선시대의 묘소는 풍수지리에 의해 길한 땅을 택하여 만들어졌는데 왕릉처럼 병풍석(屛風石)을 두를 수는 없었다. 묘 앞에는 석상(石床)을 놓고 양쪽에 망주석을 세웠다. 석상 앞쪽으로는 장명등(長明燈)을 놓고 좌우에 석인(石人)들을 세웠다. 종2품 이상 고관의 묘에는...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망이산 일원에 축조된 고대 국방 시설. 그간 봉수대로 알려져 왔으나 1980년 단국대학교 학술 조사단에 의해 고구려의 남진 기지로 쓰인 산성으로 추정되었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주로 조선시대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록들에...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일원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수정산성의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고문헌 기록은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호서읍지(湖西邑誌)』·『대동지지(大東地志)』·『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등에 의하면 수정산이 ‘음성 읍내의 동쪽 3리 또는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살펴보면 수...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묘. 어재연(魚在淵)[1823~1871]은 조선 후기의 무장으로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이며 어용인(魚用仁)의 아들이다. 1866년(고종 3)에 충청도 병마절도사, 회령부사를 지냈고, 그 해에 병인양요가 나자 우선봉장으로 강화도 광성진을 수비하여 적을 격퇴시켰다. 1871년(고종 8) 2월 도총관...
-
음성 지역에 언제 처음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청동기시대 구릉 위에 만든 마을의 둘레에 환호(環壕)를 두른 유적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 안팎으로 나무말뚝 따위를 죽 이어서 박아 만든 울타리, 곧 울짱의 형태와 같은 목책(木柵)을 두른 시설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책 이외에 흙으로 다져서 성벽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
-
757년(신라 경덕왕 16)에서 1895년(고종 32)까지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음성현의 지명으로는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의 향교말과 감원역에서 유래한 역말 등이 남아 있고 음성향교가 아직 현존하고 있지만 음성현시대의 유적과 유물 등은 거의 사라졌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확대된 영토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효령대군의 현손 이효언(李孝彦)의 아들이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 있다. 이곳 묘소 근처를 전능(前陵)이라 하는데, 영의정에 증직된 까닭에 ‘능(陵)’ 자를 붙였다 한다. 영의정에 증직되고 극풍부원군(克豊府院君)이 되었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 문경공(文景公) 이직(李稷)의 6세손이고, 이군좌(李君佐)의 아들이다. 이구령은 일찍이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박학독행(博學篤行)하였다. 임진왜란 때 홍천현감(洪川縣監)으로 부임하여 조헌과 더불어 창의(唱義)를 모의하여 충청남도 금산군 수남(樹柟)에 진을 치고 전투하였다. 공격하던 중 말에서 떨어져 1592년(선조 25) 8월...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목사 이국헌의 선정비. 이국헌(李國憲)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숙(文叔)이다. 부친은 이여연(李汝淵)이다. 1660년(현종 1) 증광시(增廣試)에 생원 3등 45위로 입격하였다. 1676년(숙종 2) 호조정랑(戶曹正郞), 문의현령(文義縣令), 부사과(副司果), 이듬해 금산군수(錦山郡守)를 역임했다. 1683년(숙종 9) 부...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의 증손이고, 부사과 이숙(李塾)의 아들이다. 이기홍은 어려서부터 지혜가 뛰어나 수년 만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었고, 약관의 나이에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어 이지렴(李之濂)에게 수학했다. 1665년 송준길(宋浚吉)에게 학문의 요결을 배우고, 송시열(宋時烈)...
-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호(仲浩), 호는 행남(杏南). 아버지는 이함(李涵)이다. 도암(陶庵) 이재(李縡)의 문인이 되어 학문으로 감역(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서울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로 내려와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처사(處士)라 불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다. 문암(文菴) 이의철(李宜哲)이 묘갈을 찬...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 졸부(拙夫)이다. 동몽교관 이희선(李喜善)의 아들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첨지중추부사 박주(朴冑)의 딸이고, 음애(陰崖) 이자(李耔)의 외손이다. 이상급은 문과에 급제하여 1603년(선조 36)에 성균관진사가 되었으며, 1606년 증광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權知...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효령대군 이보(李𥙷)의 6세손이며, 이경금(李景嶔)의 아들로 증영의정 이경두(李景㞳)에게 입양되었다. 이성은 진사, 참봉을 거쳐 문한림, 이조참판,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에 종군하였다가 전사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고, 이덕형(李德馨)이 묘비 글을 썼다. 완계군(完溪君)으로 훈봉되...
