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담
-
강릉김씨 김담(金譚), 아들 김경황(金景滉)·김경시(金景時) 형제, 손자 김한(金垾) 등 삼세사효자의 행실을 기록한 글. 김담, 김경황·김경시, 김한 등은 강릉김씨로 3대에 걸쳐 4명의 효자였다. 이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삼세사효자(三世四孝子)의 행실을 기록하여 정려각에 걸었다. 송시열이 관동지역을 유람하면서 강릉에서 삼세사효자의 효행을...
-
효자 김담(金譚)의 행적과 효행을 찬(撰)한 서문(序文). 「서김효자행실(序金孝子行實)」은 원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지어 현판에 새겨 걸었는데, 훼손되자 1933년 13세손 김익성(金益成)이 다시 새겨 걸었다. 현판은 가로 96㎝, 세로 29㎝이다. 봉래 양사언이 김담의 효행을 칭찬하고 영원히 기리기 위해 서술하였다. 김효자의 효행을 먼저 기록한 후...
-
강릉향현사(江陵鄕賢祠)에 배향하고 있는 12향현의 언행과 업적을 수록한 책자. 향현사가 창건된 지 288년 되는 해인 1931년 가을에 편찬한 12향현 언행록이다. 책자에는 도면으로 화부산도와 사우도가 들어 있다. 강릉향현사는 1645년 강릉부사 강백년 등이 창건하고 조운 최치운, 수헌 최응현, 삼가 박수량, 사휴 박공달, 원정 최수성, 도경 최운우...
-
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
조선 중기의 효자. 할아버지는 김광복(金光輻)이다. 아버지는 김담(金譚)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 첨지(僉知) 최순령(崔舜齡)의 딸이다. 호는 동화(東華). 삼세사효(三世四孝) 중의 한 사람이다. 김경시(金景時)는 김경황(金景滉)의 아우로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높았다. 연이어 부모상을 당하자 김경황과 함께 삼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교수(敎授)를 지냈다. 강릉대도호부사...
-
조선 중기의 효자. 아버지 김담(金譚), 동생 김경시(金景時), 아들 김한(金垾) 등 3세에 걸쳐 4명의 효자를 배출한 삼세사효(三世四孝) 중의 한사람이다. 자는 자호(子鎬), 호는 둔암(遯菴). 할아버지는 김광복(金光輻)이다. 아버지는 김담(金譚)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全州崔氏) 최순령(崔舜齡)의 딸이다. 부인은 정해(鄭瀣)의 딸 숙부인 연일정씨이다. 참봉(參奉), 첨추(僉樞)를...
-
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 자는 자용(子容). 강릉김씨 부정공파(副正公派) 효자공 금산파(金山派) 파조이다. 아버지는 김당(金譡)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최대연(崔大連)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김광헌(金光軒)이다. 부인은 강릉최씨 참봉 최읍(崔浥)의 딸과 강릉함씨 함비용(咸備容)의 딸이다. 함비용의 딸은 오봉서원 건립을 주도했던 함헌(咸軒)의 증손녀이다. 숙부 김담(金譚),...
-
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 김주원의 후손으로 부친은 낭장(郞將) 김광복(金光輻)이고, 모친은 삼척심씨 군수(郡守) 심희전(沈希佺)의 딸이다. 1539년(중종 34) 초시(初試)에 뽑혔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김담의 나이 70세에 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받았다.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는 변을 맛보기도 하였고, 아침저녁으로...
-
조선 전기의 효부. 95세를 살면서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김담(金譚)의 어머니 심씨(沈氏)에게는 눌질정(訥叱丁)이라는 여종이 있었는데 이 여종은 84세를 살면서 심씨를 정성껏 봉양했고 죽은 뒤에도 3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사람들이 “소리(所里)의 딸은 오래 살면서 효성을 다했고 심씨의 종은 90세가 가깝도록 충성을 다하였다.”고 하면서 칭송하였다....
-
조선시대 효자인 김담(金譚)[1522~1605]의 효행을 기리는 묘비. 김담의 자는 담지(譚之), 호는 보진재(齋眞齋), 본관은 강릉이다. 강릉김씨 부정공파(副正公派) 보진재공(葆眞齋公) 노암파(魯巖派) 파조(派祖)이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강릉부사로 있을 때 김담의 효행을 천거하며 시를 지었다. 사후에는 첨지중추부사에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졌으며, 「삼강행록」...
-
조선시대의 효자. 김연범(金演範)은 효자 김의진(金義鎭)의 현손이고, 보진재(葆眞齋) 김담(金譚)의 후손이다. 증광초시(增廣初試)에 올랐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자 이 사실이 나라에 알려져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나면서부터 재주가 비상하였다. 여섯 살 때에 참새를 쫓는 소리를 듣고 시를 짓기를 “넓은 들 곳곳에 새 쫓는 소리, 천년을 한결같이 신농(神...
-
효자 김담(金譚)을 제향한 재실. 보진재(葆眞齋)는 강릉김씨 노암파 종손 김재인(金載仁) 소유로, 하늘이 내린 효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효자 김담의 제향을 위한 재실이다. 제향 시기는 매년 음력 9월 10일이다. 강릉시 모산로223번길 28-10[장현동 334번지]에 숭모재(崇慕齋)가 따로 있다. 보진재는 원래 정려각이었다. 1571년(선조 5)에 강릉부사 봉래...
-
조선시대 향촌 사회 운영을 주도한 세력. 사족은 조선 사회의 지배계층으로서 향촌 내에서 통혼권과 학맥의 형성, 농장 소유로 인한 경제적 토대 마련 등을 통해 지역적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동시에 과거급제를 통한 정계진출과 조선시대 국가통치 이념인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지역사회에 구축하면서 향촌사회 운영을 주도하였다. 조선 초기에 향촌세력은 향리를 중심으로 한 이족과 고려 말 품관을...
-
강릉시 노암동에 있는 김담과 그의 아들, 손자까지 삼대에 걸친 4명의 정려비. 김담(金譚)을 비롯하여 아들인 김경황(金景滉)과 김경시(金景時) 그리고 김경황의 아들인 김한(金垾)의 정려를 말한다. 3대 즉 김담과 그의 아들, 그리고 손자에 걸쳐 4명의 효자가 나온 데에 기인한다. 받침돌 위에 높이 82~83㎝, 너비 30.5~33.5 ㎝, 두께가 8~8.5 정...
-
강원도 강릉 지역의 유교 관련 문화유산의 총칭. 강릉의 종교사에서 유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강릉향교의 건립 때부터이다. 1313년(충선왕 5)에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김승인(金承印)에 의하여 화부산(花浮山) 기슭에 강릉향교가 세워졌다고 한다. 물론 그 보다 앞서 200여 년 전에도 이미 향교가 있었다고는 하나 문헌상으로 자세한 고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
충신과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의 총칭. 1. 충신 강릉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강릉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를 위하여 헌신한 열두 명을 강릉향현사에 모셔놓고 그 뜻을 기리고 공로를 추모하고 있다.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을 비롯하여 눌재(訥齋) 이성무(李成茂),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 춘헌(春軒) 최수(崔洙),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 사휴당(四休堂)...
-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사당. 향현사는 강릉 지방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사람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여 귀감을 삼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행하는 곳으로, 최치운(崔致雲) 등 6인을 배향하고 있다. 강릉 향현사 건립은 이 지역 오봉서원이나 송담서원의 경우와 같이 향교를 중심으로 한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관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