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조씨 조호겸(曺好謙)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 영신재(永愼齋)는 창령조씨 혜재문중(蕙齋門中) 소유로 원래 강릉시 교동에 있었고 창녕조씨 휘(諱) 조호겸(曺好謙)의 제향처였다. 조호겸의 자(字)는 성익(聖益)이다. 조호겸의 고조 조계상(曺繼商)은 의정부우찬성(議政府右贊成)을 지냈고, 증조인 조명원(曺明遠)은 예조참판(禮曹參判), 할아버지인 조대승(曺大勝...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창녕. 충정공 조계상(曺繼商)의 후손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겨 고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살이를 할 때에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순진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조순진의 효행이 나라에 알려져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의 후손으로 조근(曺瑾)의 아들이다. 1681년(숙종 7)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조징한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의 증손이다. 음서(蔭敍)로 벼슬이 전생직장(典牲直長)에 이르렀다. 조철(曺哲)은 임진왜란 때에 벼슬을 버리고 경포에 숨어 살았다. 옥산(玉山) 이우(李瑀)와 헤어지면서 시를 짓기를 “석잔 술에 헤어지는 노래 한 곡조, 그대를 보내고 경포 가로 돌아가네. 이별의 정한을 알 리가 없어, 술잔을 거듭 잡고 나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