-
조선 중기 음성군 출신으로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진(聖珍), 호는 정헌(靜軒), 율리사옹(栗里蓑翁).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지걸(李志傑)이다. 이세근은 윤증(尹拯)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697년에 정시문과에 갑과 2등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699년에 음성현감으로 부임하여 사직사우를 창건하였고, 고마청(雇馬廳)을 창설하였다. 또...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세근의 선정비. 이세근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진(聖珍)으로 이지걸(李志傑)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문과정시 을과 2위로 합격하였다. 1699년 지평(持平)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과거 파방(罷榜)에 대한 상소로 말미암아 음성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707년(숙종 33) 정언, 교리, 수찬 등 청요직(淸要職...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명서(明瑞).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지걸(李志傑)이고, 형은 이세근(李世瑾)이다. 이세진은 1725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26년 지평으로 붕당의 폐해를 논하는 ‘파붕당(罷朋黨)’을 상소했다가 삼수부로 귀양을 갔다. 1727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필선, 장령, 헌납, 사간을 역임하였다. 1729년 박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巖). 조부는 진사 이자침(李自琛)이고, 아버지는 이란(李鸞)이다. 이자침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음성에 은둔하여 있을 때 아버지 이란을 낳았는데, 이란은 일찍 별세하였다. 부인은 장원감 이귀년(李貴年)의 딸이다. 아들 셋을 낳았는데, 이정(李淀), 이용(李溶), 이완(李浣)이다. 이수일은...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숭운의 선정비. 이숭운의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사진(士鎭), 호는 존암(存庵)으로 서울 태생이다. 부친은 성균관사성 이수덕(李壽德)이다. 1759년(영조 35) 식년시 진사 3등 30위로 입격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만녕전참봉(萬寧殿參奉)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현릉참봉, 1781년(정조 5)에 음성현감으로 부...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중여(重汝), 호는 신암(愼庵). 이시성(李蓍聖)의 6세손이고, 아버지는 이징현(李澂鉉)이다. 이승권은 금계(錦溪) 이근원(李根元)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이승권은 오갑산 아래 세운 옥산영당(玉山影堂)에 선조인 직재(直齋) 이기홍(李箕洪)을 배향하였다. 또한 춘추로 석전제(釋奠祭)를 지내면서 학생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계통(季通), 호는 경묵당(景黙堂). 이시성은 귀천군 이수(李晬)의 고손이고, 아버지는 직재 이기홍(李箕洪)이다. 이시성은 유학자로 1723년(경종 3)에 변선정(卞先正)의 무간(誣奸)함을 항소하였고, 전관(銓官) 천거를 거부하였다....
