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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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彪 |
영어공식명칭 | Jung Pyo |
이칭/별칭 | 문백(文伯),각금정(覺今亭)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15년 - 정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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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49년 - 정표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76년 - 정표 문과 별시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78년 - 정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44년 - 정표 영천사 배향 |
수학|강학지 | 정표 강학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
묘소|단소 | 정표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
사당|배향지 | 영빈 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동래 |
대표 관직|경력 | 옥과 현감 |
[정의]
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문신.
[가계]
정표(鄭彪)[1515~1578]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字)는 문백(文伯), 호(號)는 각금정(覺今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양평공(襄平公) 정종(鄭種)이며, 할아버지는 사직(司直)을 지낸 정지운(鄭智耘)이다.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정성련(鄭成璉), 어머니는 증 승지(贈承旨) 윤연(尹硏)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부인은 기천 정(基川正) 이효완(李孝完)의 딸 완산 이씨(完山李氏)다. 정표 가문은 할아버지 정지운 대에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로 이주하였다.
[활동 사항]
정표는 어려서부터 성리학 공부에 열중하였으며, 특히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더라도 어린 물고기는 항상 놓아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성장해서는 가천(加川)[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에 정자를 짓고 학문 연구에 주력하였으며, 노진(盧禛)·하항(何沆) 등 여러 명현들과 교유하였다.
1549년(명종 4)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고, 1576년(선조 9)에는 문과(文科) 별시(別試)에 급제하였다. 이후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정자(正字)를 거쳐, 병조(兵曹)와 이조(吏曹)의 낭관(郎官)이 되었다. 그 후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부임하였는데, 80여일 만에 부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정표의 문집으로는 2권 1책의 『각금정집(覺今亭集)』이 전한다.
[묘소]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가천에 정표의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정표는 1744년(영조 20) 건립된 영천사(瀯川祠)에 배향되었다. 영천사는 지금의 영빈 서원(瀯濱書院)으로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있다. 정표를 비롯해 정구(鄭矩)·정종(鄭種)·정응두(鄭應斗)·정시수(鄭時修)·정형진(鄭滎振)을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