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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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와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의 시를 모아서 펴낸 한시집. 신광수(申光洙)[1712~1775]는 조선 영조 때의 문인으로, 악부체의 시로 유명한 「관서악부(關西樂府)」를 남겼다. 신광수의 시는 사실적인 필치로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농촌의 어려움, 관리의 부정과 횡포, 하층민의 고난 등을 소재로 하였다. 허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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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권처균의 후손이자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인 권계학의 시문집. 권계학(權啓學)[1716~1788]의 본관은 안동, 자는 성집(聖集), 호는 죽암(竹巖).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이다. 1747년(영조 2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 예조 정랑, 병조 좌랑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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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 영조가 참석한 대정이 끝난 후 지은 갱진시를 모은 첩(帖). 갱진시(賡進詩)는 임금이 한 편의 시를 짓고 난 뒤 신하들이 차운(次韻), 화운(和韻)하여 지은 시를 말한다. 『친정일어제갱진첩(親政日御製賡進帖)』은 1764년(영조 40) 12월 25일에 영조가 참석한 대정(大政)이 끝난 후 영조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 등 21명의 신하들이 지은 갱진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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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단오제 가운데 행하는 무속 의례. 중요 무형 문화재 제13호인 강릉 단오제는 제례, 가면극, 무당굿의 지정 분야를 중심으로 전승된다. 그중 세습무가 주제하는 무당굿은 민중 신앙의 핵심으로서 신주빚기, 대관령국사성황모시기, 구산 성황당, 학산 성황당, 국사여성황사봉안제, 국사여성황 친정인 경방댁굿, 강릉시 남대천 가설 굿당의 단오굿 등이 있다. 단오제 행사 전반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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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인 발급자와 대상인 수취자 사이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주고받은 옛 문서. 문서라는 용어는 예로부터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경우에 따라서 서책(書冊)·서적(書籍)을 뜻하기도 하였고, 추안(推案)·국안(鞫案) 등 재판 관계의 신문·진술기록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며, 장부(帳簿) 등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또 관문서(官文書)·공문서(公文書)·사대문서(事大文書)·교린문서(交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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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해안의 동해신을 모신 곳. 동해신묘의 창설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명나라 태조가 고려 공민왕(恭愍王) 19년(1370)에 고려에 사절을 보내서 국내산천에 제사를 행하고 임금이 목욕재계하여 친히 축문을 고하였다 한다. 조선왕조가 세워지면서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명나라 법전에 따라 동해묘를 중건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사해(四海)가운데 첫 번째로 동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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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8대 임금 현종(顯宗)의 셋째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1665~1687]와 관련된 유물. 명안공주 관련 유물은 개인 소장자가 수집한 것을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인수한 것이다. 현종의 셋째 딸이자 숙종의 유일한 친누이인 명안공주의 관련 유물들로 전적, 고문서, 유물 등 45점이 일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적류(典籍類)로는 현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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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조선 영조 때 강원도에 대 기근이 들었다. 박원봉(朴元奉)은 이 때 80세였는데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껍질을 벗겼고 밤에는 화롯불 옆에서 짚신을 삼아 시장에 팔아 쌀과 고기를 사서 98세의 어머니를 봉양했다. 관의 구호 대상자 명부에 박원봉과 그의 아내도 올랐다. 당시 강원감사(江原監司) 김리소(金履素)는 효자로서 박원봉의 이름을 익히 듣고 있던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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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梵日)은 사굴산문(闍堀山門)의 본산인 굴산사(屈山寺)를 창건한 신라시대 선승(禪僧), 굴산사지(屈山寺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었던 굴산사(崛山寺)의 옛 절터.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는 굴산사지가 있다. 창건연대와 연혁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범일이 입당구법(入唐求法)한 후 귀국하여 851년(문성왕 13) 명주도독 김공(金公)의 청을 받아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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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역에서 봉(熢)과 수(燧)로 변경의 급한 보고를 중앙에 전했던 고대의 통신 방법. 봉수는 군사적인 목적을 띤 통신망이고, 행정 기능 중심인 역제와는 달리 양반 관료들에게 사적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변경 지방이나 국경 지방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중앙에 연락하는 통신 방식으로서 그 특수성과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의 통신 및 교통 제도 가운데 남송의 파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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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나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곳. 사우(祠宇)는 선현 봉사와 후학 양성을 목적으로 건립된 서원과 문중의 중요 인물의 제향처로 활용되었던 재실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강릉 지역에서는 서원은 2개이고, 사우는 12개, 당은 4개, 재사는 56개이고, 기타로 문정공부조묘와 종선각이 있다. 