-
조선 중기의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년(大年). 태종의 아들 익령군(益寧君)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수천군(秀泉君) 이정은(李貞恩)이고 아버지는 귀기군(貴杞君)이다. 부인 우씨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감찰 정류(鄭鎦)의 딸에게서 영의정 이원익(李元翼)과 현령 이원보(李元輔)를 두었다. 1516년(중종 11) 사마시에 급제하여 귀후서별제, 의금부도사, 내섬시주부를...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음성향교 앞에 있는 조선 후기의 음성현감 이연긍의 선정비. 이연긍은 1858년(철종 9) 현륭원참봉(顯隆園參奉)을 거쳐 1865년(고종 2) 음성현감에 부임했다. 1866년에는 안산군수(安山郡守)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867년 4월 공충도암행어사(公忠道暗行御史) 홍철주(洪澈周)가 올린 글에 음성현감 재직 때 백성들의 송사를 공평하게 처리하고 이서를...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 자는 징지(澄之), 호는 매죽헌(梅竹軒). 계림부원군 이수일(李守一)의 아들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정자촌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고 1627년 영유현령, 1629년 상원군수, 1630년 숙천부사, 1631년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올랐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김자점 휘하의 별장으로...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1리에 있는 조선시대 이유일의 묘비. 이유일은 이란의 아들이며, 자는 백순(佰淳)이다. 죽은 뒤에 품계가 높아져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된 인물이다. 이유일에 대한 상세한 기록한 남아 있지 않다. 비신과 방부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가 172㎝이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140㎝, 앞면 폭 52㎝, 측면 폭 37㎝이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유응(幼應), 호는 노가당(老稼堂).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의 5세손으로, 직재 이기홍(李箕洪)의 손자이며, 경묵당 이시성(李蓍聖)의 아들이다. 어려서 가학(家學)을 계승하여, 중형 이능제(李能濟)와 같이 윤봉구(尹鳳九) 문하에서 배워 덕을 쌓았다. 1755년(영조 31) 안윤중(安允中)이 올리는 상소에 가담하였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득여(得輿), 호는 관송(觀松)·쌍리(雙里). 좌찬성 이극돈(李克墩)의 후손이며, 이우선(李友善)의 아들이다. 이이첨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천성이 효우하고 제행(制行)이 고결하여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김이 지극하였다. 1593년(선조 26) 광릉참봉에 제수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야수(野叟), 호는 소옹(素翁). 아버지는 병조참의 이상급(李尙伋)이다. 아들은 이지술(李志述), 이지도(李志道), 이지규(李志逵)이다. 15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하였고 장성하여 장유(張維)에게 수학하였다.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 진사에 올랐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여 원종...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인실의 묘비. 이인실은 자가 효사(孝思), 호는 갈파(葛坡)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1633년(인조 11)에 성균관에 들어갔다. 사옹원봉사, 종묘서직장을 거쳐 의금부도사가 되었고, 귀후서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며,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가 되었다. 비신, 가첨석, 방부 등 3단으로 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풍림거사(楓林居士).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참판 이형증(李亨增)의 손자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부인은 인천채씨로 채수(蔡壽)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이후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어, 천추사(千秋使)...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1리에 있는 조선시대 이자침의 묘비. 이자침은 자가 정실(庭實)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을묘사마시(乙卯司馬試)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비신과 방부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방부는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140㎝, 앞면 폭 56㎝, 측면 폭 17㎝이며, 방부는 가로 92㎝, 세로 60㎝이다. 비신 앞면에는 ‘...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이종청의 선정비. 이종청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일(仲一)로, 서울 태생이다. 부친은 승정원우승지(承政院右承旨) 이위달(李渭達)이다. 1837년(헌종 3) 식년시 진사(進士) 3등 27위로 입격하였다. 1844년(헌종 10)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으로, 이듬해 음성현감에 부임하였다. 선정비는 1849년(헌종 15)에...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부(秀夫), 호는 금호(琴湖)·만은당(晩隱堂). 병조참의 이상급(李尙伋)의 손자이고, 증좌승지 이련(李堜)의 아들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진사 권순열(權順悅)의 딸이다. 아들은 이세근(李世瑾), 이세진(李世璡)이다. 이지걸은 3세에 고아가 되어 작은아버지 이인(李寅)에 의탁하여 자랐다. 1654년(효종 5) 진사...
-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명 쌍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지걸의 묘. 이지걸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천(秀天), 호는 금호(琴湖)이고, 부친은 선교랑(宣敎郞) 이연(李堜)이다. 1654년(효종 5) 식년시에 생원 3등 49위로 입격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고, 그 후 경상도 영덕현감(盈德縣監)으로 부임했다가 남형(濫刑)의 죄로 곤양(昆陽)...
-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지걸의 묘비. 이지걸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천(秀天), 호는 금호(琴湖)이다. 부친은 선교랑(宣敎郞) 이연(李堜)이다. 1654년(효종 5) 식년시에 생원 3등 49위로 입격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고 그 후 경상도 영덕현감(盈德縣監)으로 부임했다가 남형(濫刑)의 죄로 곤양(昆陽)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이진봉 정상부에 있는 고려시대 토성. 이진봉 산성은 고문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생극면 신양리·병암리 고진봉, 생극면사무소의 동남 약 5정에 있음. 토축으로서 둘레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폐함”이라 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국유적목록』에는 “토축, 둘레 약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채청의 비(碑). 목사 이채청 비는 조선시대 충주목사를 지낸 이채청과 관련된 비석이다. 이채청에 대해서는 1802년(순조 2)부터 1810년(순조 10)까지 충주목사를 역임한 사실 이외에는 특별히 기록된 것이 없다. 비문에 이월(二月)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을 뿐, 날짜 부분이 파손되어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충주목...
