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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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烽燧 |
영어공식명칭 | Signal-fire |
이칭/별칭 | 봉화,봉수대,봉화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용 |
[정의]
조선 시대에 긴급한 정보를 중앙과 인근 지역에 알리기 위해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설치한 군사 통신 시설.
[개설]
봉수(烽燧)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를 중앙에 알리는 군사 통신 제도의 하나이다. 봉수는 흔히 봉화(烽火)라고도 하며, 이리의 똥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낭화(狼火) 또는 낭연(狼煙)이라고도 불렀다. 경상남도 거창 지역의 봉수로는 거창읍 남쪽 금귀봉[827m] 정상에 있는 금귀봉 봉수(金貴峰烽燧)와 웅양면 봉수산[902.1m] 거말흘산 봉수(巨末訖山烽燧) 2개소가 있다. 남쪽으로 경상남도 합천 소현산 봉수와 북쪽으로 경상북도 김천시 구산(龜山) 봉수와 대응하고 있다.
[금귀봉 봉수]
금귀봉 봉수는 행정 구역상으로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산297번지 금귀봉 정상에 있으며, 거창 분지와 가조 분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봉수대가 있는 금귀봉(金貴峰)[710m]은 귀중한 산이란 뜻으로 금귀산 또는 금귀봉이라 하였다. 이 외 산의 모양새가 탕근과 비슷하여 탕근산이라고도 하고, 거북이 형상과도 비슷하다 하여 금구산(金龜山) 또는 구잠(龜岑)이라고도 불린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봉수대가 있어 봉우산[봉수산]이라고도 부른다. 봉수대 주변에는 삼국 시대 때 쌓은 금귀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금귀봉 봉수대는 ‘금귀산 봉수’라는 명칭으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볼 때 1422년(세종 4)에 전국적으로 봉수망을 정비할 때부터 설치되어 봉수제가 폐지될 때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귀봉 정상에는 봉수대에 사용했던 돌을 모아 쌓은 조그마한 탑과 아궁이 흔적이 남아 있다. 2013년 10월 금귀봉 봉수대 복원을 위한 학술 용역을 경남 발전 연구원에서 실시하였다.
[거말흘산 봉수]
거말흘산 봉수는 거창군 웅양면 봉수산 꼭대기에 있다. 연대 없이 연조[아궁이]만 설치한 형태이며, 원형(圓形)이다. 처음 만든 시기는 조선 세종 때로 추정하며 없어진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지금은 원형이 거의 훼손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 남쪽으로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금귀봉 봉수와 상응(相應)하고 북쪽으로는 김천 지례 구산 봉수와 상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거창 봉수의 노선]
금귀봉 봉수대와 거말흘산 봉수대 모두 조선 시대 전체 5개 노선 중 제 2거(炬) 노선에 속하는 간봉으로 내지 봉수에 속한다. 연결 노선을 보면 남해 금산-사천-진주 망진산-진주 광제산-삼가 금성산-합천 소현산[숙성산]-거창 금귀봉-거창 거말흘산-지례 구산-금산-영동-옥천 충주에서 제2거와 합쳐진다. 이어 한양[서울] 목면산[남산]으로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