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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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전승되는 노동요. 모심기가 끝나고 열흘이나 이십 일 정도 지나서 논에 잡풀이 생기기 시작하면 논매기를 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김매기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김매기는 밭에 있는 잡풀을 없애는 작업을 일컫는 말이다. 논매기는 아시 논매기, 두 벌 논매기, 세 벌 논매기를 하는데 각 논매기 때마다 소리의 장단이 달라진다. 아시 논매기는 초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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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아홉산과 아홉산에 있는 여러 골짜기 이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홉산은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와 거창군 마리면, 거창군 주상면 등 여러 지역에 걸쳐 있는 산이다. 아홉산은 거열산성이 있는 건흥산[572m]과도 이어져 있다. 아홉산은 취우령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취우령[795m]이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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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박유산 자락에 은거하였던 조선 초기 문신 이지활(李智活)의 시문집. 이지활(李智活)[1434~?]은 한양 출신으로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망기(忘紀), 호는 고은(孤隱)이다. 아버지는 이조 판서·대제학을 지낸 이비(李棐)이다. 성품이 단정하고, 총명하여 일찍이 학업에 뜻을 두어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8세에 문명으로 추천되어 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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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성팽년의 문집. 성팽년(成彭年)[1540~1594]은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옹(頤翁), 호는 석곡(石谷)이다. 아버지는 교위(校尉) 성한량(成漢良)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있었다. 1569년(선조 2) 아버지의 상 이후 관직에 대한 뜻을 버리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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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출신의 조선 전기 학자 정유명의 문집. 정유명(鄭惟明)[1539~1596]은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극윤(克允), 호는 역양(嶧陽)이다. 할아버지는 확계(蠖溪) 정옥견(鄭玉堅)이고, 아버지는 진용교위(進勇校尉)·증 좌승지(贈左承旨) 정숙(鄭淑)이다. 갈천(葛川) 임훈(林薰) 문하에 유학하였으며, 옥계(玉溪) 노진(盧禛)을 종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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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상현리를 연결하는 다리.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경상남도 함양, 거창을 지나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에 이르는 총 연장 453.7㎞인 국도 24호선의 한 부분을 잇는 교량이다. 가천교가 가천천과 황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가천천의 이름을 따서 ‘가천교’라 명칭되고 있다. 가천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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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과 남하면 둔마리를 연결하는 고개. 갈마재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과 남하면 둔마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높이 250m이다. 남하면 둔마리는 거창읍과 가조면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갈마재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고개가 형성된 산의 생김새가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경상남도 지역 방언으로는 질매]를 닮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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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10년까지의 시기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의 역사. 조선은 1876년 2월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에 따라 부산, 원산, 인천이 차례로 개항되었고 내륙의 주요 도시에는 개시장이 설치되었는데, 이들 개항장과 개시장을 중심으로 근대의 신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정부는 개항 이후 부국강병을 목표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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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 있었던 조선 초기 고려 왕족을 위해 수륙재를 지냈던 견암사의 절터. 견암사(見庵寺) 터는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숭유 억불 정책을 쓰던 조선 시대에 고려 왕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전답과 향을 내려 수륙재를 행하던 절이다. 경상도의 대표적인 절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견암사는 가조현(加祚縣) 우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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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거창군 일대에 설치된 행정 구역. 거창 도호부(居昌都護府)는 1728년(영조 4)과 1799년(정조 23) 두 차례에 걸쳐서 설치되었다. 1799년 이후 두어진 거창 도호부는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관내에서 조선 전기 거창현에 속했던 거창읍·가북면·가조면·고제면·남상면·남하면·웅양면·주상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거창 도호부가 처음으로 설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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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거창 지역 부인들이 지역 여성의 자발적인 애국 의연 활동으로서 국채 보상 운동을 조직한 단체. 1907년에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 과정에서 거창 지역 부인들이 국채를 갚기 위해 자발적으로 애국의 의기를 발휘한 의연 활동이다. 거창 지역 부인들의 사회 참여 의지와 구국 의지의 태동을 보여 주었다. 의로운 여성의 국채 보상 참여가 나라를 구하는 길이며 이를 위해 여성의 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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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에 있는 통일 신라 돌다리.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의 현성산 아래 덕거 마을로 흐르는 작은 개울가에 놓여진 돌다리이다. 마을 노인의 증언에 따르면 돌다리 아래쪽에 검은 글씨의 한자가 2줄 정도 적혀 있었다고 하나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양으로 가는 길에 놓인 다리라고도 하며, 통일 신라 때 인근 강남사(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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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 개신교권이 참여한 독립운동. 1919년 3월 1일과 그 이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 지배에 대한 비폭력적 항거였고,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민족 독립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으로 2개월, 길게는 1년 여에 걸쳐 거창을 포함한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해외에서는 만주 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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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자행된 거창 지역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공원. 