-
조선 중기의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군미(君美), 호는 애일당(愛日堂). 효령대군의 현손이며, 강성도정 이견손(李堅孫)의 넷째아들이다. 부인은 청주한씨로 대간 한승정(韓承貞)의 딸이다. 1510년(중종 5) 춘추관기사관, 1511년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수찬, 검토관, 직산현감이 되었다. 1512년 이조좌랑으로 소릉에 관한 상소를 하였다. 1518년 이조좌랑, 봉상시...
-
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 자는 여무(汝懋), 호는 외재(畏齋). 이엄(李儼)의 아들이다 이후경은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영남에서 명유(名儒)로 추앙을 받았다. 광해군 때에 학행으로 천거를 받아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에 강화로 왕을 호종하고 돌아와, 이듬해 음성현감이 되었다. 1630년 72세로 죽자 병조참의에...
-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고구려가 설치한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잉홀의 지명은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12월에 음성으로 변경되었다.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약물제 동쪽에 터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문동(龜文洞)이라고도 하는 이 마을은 고구려 때 잉홀현의 관청이 있어 ‘터골’이라고 하였고 ‘...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장자봉에 있는 토축 산성. 장자봉 산성은 문헌 기록이나 조사 자료는 전혀 없고 2002년의 지표 조사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된 산성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와 만담리 뒤 해발 192m의 장자봉 봉우리를 감싸고 있다. 장자봉 산성의 동쪽으로는 북류하는 응천(鷹川)을 끼고 음성-장호원 간의 국도 37호선이 지나고 있고 북쪽으로는 삼성...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효칙(孝則).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며, 부인은 청풍유씨(淸風劉氏)이다.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채유종(蔡有終), 조웅(趙熊) 등 여러 사람과 의병을 일으켜 5백여 명을 모아 6년간 싸우면서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하였다. 1597년(선조...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묘. 장충범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효칙(孝則)이다. 조선 선조 때의 충신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다. 음보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자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생...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동한 장충범의 신도비. 장충범은 자는 효칙(孝則), 본관은 단양(丹陽)으로, 생원 장언구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군자감주부로서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향리인 삼생리로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1597년(선조 30)에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삼생리 구진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교지로...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여견(汝見), 호는 석천(石泉). 정선전씨 안동파로, 아버지는 호조판서 전응조(全應祖)이며, 전용은 5명의 아들을 두었다. 성품이 헌칠하고 우뚝하여 일찍이 궁마(弓馬)와 기예(技藝)를 익혔다. 임진왜란을 만나 사복시(司僕寺)에 속하여 임금·세자 등이 탄 말을 끌던 종7품 잡직인 견마배(牽馬陪)로 선조를 호위하며 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홍문관교리 정수곤(丁壽崑)의 아들이다. 1520년(중종 15)에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며, 1530년(중종 25)에는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냈고, 나중에는 벼슬이 홍문관교리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산봉우리 위에 있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이며, 아버지는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부사맹(副司猛) 정사중(鄭思中)이다.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1555년(명종 10) 13세에 덕계(德溪) 오건(吳健)을 스승으로 모셨고, 겸하여 퇴계(...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2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정국량의 묘비. 정국량은 본관이 초계(草溪)이며, 자는 공거(公擧)이다.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侍墓)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갔으나 정국량은 초막(草幕)을 떠나지 않았다. 이를 본 왜적이 정국량의 효성에 감동하여 물침기(勿侵旗)를 주었다.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 때에도 효(孝)를 다할 수 있었다. 이러...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공두(公斗). 정창(鄭昌)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5형제 중 둘째로 형이 정국주(鄭國柱)이며, 동생으로는 정국량(鄭國樑), 정국노(鄭國櫓), 정국빈(鄭國彬)이 있다. 