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문(張振文)의 처 강릉김씨(江陵金氏)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려각은 원래 강릉시 옥천동에 세워졌으나 장씨들이 고흥으로 낙향하면서 정려각을 가지고 가서 비(碑)만 남았었다. 1962년 강릉 시가지를 확장할 때 강릉김씨 옥가파(玉街派) 종중에 서 현재 괴당 김윤신 신도비 자리[남편인 장진문의 묘 반대편]에 이건하였으나 이 자리에 신도비를 이건하면...
조선 중기의 열녀. 남편은 장진문(張振文)이며, 장철견(張哲堅)의 아들이다. 나이 겨우 20세에 남편을 잃고 홀몸이 되었다. 과부가 된 후에는 문을 닫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치아를 드러내고 웃지 않았다. 아침과 저녁으로 남편의 신주(神主)에 음식을 올렸다. 정려(旌閭)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