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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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智活 |
영어공식명칭 | Lee Jihwal |
이칭/별칭 | 망기(忘紀),고은(孤隱),문정공(文靖公)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434년 - 이지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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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이지활 박유산에 은거 |
추모 시기/일시 | 1812년 - 이지활 정려 하사 |
추모 시기/일시 | 1817년 - 이지활 자헌대부 이조 참의 증직 |
추모 시기/일시 | 1830년 - 이지활 송호 서원 배향 |
거주|이주지 | 박유산 - 경상남도 거창군 |
묘소|단소 | 박유산 - 경상남도 거창군 |
사당|배향지 | 망월정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
사당|배향지 | 송호 서원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 |
사당|배향지 | 안산 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
사당|배향지 | 상친사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
성격 | 충신 |
성별 | 남 |
본관 | 성주(星州) |
대표 관직|경력 | 운봉 현감 |
[정의]
조선 전기 거창에 은거한 충신.
[가계]
이지활(李智活)[1434~?]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망기(忘紀), 호는 고은(孤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산군(星山君) 이태보(李台寶)이며, 할아버지는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지낸 이득방(李得芳)이다. 아버지는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이비(李棐), 어머니는 판서(判書)를 지낸 김충수(金忠秀)의 딸 죽산 김씨(竹山金氏)이다. 부인은 부원군(府院君) 유원검(柳元儉)의 딸 숙인(淑人) 문화 유씨(文化柳氏)다.
[활동 사항]
이지활은 1447년(세종 29) 14세의 나이로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으며, 1451년(문종 1) 운봉 현감(雲峰縣監)으로 부임하였다. 22세가 되던 1455년(세조 1)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그날 관직을 버렸다. 또한 한숨을 쉬며 "옛날 박유(朴儒)는 나와 뜻이 같은 선비였다."라고 말한 뒤, 경상도 거창현(居昌縣)의 박유산(朴儒山)으로 들어갔다. 박유는 신라가 고려에 복속되자, 고려에 벼슬할 것을 거부하고 박유산에 은거한 충신이었다. 이어 이지활은 박유를 위한 제문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또한 망월정(望月亭)[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소재,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36호]이라는 정자를 건립하여, 밤낮으로 단종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하였다.
1457년(세조 3) 강원도 영월(寧越)에 유배되어 있던 단종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 이후로 이지활은 부모를 잃은 듯 안절부절 못하였으며, 항상 술병을 들고 박유산 꼭대기에 올라가 해가 지도록 통곡하였다. 그렇게 이지활은 단종에 대한 지조를 지키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이지활의 행적을 엮은 2권 1책의 『고은 선생 실기(孤隱先生實記)』가 전한다. 한편, 이지활은 망월정을 지은 후 단종을 기리는 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야야상사도야심(夜夜相思到夜深)[그리운 님 사모하느라 밤은 깊어 가고]
동래잔월양향심(東來殘月兩鄕心)[동에서 오는 잔월 두 고을 비추네]
차시원한무인해(此時冤恨無人解)[이때의 한스러운 마음 알아주는 이 없어]
고기산정루불금(孤寄山亭淚不禁)[외로이 산 정자에 기대어 눈물 흘리네]
[묘소]
[상훈과 추모]
1800년(정조 24) 사림들이 이지활의 충절을 기리는 상소문을 올려 정려(旌閭)를 청하였고, 1812년(순조 12) 비로소 정려가 내려졌다. 1817년(순조 17) 자헌대부 이조 참의(資憲大夫吏曹參議)로 증직되었다.
이지활은 송호 서원(松湖書院)[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09호]과 안산 서원(安山書院), 상친사(尙親祠)에 배향되어 있다. 1830년(순조 30) 건립된 송호 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 있으며, 이지활과 이어(李王+於)·이지번(李之蕃)을 배향한 서원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에 있는 안산 서원은 성주 이씨 역대 인물 중 현조(顯祖) 22인을 배향하고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에 위치한 상친사도 성주 이씨 13인을 배향한 곳이다. 한편, 이지활이 건립했다는 망월정은 홍수로 인해 1813년(순조 13)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로 옮겨졌다. 현재 망월정에서는 매년 3월 지역 유림들이 이지활의 충절을 기리는 향사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