정국추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형과 아우들에게 우애와 정이 두터워 화목하였고, 충성과 의리 또한 남달...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회당 윤응선(尹膺善) 문하에서 배웠다. 약관의 나이에 사서육경을 통독하고 제자백가에도 통달하였다. 박세화·윤응선·신현국 세 사람의 문집 간행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또 효행이 지극하여 10년 동안이나 늙은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세수를 시키며 망건을 씌워 드리는 등 봉양을 하루같이 실천하였고, 상을 당하여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아버지는 교리(校理) 정수곤(丁壽崑)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덕고개에 살았던 인물로, 1498년(연산군 4)에 22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 사직(司直)이 되었으며, 3년 뒤인 1508년(중종 3)에는 현감을 지냈다. 그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자인(子仁), 호는 우헌(遇軒). 아버지는 정경례(鄭景禮)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서 생활하였으며, 1573년(선조 6) 17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3년 뒤인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의금부도사, 병조정랑을 거쳤으며, 맹산군수를 지냈다. 1602년(선조 35) 46세에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고(士皐).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냈던 정석오(鄭錫五)이고,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했던 정양순(鄭養淳)이다. 1768년(영조 44)에 음보(蔭補)로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가 된 이후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를 거쳐 1775년(영조 51)에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그리고 2년 뒤에 사복시판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정문한은 1669년(현종 10)에 음성현감으로 부임하여 1673년까지 재임하였다. 재임 중 1670년과 이듬해인 1671년 두 해에 걸쳐 흉년이 들었는데, 힘을 다해 음성현민을 구휼하여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언술(彦述).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정수곤(丁壽崑)이고, 아버지는 현감을 지냈던 정담(丁聃)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서 태어나 생활하였으며, 26세인 1530년(중종 25)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어 벼슬이 별좌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산봉오리 위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 시호는 정간(貞簡). 정혁선(鄭赫先)의 아들이며 진주목사를 지낸 정동협(鄭東協)은 정석오의 손자이다. 정석오는 1715년(숙종 41)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문학을 거치고 경종이 즉위하면서 부수찬·교리를 지냈다. 1721년 30세 때 지평으로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 사대신(四大臣)을...
-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석오의 묘. 정석오는 조선 영조 때 소론의 대표적인 인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이다. 1746년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였고, 1748년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로 청나라로 가던 중 병사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묘역은 약 600㎡로, 묘비, 문인석, 망주석, 상석 등을 갖추었다. 비제(碑題)는 ‘...
-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석오의 묘비. 정석오는 자는 수호(收好)이며,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1715년(숙종 4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문학, 부수찬, 교리 등을 지냈다. 1721년(경종 1) 지평으로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 사대신을 논척(論斥)하여 유배케 했으나, 1725년(영조 1) 소론의 실각으로 파직되었다. 1721년(영조 3...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붕(不崩), 호는 월헌(月軒).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교리(校理) 정수곤(丁壽崑)의 아우이다. 정수강은 1474년(성종 5) 20세에 진사가 되고 1477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1482년에는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건(不騫). 소격서령(昭格署令)을 지낸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호조참판 정수강(丁壽崗)의 형이다. 정수곤의 아들은 현감을 지낸 정담(丁聃)이고, 처는 상주김씨(尙州金氏)다. 정수곤은 1472년(성종 3)에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교리(校理)를 지내고, 그 후 공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공(聖功)이라 하다가 후에 회숙(晦淑)으로 고쳤다, 할아버지는 정혁선(鄭赫先)이며,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냈던 정석오(鄭錫五)이다. 1745년(영조 21)에 음보(蔭補)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5년 뒤인 1750년(영조 26)에는 광흥창수(廣興倉守)가 되었다. 이듬해 개령현감에...
