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7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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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國樑 |
영어음역 | Jeong Gukryang |
이칭/별칭 | 공거(公擧)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양병준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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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
성별 | 남 |
생년 | 1566년(명종 21) |
몰년 | 1652년(효종 3) |
본관 | 초계(草溪) |
대표관직 | 참판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공거(公擧). 정창(鄭昌)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윤공(鄭輪公)이다. 그의 셋째 아들로, 형으로는 정국주(鄭國柱)와 정국추(鄭國樞)가 있으며, 동생으로는 정국노(鄭國櫓)와 정국빈(鄭國彬)이 있다.
[활동사항]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하던 중, 임진왜란을 당하여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갔으나 정국량과 형 정국주만이 남아 묘막을 지키고 있으니 왜적이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물침기(勿侵旗: 아무도 침범하지 말라는 표시의 깃발)를 주었다.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을 무사히 피하고 효를 다할 수 있었다.
[묘소]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훗날 효행이 알려져 참판에 증직되고 효자 정문이 내려졌다. 정려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있으며, 내용은 ‘선묘조정려효자증참판정국량(宣廟朝旌閭孝子贈參判鄭國梁)’이다. 5형제가 모두 효성이 지극하여 오효자(五孝子)로 불렸으며, 도장사(道莊祠)에 추배(追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