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기
-
1935년 강릉향교의 교제(校制)를 정비하면서 작성한 기문. 1935년 강릉향교 직원(直員)[현재의 전교(典校)] 박원동(朴元東) 등이 다른 지역 향교를 방문하고서 교제(校制) 즉 위패의 봉안, 석전제 봉행, 제복(祭服) 및 제기(祭器)의 준비와 보관 등에 관한 일들을 살펴본 후 강릉향교에 이를 적용하면서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교제수비기(校制修備記)」에는 강릉향교의...
-
강원도 강릉의 유림이었던 소하(少霞) 권영기(權寧機)의 문집. 권영기가 평생 쓴 글을 후손들이 모아서 편찬한 책으로, 권1은 시, 권2는 서(書), 권3은 서(序)·기(記)·발(跋)·잡저·제문·행장·묘표(墓表), 권4는 부록으로 시·서·기가 실려 있다. 권영기는 세우(世友)·회성(悔醒)·대효(大孝) 등의 호를 가지고 있으며,계남 심지황, 조운 최만희...
-
조선 중중 때의 권연(權璉)이 소요하던 곳에 후손들이 세운 정자. 명암정(鳴岩亭)은 강릉시 대전동 서쪽 산기슭에 있다. 명암정은 경포호의 상류로서 명천반석(鳴泉盤石)이 있으며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명암정은 강릉 출신으로 조선 중종 때에 학덕을 겸비한 권연이 청유(淸遊)하였던 곳이다. 1922년 권현의 후손인 권영만(權寧萬)과 권영기(權寧機) 등이 선조가 청유...
-
1946년 7월 강릉시 초당동에서 발생한 좌우익 충돌 사건. 몽양 여운형이 주문진 교향리에서 동생 여운홍과 함께 학교를 세워 학생을 가르치고 있던 중, 취영정 계원인 초당 최용집이 여운형을 초당으로 모셔와 초당영어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2년 동안[1908~1910] 그의 민족의식 앙양, 영어, 창가, 체력 단련 등의 가르침은 초당리 주민들의 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
-
초당마을에 살았던 역사 인물로 먼저 김충각(金忠慤)[1578~1650]을 거론할 말하다. 김충각은 명주군왕 김주원의 후손으로, 참판 김덕장의 아들이다. 호는 초정(草亭)이고, 조선 선조 때 경포 초당마을에 살면서 벼슬은 사헌부감찰직장을 지냈다. 우복(愚伏) 정경세 선생과 평소 예학을 강론하였으며, 절의와 덕행이 매우 높았다. 생전에 경포호수 부근에 경호당(鏡湖堂)을 건립...
-
1945년 해방 직후 발생한 강릉 지역에서의 좌, 우익 간의 이념 갈등. -사상이 낳은 정치적 혼란- 해방 직후 강릉 지역 좌우익의 갈등-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왔으나 강릉 지역의 일본군은 계속 무장한 채로 주둔하고 있었다. 2주일이 지나도록 미군은 오지 않았고, 하루 바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시민들은 38선 이북 양양에 이미 주둔해 있던 소련군에게 일본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