-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양순의 묘비. 정양순은 좌의정 정석오(鄭錫五)의 아들이다. 자는 성공(聖功)이라 하다가 후에 회숙(晦淑)으로 고쳤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1745년(영조 21)에 음보(蔭補)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1750년(영조 26)에 광흥창수(廣興倉守)가 되었다. 세자우익위(世子右翊衛), 군위현감...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국(景國), 호는 유당(留堂). 정희조(鄭喜朝)의 아들이다. 정인학은 1870년(고종 7) 31세로 생원시에 합격하고 1880년 알성문과(謁聖文科) 병과에 급제하였다. 처음에 주서(注書)로 기용되어 다음해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와 응교(應敎)를 거쳐 병조정랑(兵曹正郞)이 되었다. 1884년에는 이조참판에 이어서...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나주. 아버지는 교리 정수곤(丁壽崑)이다. 형으로 정담(丁聃)이 있다. 1510년(중종 5)에 생원시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산봉(山峰) 위에 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정현석의 선정비. 정현석은 철종 대의 음성현감이었으며,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비문으로 보아 음성현감 재직 때 선정을 베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정비는 1860년(철종 11)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총 높이는 129㎝이며 비신과 개석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碑身)은 높이...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초계. 자는 향숙(饗叔). 아버지는 호조참의를 역임한 효자 정국노(鄭國櫓)이다. 조선 선조 때에 태릉참봉을 지내고, 봉사(奉事), 찰방(察訪),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만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김정현, 조옥 등과 함께 향산의 고사(중국 당나라의 향산거사 백낙천의 향산구로회)를 본받아 칠십회(七十會)를 만들...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 자는 경관(景觀), 호는 설죽(雪竹). 아버지는 참봉 조유백(趙惟白)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 바디실에서 출생하고 그곳에서 살았다.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바로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08년(선조 41) 승정원가주서로 선조의 임종을 지켰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자 예문관검열에 임용되어, 1...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자선 사업가. 조륵(趙玏)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서 출생하였다. 조륵이 재산을 모은 일과 관련하여 음성 지역과 충주 지역에는 많은 일화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자린고비라 하여 구두쇠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지만 실은 자선 사업가를 의미하는 대명사로 씀이 바람직할 것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선조 때 성균진사(成均進士)를 지낸 조경...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순창(淳昌). 형은 조복(趙服)이다. 조반은 1592년 임진왜란 때 형 조복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월고산(月高山) 국사봉(國師峯)[소이면 금고리 소재]에서 힘을 다해 왜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우목야(牛牧野)[소이면 갑산리 소재]에서 형과 함께 전사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으로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증직...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순창(淳昌). 동생은 조반(趙胖)이다. 조복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동생 조반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월고산(月高山) 국사봉(國師峯)[소이면 금고리 소재]에서 목숨을 바쳐 왜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우목야(牛牧野)[소이면 갑산리 소재]에서 동생과 함께 전사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직(子直), 호는 동강(東岡). 예조판서 조형(趙珩)의 아들이며, 할아버지는 승지 조희보(趙希輔)이다. 조상우는 1657년(효종 8) 1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연천현감(連川縣監)을 지냈다. 1675년(숙종 1)에는 스승인 송준길(宋浚吉)이 삭직을 당하자 홍득우(洪...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음성군의 역사. 조선 초기 음성 지방은 고려의 지방제도와 같이 충주목에 속한 4속현(영춘·제천·음성·연풍)의 하나였다. 음성현은 1413년(태종 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현감을 두었으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충주 제천에 이르기까지 7리, 서쪽으로 충...
-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군계(君啓). 판도판서(判圖判書) 조돈(趙暾)의 아들이다. 조인옥은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생원이 되고 1387년(우왕 13)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의 휘하에 종군하여 최영(崔塋) 등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남은(南誾) 등과 더불어 이...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 승지(承旨) 조희보(趙希輔)의 아들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조상우(趙相愚)는 그의 아들이다. 조형은 어려서 장난이 심하였으나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9세에 경서(經書)를 해득하여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1630년(인조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형(趙珩)의 묘소. 조형은 본관이 풍양(豊壤)이며,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이다. 1651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와 보덕을 거쳐 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충청감사를 거쳐 1657년 도승지, 대사간이 되었다. 1669년에는 평안도 외방별시의 시관이 되었고, 이듬해 좌참찬을 지냈으며, 1673년 예조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형의 묘비. 조형(趙珩)은 승지 조희보(趙希輔)의 아들로, 자가 군헌(君獻)이고 호는 취병(翠屛)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부교리, 응교, 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으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사은사(謝恩...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형의 신도비. 조형은 자가 군헌(君獻)이고 호는 취병(翠屛)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1643년(인조 21)에 부교리를 역임했다. 1650년(효종 1)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으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통신사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광여(光汝). 문공 주희(朱憙)의 26대손이다. 주응동은 청빈하게 살았으나 서원을 건립할 자격이 없었다. 이에 사림회의(士林會議)를 통하여 서류를 관아에 제출하여, 순영(巡營)으로부터 당우를 건축하라는 단자(單子)를 받았다. 1856년(철종 7)에 주응동은 안성에 사는 김문웅으로부터 문공 주희(朱憙)의 영정을...
