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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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서낭당에 전해 내려오는 당신화.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피내골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서낭당은 전통한옥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있다. 당집 주변에는 돌담이 쌓여 있으며 특이한 것은 마을 중심부의 민가에 서낭당이 건립되어 있다. 이 마을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해안단구 지층이 형성되어 학술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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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향현사(江陵鄕賢祠)에 배향하고 있는 12향현의 언행과 업적을 수록한 책자. 향현사가 창건된 지 288년 되는 해인 1931년 가을에 편찬한 12향현 언행록이다. 책자에는 도면으로 화부산도와 사우도가 들어 있다. 강릉향현사는 1645년 강릉부사 강백년 등이 창건하고 조운 최치운, 수헌 최응현, 삼가 박수량, 사휴 박공달, 원정 최수성, 도경 최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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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 이씨 가문에서 농지를 경영할 때 작성한 일종의 경영문기. 선교장의 이씨 가문이 소유한 땅은 영동지방은 물론 강원 영서 일대에 걸쳐 있어 ‘만석꾼’이란 칭호를 듣기에 충분하였다. 추수기에는 강릉 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북쪽의 주문진 일대, 남쪽의 묵호·삼척, 영서의 대화(大和)와 하진부에서의 농지경영이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충청북도 충주 음죽(陰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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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택지개발에서 지구의 이름으로는 포남지구와 솔올지구를 들 수 있다. 포남지구 택지개발은 1984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2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포남동은 원래 강릉군 북일리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운곡리, 대항리와 남일리면의 수문리 일부와 합쳐 포남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5년 9월 1일에 강릉시 승격과 함께 포남동으로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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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안동. 비조(鼻祖)는 고려 태사(太師)인 권행(權幸)이다. 고조는 권만선(權萬選)이고 증조는 권세섭(權世燮)이며 할아버지는 권민교(權敏敎)이고 아버지는 권성도(權星度)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며, 이숭진(李崇鎭)의 딸이다. 1794년에 태어나서 1874년에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열여덟 살에 어머니인 이씨가 병으로 14개월 동안을 앓았다.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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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나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곳. 사우(祠宇)는 선현 봉사와 후학 양성을 목적으로 건립된 서원과 문중의 중요 인물의 제향처로 활용되었던 재실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강릉 지역에서는 서원은 2개이고, 사우는 12개, 당은 4개, 재사는 56개이고, 기타로 문정공부조묘와 종선각이 있다. 위의 현황에서 향중사림이나 부민 발의로 건립된 오봉서원,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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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1동에 있는 마을. 소리골[蘇李洞, 聲谷]은 조선 중기 때 마을에 살던 영해이씨 3부자(이오, 이상겸, 이상빈)의 문장과 덕행이 중국 송나라의 3소(三蘇: 소순, 소식, 소철)와 견줄만 하다고 하여 3소의 ‘소’자와 이씨의 ‘이’자를 따서 지었다. 소리골은 원뎅이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약간 언덕진 곳에 있다. 소리골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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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평산이다. 아버지는 이사온(李思溫)이고 어머니는 최응현(崔應賢)의 딸이다. 이씨의 성품에 대해 이이(李珥)는 「이씨감천기(李氏感天記)」에서 “訥於言而敏於行 愼於事而果於善(눌어언이민어행 신어사이과어선: 말에는 서툴어도 행동에는 민활했으며 모든 것에 신중히 하되 착한 일에는 과단성 있었다)”라고 하였다. 이씨는 기묘명현(己卯名賢) 중의 한 사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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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집이 가난하여 광릉(廣陵)에서 강릉도호부 봉평(蓬坪)으로 이사를 왔다. 이씨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고, 남편 어주현(魚周顯)이 죽자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옷을 팔아 장례를 치렀다. 또 시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얼마 안 되는 토지를 팔아서 시아버지를 광릉에 있는 선영(先塋)에다 모셨다. 그 후부터 빗질과 세수도 하지 않았으며 26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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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서 깊은 마을 위촌리에 여러 가지 민담과 전설이 없을 리가 없다. 민담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추리 호랑이”다. 옛날에 아전이 한 사람 있었는데, 글을 잘했다. 고을 원님이 그 사실을 알고 “저녁 때 글을 좀 짓다가 가라.”고 지시했다. 아전이 저녁에 남아 글을 짓다가, 한 부분을 완성하고 보니 글의 기상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밤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나섰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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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집안끼리 자녀들의 혼례를 준비하는 혼인계(관대계)도 있었다. 혼인계는 혼례 때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조직했는데, 신랑 신부의 혼례복인 관복, 행사 때 쓰는 차일, 휘장, 가마 등을 빌려준다. 성주이씨 문중, 강릉함씨 문중, 강릉최씨 문중에서 혼인계를 조직했으나 지금은 다만 친목을 다지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모인다. 상장계(상례계)는 장례를 대비하기 위한 계다. 상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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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시집 온 지 3년 만에 남편 유진구(兪鎭九)가 병이 났다. 백방으로 약을 썼으나 남편이 끝내 세상을 떠나자 상제(喪祭)와 거상(居喪)에 예를 다하였다. 거상 기간에는 머리를 빗거나 세수를 하지 않아 얼굴에 검정을 칠한 것 같았으며, 아침저녁으로 성묘하며 피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퍼하였다. 하루는 산불이 남편의 묘에까지 번지려 하였는데, 하늘에 기도하니 잠시 후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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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 최택후(崔宅垕)의 병이 위급하자 이씨는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남편의 입에 흘려 넣었다. 남편은 다시 소생했지만 오래지 않아 죽었다. 이씨는 남편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대성통곡을 하다 기절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약을 써서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3년 동안 눈물로 지내면서 상을 마쳤다. 그 후 옷단장을 하지 않고 나물밥을 먹으며 14년 동안 문밖출입을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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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 강릉은 토성들의 재지적 기반이 강했던 지역이다. 토성은 대체로 고려시대의 향리출신으로서 여말선초에는 신흥사대부를 성장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조선 초기 강릉 지방 성씨에 대해 “토성이 여섯이니 김(金)·최(崔)·박(朴)·곽(郭)·함(咸)·왕(王)이요, 사성(賜姓)이 하나이니 옥(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