흔히 ‘거창 사건’으로 불리는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은 한국 전쟁 기간에 패퇴한 인민군과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당시 공비 토벌을 위해 특별히 창설된 국군 제11사단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11사단 9연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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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거행하는 디딜방아 액막이 의례 때 부르는 민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행하던 액막이 의례 때 부르던 세시 의식요의 일종이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전염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전승되던 마을 신앙을 바탕으로 불리던 민요이다. 「거창 상여 디딜방아 액막이 소리」는 사단 법인 향토 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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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설치한 국가 농장. 국농소(國農所)는 조선 전기 설치된 국가 농장이다. 국둔전(國屯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군인의 노동력을 동원했던 것과는 달리 국농소는 지방 고을의 농업 장려와 종자 지원 등의 목적으로 운영되던 농장이다. 국농소는 주로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처럼 남쪽 지방에 설치되었으며, 경작은 칭간(稱干)·사사노자(寺社奴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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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중국계 일관도 계열의 신종교인 국제도덕협회의 거창지부. 중국계 신종교인 일관도는 1947년 국내에 들어왔다. 일관도는 중국 고대 복희(伏羲) 시대부터 노자·공자에 걸치는 도교·유교 사상과 석가·달마로 이어지는 불교 사상이 하나로 일관된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일찍이 중국에서 성립되었다. 본부는 신죽현에 있으며, 세계 70여 개국에 전파되어 있다.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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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일제 강점기 출현 신종교인 금강 대도의 경상도 지부. 금강대도는 토암 이승여가 1906년 대도를 깨닫고 출현한 종교로, 1910년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에서 실질적으로 개교하여, 1932년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김천리에 본부를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교단에서는 토암의 탄생 시기인 1874년을 개도 원년으로 삼고 있다. 신앙 대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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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경상남도 거창 지역의 가조 등지에서 일어난 반봉건 반외세 농민 봉기. 1894년 농민 전쟁은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을 중심으로 농민, 도시민, 소상인, 몰락 양반, 이서 등 봉건 사회 해체 과정에서 몰락한 계층이 광범하게 참여한 반봉건 반외세 근대화 운동이다.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는 안의와 가조 등지에서 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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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거창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농민 항쟁. 임술 농민 항쟁은 삼정의 문란과 지배층의 과도한 수탈로 인해 1862년 2월 진주와 이웃한 단성현에서 시작된 이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삼남 지방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거창에서도 삼정의 문란으로 불만을 품은 농민들이 거창 부사 황종석(黃鍾奭)이 진주 항쟁을 살피러 떠나 자리를 비운 사이에 봉기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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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후 덕유산을 근거지로 거창 등지에서 일제와 맞써 싸운 의병 부대. 을사늑약 체결 후 덕유산을 배경으로 경상남도과 전라북도, 충청북도 접경 지대에서 활약한 의병 부대로, 김동신과 문태수 의병 부대가 대표적이다. 러일 전쟁과 을사늑약의 체결로 이어지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이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났다. 거창 등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서는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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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국권 회복을 위해 거창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으로 의병 운동, 3·1 만세 운동, 파리 장서 운동, 민중 운동 등 민족운동. 을미사변 이후 전국에는 항일 의병 항쟁이 전개되었다. 1896년 1월 8일 진주성 점령에 참여했던 거창 출신의 노응규 부대의 참전으로 시작된 경상도와 전라도, 덕유산 일대에서는 일본 군대에 저항하는 의병 운동이 일어났다.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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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회화, 서예, 현대 미술, 조형 등 미술과 관련한 포괄적인 예술 활동. 거창 지역의 미술은 거창 지역 예술인들의 활동과 모임을 통해서 발전해 왔으며, 1991년부터 한국 미술 협회 본부로부터 지부가 승인되었다. 그 이후 거창의 지역 예술 활동이 한층 활발해졌다. 현재 거창 지역 미술은 지역 예술인 양성 활동 및 다양한 전시회를 선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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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개명리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를 잇는 고개.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개명리에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를 잇는 고개로, 높이 920m이다. 빼재가 있는 지역은 과거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이들의 뼈를 묻어야 했던 것에서 유래하여 경상도 사투리로 ‘뼈’가 ‘빼’ 소리가 되어 빼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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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에 있는 다리.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경상남도 함양, 거창을 지나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에 이르는 총연장 453.7㎞인 국도 24호선의 한 부분을 잇는 교량이다. 교량이 있는 곳에 석우 마을이 입지하고 있어 ‘석우’라는 이름을 따서 석우교라 칭해졌다. 석우교의 길이는 120m이고, 총 폭은 10.5m이며, 유효 폭은 9m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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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완대리 일원에 있는 임진왜란 때 쌓은 조선 시대 산성 터.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완계 3구 마을 뒷산 작은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석성으로 임진왜란 때 쌓은 산성으로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은 성벽 대부분이 파괴되어 겨우 흔적만 남아 있다. 산성이 있는 위치는 조선 시대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된다. ‘성산(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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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호는 경재(景齋)이다. 