-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있던 삼한시대의 소국. 한강 이남의 지역은 기원전 4~3세경 이후에 철기 문화가 전파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이 지역의 원시 사회는 부족 사회로 바뀌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형성되는데, 『사기』「조선전(朝鮮傳)」에 나타나는 진국(辰國)이 그것이다. 이 무렵 한족의 침입으로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의 군현이 설치되자 유민들이 진국으로 유입되면서 한강 이남의 지역에서 새...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인천. 자는 영이(詠而), 호는 우담(雩潭). 아버지는 채유종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서 출생하였다. 경사백가에 통달하고, 특히 역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지리·의학·복서·음율 등에 밝았다. 1630년(인조 8) 천문을 관측해 보고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고향인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 또는 청허자(淸虛子). 아버지는 부사를 지냈던 채신보(蔡申葆)이며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채윤(蔡倫)이다. 채수는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69년에 추장문과(秋場文科)에 장원하여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에 제수되었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세조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 아버지는 사예(司藝) 채륜(蔡倫)이고, 아들은 나재(懶齋) 채수(蔡壽)이다. 채신보는 1438년(세종 20) 18세에 진사(進士)가 되고 함창현감(咸昌縣監)을 거쳐 1458년(세조 4)부터 1465년(세조 11년)까지 7년간을 음성현감으로 재직했다. 그 후 경산현감(慶山縣監)·...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채신보의 묘갈. 채신보는 자가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이며, 본관은 인천으로, 사예 채륜(蔡倫)의 아들이다. 1438년(세종 20)에 진사가 되었고, 1458년(세조 4)에 음성현감을 지냈다. 이후 경산현감(慶山縣監), 평해군수(平海郡守), 남양도호부사(南陽都護府使)를 거쳤다. 1484년(성종 15)에 원남면 삼용리 물언...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채신보의 신도비. 채신보는 자가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이며, 본관은 인천으로, 사예(司藝) 채륜(蔡倫)의 아들이다. 1438년(세종 20)에 진사가 되었고, 1458년(세조 4)에 음성현감 및 경산현감, 평해군수, 남양도호부사를 지냈다. 1484년(성종 15)에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 소산정사(梳山精舍)를 짓고 여생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수겸(秀謙). 지헌(之軒) 채유희가 형이고, 아들로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서 태어났다.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한 후 1592년(선조 25) 31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채유희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으며, 그 뒤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을 역임하였다....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 문신. 채정은 본래 음성의 이속(吏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였다. 고려 후기인 무인집권기 때 동도(東都)[지금의 경주]의 장서기(掌書記)가 되어 청렴하게 자기 직분을 다하고 백성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었다. 임기를 마치고 국학학정(國學學正)이 되었는데 칠재(七齋: 고려 예종 때 국자감에 설치한 일곱 과목의 전문 강좌)의 학생들...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초징명의 선정비. 선정비는 1868년(고종 5)에 세워졌고, 현재 음성향교 앞에 다른 비석군들과 함께 있다. 총 높이는 127㎝이며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비신(碑身)의 경우 높이 91㎝, 앞면 45㎝, 측면 18㎝이고, 개석(蓋石)은 높이 91㎝, 앞면 45㎝, 측면 18㎝이다. 비신 앞면에는 ‘현감초후징명청...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충주. 강원도관찰사 최개국(崔蓋國)의 종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최인정(崔仁禎), 아버지는 최배(崔㠔)이다. 최개국이 을사사화를 입어 삭탈 관직되자 이에 연루된 조부 최인정, 부친 최배는 충주에서 쫓겨 청안으로 피신하여 살았다. 최기오가 나이 들어 1690년(숙종 16)에 다시 충주로 가던 도중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토계울에 눌...