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25
한자 邢士保
영어공식명칭 Hyung Sabo
이칭/별칭 중우(仲愚),지지당(止止堂)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82년연표보기 - 형사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10년 - 형사보 생원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19년 - 형사보 현량과 선발
활동 시기/일시 1522년 - 형사보 문과 식년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33년 - 형사보 경상도 도사 체직
몰년 시기/일시 미상
추모 시기/일시 1711년 - 형사보 용천 향현사 배향
추모 시기/일시 1980년 - 형사보 화산 서원 배향
거주|이주지 형사보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묘소|단소 형사보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용천사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화산 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진주(晋州)
대표 관직|경력 곤양 군수

[정의]

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문신.

[가계]

형사보(邢士保)[1482~?]의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우(仲愚), 호는 지지당(止止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교수(敎授)를 지낸 형박(邢玉+尃)이며, 할아버지는 공조 정랑(工曹正郞)을 지낸 형극강(邢克剛)이다. 아버지는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지낸 형건(邢建), 어머니는 사인(舍人) 오상문(吳尙文)의 딸 정부인(貞夫人) 함양 오씨(咸陽吳氏)이다. 부인은 이석신(李碩臣)의 딸 숙부인(淑夫人) 재령 이씨(載寧李氏)다. 형사보의 선대는 형박 때 처음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송변(松邊)에 정착하였다.

[활동 사항]

형사보는 어려서 외할아버지인 오상문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일찍이 문장(文章)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형인 형사철(邢士哲), 동생인 형사명(邢士明)과 함께 삼우정(三友亭)을 짓고 함께 학문을 강론하여, 주위 사람들이 이들을 강굉동피(姜肱同被)[형제간의 독실한 우애를 묘사한 고사]에 비유하였다. 형사보는 1510년(중종 5)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으며, 1518년(중종 13)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였던 김안국(金安國)에 의해 같은 고을 사람 변벽(卞璧), 그리고 형사철과 함께 천거되었다. 당시 김안국은 그들 중에서도 형사보의 학문이 가장 뛰어났다고 했으며, 또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한결같이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거행하였음을 높게 평가하였다.

형사보는 1519년(중종 14) 실시된 현량과(賢良科)에 선발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이때 형사보조광조를 따랐는데, 그해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고향에 은둔하였다. 1522년(중종 17) 문과(文科)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내직으로는 공조 정랑(工曹正郞)·예조 정랑(禮曹正郞) 등을 지냈으며, 외직으로는 경상도 도사(慶尙道都事)·합천 군수(陜川郡守)·곤양 군수(昆陽郡守)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러나 1533년(중종 28) 경상도 도사 재임 시절 장오죄(贓汚罪)를 저지른 전 울산 군수(蔚山郡守) 황여헌(黃汝獻)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 대간에게 논박을 당한 후 체직되기도 하였다.

형사보는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향에서 여생을 보냈는데, 이때 서재의 당호를 ‘지지당(止止堂)’이라 하였다. ‘지지’는 자신이 멈출 곳을 알고 멈춘다는 뜻이다. 조광조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안처순(安處順)·변벽·유자방(柳子房) 등과 도의(道義)를 맺었다.

[학문과 저술]

형사보의 행적을 엮은 「지지당 실기(止止堂實記)」가 전한다. 「지지당 실기」는 진주 형씨 명현(名賢)들의 행적과 시문(詩文) 등을 세고(世稿) 형태로 엮어 놓은 『형씨 연방록(邢氏聯芳錄)』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형사보의 묘소가 있다. 몰년은 알 수 없다. 『진주 형씨 대동보』와 『형씨 연방록』 수록 「지지당 실기」에는 1532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중종실록』에는 1534년까지 행적이 등장한다.

[상훈과 추모]

형사보는 1711년 거창현에 창건된 용천향현사(龍泉鄕賢祠)에 유자방·이계준(李繼俊)·전팔고(全八顧)·전팔급(全八及)·서숙(徐䎘)과 함께 배향되었다. 용천향현사는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집권기 때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이후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 용천사(龍泉祠)로 새롭게 창건한 것이다. 또한 1980년에는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에 창건된 화산 서원(華山書院)에 유자방과 함께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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