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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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의 영정 봉안에 관한 기문. 매월당 김시습의 일생, 중종, 선조, 숙종, 정조의 매월당에 대한 충절과 학식 기림, 영정 모사와 봉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동이라 불려지던 김시습은 21세에 삼각산에서 공부하던 중에 단종손위(端宗遜位)의 소식을 듣고 평생 충절을 지키면서 『금오신화』 등 수많은 문적(文籍)을 남겼다. 이에 선조는 율곡 이이에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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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강원도 영동과 영서의 사민에게 내린 정조의 교지. 1783년(정조 7) 10월 23일에 정조가 원춘도(原春道)[강원도의 조선 정조 때 이름. 1791년에 다시 강원도로 환원됨] 영동과 영서의 대소 사민(大小士民)[양반과 평민]에게 내린 윤음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도민들에게 각종 세금을 경감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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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정조의 명에 의해 강원도 유생에게 실시한 과거의 모든 과정과 급제한 과문(科文)을 수록한 책. 1793년(정조 17) 정조는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沈晉賢)에게 명령을 내려 강원도 내 유생 중에서 시문(詩文)과 경학(經學) 에 능한 사람을 조사해서, 공령생(功令生)과 경공생(經工生)으로 나누어 각각 문예(文藝)와 경전(經典)을 시취(試取)[시험을 보아 인재를 뽑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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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근대까지 270년 동안 강릉 오죽헌을 다녀간 인사들의 방명록. 1662년 권상하(權尙夏)를 시작으로 1932년 이항구(李恒九)까지 270년 동안 오죽헌을 다녀간 인사 1,149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 7명의 이름이 후대에 삭제되어 확인되는 인물은 모두 1,14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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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 영조가 참석한 대정이 끝난 후 지은 갱진시를 모은 첩(帖). 갱진시(賡進詩)는 임금이 한 편의 시를 짓고 난 뒤 신하들이 차운(次韻), 화운(和韻)하여 지은 시를 말한다. 『친정일어제갱진첩(親政日御製賡進帖)』은 1764년(영조 40) 12월 25일에 영조가 참석한 대정(大政)이 끝난 후 영조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 등 21명의 신하들이 지은 갱진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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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300번지에 있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가옥. 건립 연대는 약 400년 전이라 전하고 있으나 본채에 ‘강희 53년 갑오’(1714년)라는 명문이 있어 280년 된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강릉 김익남 가옥은 선교장 다음으로 규모가 큰 집으로 정조 때 홍국영이 유배된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한국전쟁 때는 학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안채의 부엌에 딸린 참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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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300번지에 있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가옥. 건립 연대는 약 400년 전이라 전하고 있으나 본채에 ‘강희 53년 갑오’(1714년)라는 명문이 있어 280년 된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강릉김윤기가옥[노암동]은 선교장 다음으로 규모가 큰 집으로 정조 때 홍국영이 유배된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한국전쟁 때는 학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안채의 부엌에 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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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은 뛰어난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어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이를 소재로 시문을 지었고, 또 이 지방 문인들과 교유(交遊)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자연의 정취에 몰입되어 감흥을 읊던 이런 정서는 신라의 화랑들로부터 고려, 조선의 시인 묵객들로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누구라도 시인이 되는 고장, 강릉의 문인들- 아름답고 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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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있는 냇물과 바다가 연결되는 세 지역. 강릉의 3문(三門)은 강문의 죽도봉, 남대천 하구의 죽도봉, 군선강 하구인 명선문을 말한다. 강릉은 지대가 높은 서쪽에서 물줄기들이 동쪽으로 내려온다. 이 물줄기들이 모여 강을 이루어 바다로 흐르는데, 냇물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곳에 3개의 문이 있다. 이 문을 통해 바다와 육지가 원활하게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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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성집(聖集), 호는 죽암(竹岩). 참판인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윤재(權允載)이고 아버지는 효자인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영조 23)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부사직 겸 춘추시강원문학(副司職 兼 春秋侍講院文學)을 지냈다. 1781년에 기후가 고르지 못하여 재앙이 생겼을 때에 정조(正祖)가 구언(求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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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연(朴演)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좌랑(정5품)을 거쳐 서운관 부정(종3품), 예문관제학과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공민왕이 최만생·홍륜 등에게 살해당하고 정몽주·김구용 등이 유배되었을 때 박지계도 9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복권된 뒤 정몽주의 천거로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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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아가미와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등의 양념을 넣고 담근 깍두기. 1940년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 의하면 정조(正祖)[1777~1800]대에 왕의 자녀인 숙선(淑善)옹주가 처음으로 깍두기를 만들어 왕께 바쳤다고 한다. 그 당시 이름을 각독기(刻毒氣)라 하였고 충남 공주로 낙향한 정승이 이 깍두기를 민간에 퍼뜨렸다고 한다. 강릉은 동해에 접해 있어 많이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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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줄기가 강동면 해안 쪽으로 내려오면서 화비령, 괘방산을 만들고 이 줄기가 다시 마을로 내려오면서 바닷가에 이르는데 그 끝에 해령산이 우뚝 솟아 있다. 해령산은 화비령 북쪽 줄기의 끝이며, 군선강 하구에 맞닿았다. 이곳은 강동 9경의 하나인 '봉도어선(烽島漁船)'에 해당되는 곳이다. 예전에는 강릉김씨들의 정자가 있었다. 괘방산은 정동진리와 안인진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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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율곡 이이가 사용하던 벼루와 토지양여문서.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의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0호로 지정되었다. 오죽헌 어제각(御製閣)은 율곡 이이의 벼루와 토지양여문서를 소장하라고 정조가 지어 준 것이다. 벼루는 율곡 이이[1536~1584]가 쓰던 것으로, 1788년(정조 12)에 정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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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때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낸 이택징(李澤徵)의 영당. 이택징의 호(號)가 자호재(自好齋)인데서 자호재영당이라 명명하였다. 이택징은 1735년(영조 11)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방 수령으로 선정을 펼쳐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참의공인 이택징의 충절과 선비정신을 후손에 심어주고자 건립하였다. 1865년(고종 2)에 건립하였는데 현재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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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무를 창난젓과 고춧가루, 파, 다진 마늘, 생강, 미나리와 버무려 담근 깍두기. 1940년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 의하면 정조(正祖)[1777~1800]대에 왕의 자녀인 숙선(淑善)옹주가 처음으로 깍두기를 만들어 왕께 바쳤다고 한다. 그 당시 이름을 각독기(刻毒氣)라 하였고 충남 공주로 낙향한 정승이 이 깍두기를 민간에 퍼뜨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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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중에서 대표적인 8가지 명승지를 일컫는 말. 본시 경치는 보는 사람이 한 번 보면 끝나는 일회성 시공의 영역에 속하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팔경으로 통칭되는 4자성어로 만들어져 인구에 회자되면서부터는 지향하는 바가 확대되어 나타난다. 수용자는 실제 경험하지 않고도 관념적으로 체험한 것처럼 느끼는 추체험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고 하면 동정호의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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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 재지 사족들 간의 갈등. 향전(鄕戰)은 군현(郡縣)의 재지 사족들 간의 갈등 관계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향전의 양상은 군현의 상황과 재지 사족의 입지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대개는 재지 사족과 문중 간에 군현의 주도권을 염두에 두고 전개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1. 발단 강릉 지역의 향전은 이른바 ‘하남재시비(河南齋是非)’라고 한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