할아버지는 한성 부윤(漢城府尹)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신인도(愼仁道)이고 아버지는 우찬성(右贊成) 아림 부원군(娥林府院君) 양열공(襄烈公) 신이충(愼以衷)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순창 설씨(淳昌薛氏)로 설회(薛懷)의 딸이다. 부인은 정경부인 남양 홍씨(南陽洪氏)로 공조 전서(工曹典書) 홍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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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인 1592년 4월 23일 정기룡이 이끄는 조선군이 경상도 거창현 신창에서 일본군을 물리친 전투. 거창현(居昌縣) 신창(新倉)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일대에 있던 조선 시대 거창현의 창고이며, 웅양창(熊陽倉)이라고도 불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초기인 1592년(선조 25) 4월 23일 정기룡(鄭起龍)이 이끄는 조선군이 거창현 신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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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현재 사용하는 말. 경상남도 거창군 일원에서 발화되는 언어를 ‘거창 지역어’라 한다. 이를 ‘거창 방언’이라고 부르지 않고 ‘거창 지역어’라고 부르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언어(language)’와 ‘방언(regional dialect)’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공통점은 두 용어 공히 다른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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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 전해 내려오는 명의 유이태의 의료담에 관한 이야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 숙종 때의 유이태는 거창군 위천면 출신으로 의술에 통달하였다. 여우로부터 얻게 된 구슬을 매개물로 명의가 된 후, 병을 해결하는 신의(神醫)에 가까운 의료담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유이태의 의료담에 얽힌 효행 설화는 효행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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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종교,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孔子)를 시원으로 하여 맹자(孟子)·순자(荀子) 그리고 주자(朱子) 등으로 계승되어 온 사상을 존경하고 숭앙하는 가르침이다. 무엇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유교(儒敎), 유가(儒家), 유도(儒道), 유학(儒學)이라고 한다. 유교는 중국에서 한대(漢代)에 이르러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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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유종환(兪宗煥)[1860 또는 1858~1909]은 서울 출생의 무과 급제자로서, 1907년 김동신(金東臣)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동신의 비장(裨將) 등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김동신이 체포된 후 80여 명의 부하를 이끌며 전성범(全聖範) 등과 연계하여 경상남도, 전라북도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초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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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역사적·예술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일정한 형태를 지닌 유형의 문화재. 거창은 경상남도 북서부 내륙 산간 지방의 분지형 지역으로, 동쪽은 합천군,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산청군, 북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소백산맥을 경계로 하여 경상북도와 전라북도에 접경하고 있고, 진안 고원에서 이어진 산간 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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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인 1598년 3월 24~25일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정기룡이 이끄는 조선군이 경상도 삼가현 율원에 주둔한 일본군을 물리친 전투. 율원(栗院)은 경상도 삼가현(三嘉縣)에 소재한 역원(驛院) 중 하나로,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일대다. 정유재란(丁酉再亂) 이후 경상도와 전라도를 공략 중이던 일본군은 1598년(선조 31) 삼가현 율원에서 분탕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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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출신의 조선 후기 의사(義士). 이술원(李述源)[1677~1728]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선숙(善叔), 호는 화촌(和村),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아버지는 증 승정원 승지(贈承政院承旨) 이연웅(李延雄), 어머니는 임여정(林汝楨)의 딸 은진 임씨(恩津林氏)이다. 할아버지는 김해 부사(金海府使)를 지낸 이중길(李重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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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8년 2차에 걸쳐 일본이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일대를 비롯한 조선 전역을 침략해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길을 빌리다]를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1598년(선조 31)까지 7년간 임진왜란이 조선에서 치러졌다.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을 이루고 있던 조선 시대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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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존속했던 시기 거창군 지역의 역사.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은 조선 시대 거창현(居昌縣) 지역과 안음현(安陰縣)[안의현(安義縣)]·삼가현(三嘉縣) 일부가 합쳐진 것이다. 거창현은 지금의 거창읍·고제면·웅양면·주상면·남상면·남하면·가조면·가북면 일대를 영역으로 하였다. 지금의 마리면·위천면·북상면은 안음현 영역이었으며, 신원면은 삼가현 영역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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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이나 자연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나 원리를 신앙하는 행위의 총칭. 경상남도 거창군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는 신라 때로 추정된다. 이는 거창 지역의 고찰(古刹) 고견사(古見寺), 송계사(松溪寺) 등의 창건주가 원효(元曉)[617~686]와 의상(義湘)[625~702] 두 고승(高僧)이기 때문이다. 거창 지역에는 고찰이 많다.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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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큰 하천이 많은 지형적 특성을 잘 반영하는 음식으로 경상도식이지만 거창 지역의 생산물인 고사리나 산나물 등이 특미로 들어가는 특징이 있는 탕. 거창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보면 산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 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발달해 있다. 이에 따라서 하천 주변의 충적지에 논 역시 발달하였다. 맑은 물과 높은 산에서 퇴적된 충적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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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있는 효행과 유학의 본 고장으로 이름난 농촌 전통 테마 마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있는 갈계 마을은 1450년쯤에 은진 임씨(恩津 林氏) 임천년(林千年)이 인근의 경상남도 함양에서 옮겨와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열렸다. 갈계 마을은 600여 년의 역사적인 유래를 가진 은진 임씨의 집성촌이자 의령공파 종가가 있는 곳이다. 본래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