위의 현황에서 향중사림이나 부민 발의로 건립된 오봉서원,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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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판교리 사화산에 위치한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남쪽으로 소동산(所同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주문산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는 백두대간의 곤신봉에서 갈라진 동으로 벋은 지맥이 지금의 성산면 보현산[일명 대궁산][1,000m]을 거쳐 동쪽으로 낮아지면서 해안가에서 낮은 잔구 형태로 끝나는 봉우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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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강릉에 거주 해 온 성씨와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를 통해 그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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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류서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 초서로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 6수의 8폭 병풍. 「신사임당 초서 병풍」은 신사임당이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五言絶句) 6수의 초서를 뒤에 병풍으로 꾸민 것으로 강원도 강릉시 두산동의 최돈길(崔燉吉) 고가(古家)에서 지속적으로 전해내려 왔으며, 1971년에 강릉시가 넘겨받아 현재 율곡기념관[현 강릉시오죽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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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증승정원주서 어사상(魚史商)의 아들이며, 경종의 장인인 어유구(魚有龜)의 재종제이다.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를 거쳐 171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17년부터 정언·수찬·지평 등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경종 즉위 후에 지평·헌납·장령·사간 등 양사의 벼슬에 있을 때 노론·소론의 분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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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강원도 강릉시의 역사. 강릉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선사 유적지를 통해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선사 유적지는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송림리, 사천면 가둔리·판교리, 강동면 안인리·하시동리, 강릉시 토성지와 지변동·교동·안현동, 옥계면 금진리 등 대부분 바닷가 호수변이나 하천 유역의 낮은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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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시조 문학 동호인들이 결성한 문학회. 고려 말기에 형성된 우리 고유의 정형시라 할 수 있으며, 그 시형은 3장(章) 6구(句) 45자(字) 안팎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고전시가는 시조에 와서야 모든 사회계층이 공동으로 즐기는 시가가 되었다. 이러한 시조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이후 비로소 쓰였는데 영조 때의 시인 신광수(申光洙)가 쓴 『관서악부(關西樂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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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오근산에 위치한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우계현 북쪽 20리에 있다. 남쪽으로는 어달산(於達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해령산(海靈山)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 백두대간 중 강릉~임계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안부(鞍部)인 삽당령 바로 밑에서 동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점차 고도를 낮추어 뻗어오다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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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의 면 이름.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방리조(坊里條)에 의하면, 정동면(丁洞面)은 유천리(楡川里)·사전리(沙田里)·조산리(助山里)의 3개 리로 구성되었다. 인구현황을 보면, 유천리는 호수 69호, 인구수 271명(남 137명, 여 134명), 사전리는 호수 77호, 인구수 280명(남 136명, 여 144명), 조산리는 호수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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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릉부에서 산삼의 남획을 막고 궁궐에 공납하기 위해 세운 민간인 산삼 채취 및 출입 금지 표석. 1992년 강릉영림서에서 가리왕산 국유림도 개설공사 중 정선 강릉부 삼산 봉표가 발견되었다. 봉표는 금표(禁標)라고도 하며 산림에 출입을 금하거나 일정한 공간을 막아서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다. 황장목의 보호를 위해서 황장금표를 세우고 산삼의 공출을 위해 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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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리에 있었던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쪽으로 양양부(襄陽府) 양야산(陽野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사화산(沙火山)에 응하고, 연곡현 북쪽 12리에 있으며 부와는 42리 거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는 백두대간 중 오대산에서부터 동으로 갈라진 지맥이 양양부와 경계를 이루다가 약간 남동쪽으로 꺾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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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위치한 누정(樓亭). 앞면에는 경포호수가, 뒷면에는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고, 주위에는 해송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자의 이름은 이 지역 세 계의 동갑계가 모두 1916년생(임자생)의 동갑이라는 인연으로 계원 상호간의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자는 뜻을 모아 공동회합을 갖기로 하고 그 회(會)의 명칭을 창랑(滄浪)이라 한 데서 연유한다. 임자생 동갑계인 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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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한배후(韓配厚)의 아들로, 한배연(韓配淵)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유익기(兪益基)의 딸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벼슬길로 나아가 1740년(영조 16)에 정선군수를 거쳐 정랑에 올랐다. 1754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60세의 나이로 보덕이 되었고, 이어 지평·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였다. 175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