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최난수는 임진왜란때에 충청북도 음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서도 조정의 포상을 사양한 뒤 전사한 의인이다. 최난수(崔鸞壽)은 고려 좌참찬 최유경(崔有慶)의 5세손이고, 선략부호군 최우령(崔禹齡)의 아들이다. 최난수는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반인후(潘仁後)와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여 전과를 올렸다. 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중(成仲), 호는 사우당(四友堂). 관찰사 최상익(崔商翼)이 형이다. 1674년(현종 15)에 40세에 사마시에 합격한 후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을 지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소의장씨(昭儀張氏)의 아들을 원자로 세우려는 숙종의 뜻을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이 반대하였다. 이에 실각...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경렬(景烈), 호는 소성(小醒). 아버지는 효자 최재기(崔在沂)이다. 1852년(철종 3) 10월 16일에 창경궁 춘당대에서 열린 생원시에서 장원을 하여 철종의 찬사를 받았다. 입격한 시부(試賦)가 남아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매봉재에 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최홍걸의 시혜비. 최홍걸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본관은 전주이고, 호는 소파(小婆)이다. 시문(詩文)이 청아하고 의사(意思)가 초연하였다고 전한다. 비신(碑身)의 높이는 112㎝, 앞면의 폭은 35㎝, 측면의 두께는 12㎝이다. 비석 앞면에는 ‘소파거사최홍걸시혜불망비(少坡居士崔弘杰施惠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항(汝恒), 호는 설파(雪坡). 1819년(순조 19)에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태어나 1851년(철종 2) 32살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집의까지 지냈으나,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 『설파집(雪坡集)』을 남겼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새고...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도남에 있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고분. 이 유적은 말무덤[馬塚]으로 불리고 있다. 고려 때 거란병이 침입했을 때 원남면 구안리에 주둔하며 수정산성에 진을 친 박서 장군과 대치하던 거란장군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 형세가 장군이 탄생할 만한 곳이라 고갯길을 파헤쳐 혈을 끊으니 백마가 나왔고, 백마가 울며 죽은 곳에 말무덤을 만들어 장수의 탄생을...
-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발견하거나 보관하고 있는 선사시대와 고대에 제작된 용기. 토기는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럽·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고, 유약을 바른 것을 자기(...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팔성산에 있는 고대 산성. 팔성산성은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도계에 걸쳐 있는 중요한 산성이나 고문헌에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생극면 팔성리, 금왕면 관성리의 북방 약 400간 팔성산정에 있음. 토축으로서 현존하는 부분 약 500간, 반폐함”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책 경기도편에 “율면 산성리 팔성, 본성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자선사업가. 피학용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살았으며, 천석(千石)의 부자였다. 1805년(순조 5) 38세 때 충주 지방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돈 백 냥과 수십 석의 쌀로 구휼하였다. 충주목사가 이 사실을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박윤수(朴崙壽)에게 알렸으며, 이 사실로 표창을 받았다. 1819년(순조 19)...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양(晋陽). 호는 지비당(知非堂). 5대조는 동지중추부사 하우명(河友明), 고조부는 옥과현감 하철행(河哲行), 증조부는 통덕랑 하영담(河永淡), 할아버지는 하승세(河承世), 아버지는 전라도수군절도사 하덕록(河德祿)이다. 어머니는 경주이씨로 이덕승(李德承)의 딸이다. 아들은 셋으로 첨지중추부사 하변(河汴), 하흡(河潝), 첨지중추부사...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한이원의 묘비. 한이원은 한치상(韓致相)의 아들로 자는 숙기(叔起), 본관은 곡산(谷山)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후 감찰이 되었다. 1692년(숙종 18)에는 결성현감을 지낸 후 전적을 역임하였다. 1715년(숙종 41) 『가례원류(家禮源流)』 사건으로 소론인 교리 송성명(宋成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