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전주와 군산의 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김제 지역을 편의상 서남 지역과 동북 지역으로 나눈다면 서남 지역은 군산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했으며, 동북 지역은 전주에서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전주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하였다. 김제 서남 지역으로의 개신교가 전래는 김제시...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동계리에 있던 사당. 중국에서는 관운장(關雲長)을 신으로 신봉하면 전시에 관운장의 신령이 나타나 적을 섬멸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관성묘는 중국 촉한의 무장이었던 관운장의 사당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관왕묘라 부르고 있어 동일한 뜻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공자의 묘를 문묘(文廟)라 하는데 대해 무묘(武廟)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비워...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기독교를 신앙하며 종교 활동을 하는 공동체. 호남에서도 손꼽히는 곡창 지대로 알려진 김제 지역은 그 지리적 특성상 다양한 교통로를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가 육로와 수로 등 다양한 통로를 거쳐 전파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제 서부 지역은 군산 선교부의 전킨[한국명 전위렴] 선교사가 만경강을 건너와 1886년 송지동교회를 세우는 등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터. 구성서원(九城書院)은 1700년(숙종 26) 윤순거(尹舜擧)[1596~1668]와 윤증(尹拯)[1629~1714]을 모신 서원으로, 1868년(고종 5)에 헐어버렸는데 다시 세우지 못해 묘처럼 봉분한 단과 비(碑)만 남아 있었다. 단은 하나이고 비는 ‘동토윤선생(童土尹先生)’과 ‘문성공명재윤선생(文成公明齋尹先生)’이라 새긴...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암서원(龜巖書院)에서 주벽으로 모시는 사가(四佳) 황거중(黃居中)의 신도비문에 의하면, 황거중은 우주황씨로 자는 경덕(敬德)이다. 고려 말기 관직에 있으면서 경학을 통해 도를 이루는 데 힘썼다. 조선 왕조 창업에 동참하여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개국 공신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다. 이때 황거중은 유학을 진작시키고자 풍...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신종교인 일관도계의 한 교파. 일관도(一貫道)란 1947년 중국인 이덕복(李德福)·장서전(張瑞荃)·김은선(金恩善) 등에 의하여 중국에서 유입된 외래 종교로, 유불선(儒佛仙)을 융합하여 일관한다는 뜻에서 일관도라 한다. 세 사람은 입국 초기 각기 활동하였는데, 중국에서 건너와 각기 활동하는 세 사람을 본 김복당(金福堂)이 1952년 부산에서 도덕기초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고려 후기 향교. 금구향교(金溝鄕校) 창건 당시는 금구동헌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서혈산(西血山) 아래에 중건하였으나 지세가 좋지 못하여 1676년(숙종 2)에 지금의 위치인 금구면 금구리 152번지로 옮겨 중건하였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금구향교가 세 번째 옮겨 지금 자리에 왔다고 하며 전에 있던...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개항기에 설립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민족적 정서가 강한 종교와 사상의 흐름이 지속된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처음으로 기독교의 교리가 전파된 것은 군산선교부와 전주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1897년 전라북도 김제군 공덕면 송지동에 사는 송원선·강문성 등이 김제의 서남 지방을 담당하였던 선교사 전위렴[W.M. Jun...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 최태용 목사가 창설한 기독교 관련 종교단체.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1935년 김제 출신 최태용 목사가 전라북도 익산군 금마에서 창설하였다. 그는 원래 예수교장로회 성남노회(成南老會) 교인이었다. 그는 수원농립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기독교의 무교회주의자인 내촌감산(內村鑑山)의 영향을 받고 무교회주의자가 되어 귀국했다. 그는 성서 연구에 몰두하...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관성묘(關聖廟)는 중국 촉한의 무장 운장(雲長) 관우의 묘(廟)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관왕묘라 부르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관성묘로 격상하여 부르고 있다. 공자의 묘를 문묘(文廟)라 하는데 대해 무묘(武廟)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관우를 신으로 신봉하면 전시에 관우의 신령이 나라나 적을 섬멸한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증산교 성지. 김제 증산법종교 본부 영대와 삼청전은 김제 증산법종교 본부로 증산도 교주 강일순(姜一淳) 부부의 무덤을 봉안하면서 형성된 성지를 유지 관리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1949년 증산도 교주 부부의 무덤을 봉안하면서 삼청전을 지었으며, 1952년 2층 목조 묘각인 영대를 건립하였다.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금산사로 들어가는 입구를...
-
전라북도 김제시 백학동에 있는 대한예수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김제동부교회는 1903년에 세워진 김제월성교회에서 분리되어 1905년 3월 15일에 설립된 선인동교회를 모태로 한다. 선인동교회는 김제시 황산면 들판에 자리 잡고 있는 선인동 마을의 데이트[한국명 최의덕]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은 안백선과 백순경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데이트 선교사로부터 청교도적인 신앙 훈련을 받은 안...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문화 예술 공연 및 전시장. 김제는 예로부터 풍요로운 도작문화의 발상지이자 저명한 학자, 문인, 서화가, 국악인 등이 많이 배출되어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무대인 공연장이나 전시장 등이 없어 그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문화예술인, 사회단체장, 지역 유지 등이 모여 김제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
-
전라북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는 지역 문화 사업과 향토 문화 연구를 위해 설립된 문화 예술 단체. 김제문화원은 김제 지역 향토문화 예술의 개발 진흥, 전통 문화의 발굴 보존 및 전승, 문화 행사의 발전, 향토지 및 지방 문화 사업 사료 편찬, 사회교육에 관한 사업의 창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6년 김제 지역 향토 문화 발전에 뜻을 같이 하는 인사 30명이 모여 김제문화원을...
-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1910년 7월 10일 이율선 선교사, 주은선 조사, 김여일 등을 중심으로 김제읍 김여일의 사가에서 예배 처소를 마련하고 예배를 본 것이 김제제일교회 전신인 옥산교회의 첫 출발이 되었다. 당시 옥산교회는 위치상으로 향교가 200m 내외요, 동헌이 100m 이내에 있는 옥거리 한복판에 세워졌다. 1920년 군산 구암...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소속 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명칭 중 ‘제칠일안식일’은 기독교가 준수해야 할 안식일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을 최고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데, 예수가 말한 재림의 징조들의 성취를 통해 재림의 임박성을 확신하고 있다....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1928년 김제제일교회의 장로였던 정공선과 교인들이 요촌리에 126㎡ 규모의 교회당을 신축하고 김제중앙교회를 설립하였다. 초대 목사로 제주도 출신 이도종이 부임했으나 교회당 신축과 더불어 고향 제주도로 목회를 위해 떠나게 되자 정공선 장로에게 모든 것이 맡겨졌다. 이에 정공선이 병원과 교회에서 부인 최원선 권사와 함...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전기 향교. 향교의 설립 목적은 성현에 대한 향사와 유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침에 있으며 아울러 지방 문화 향상 및 사기 진작 등 사회교육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태조는 지방 재정에 의해 설치된 지방 향교의 흥패(興敗)를 수령들의 치적 평가 척도로 삼는 적극적인 정책을 취함으로써 향교 보급에 중점을 두었다. 이후 향교는 조선 중엽까지 성황을 이루었으나...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에 있는 송정기·송정구·송정모 삼형제를 모신 사당. 죽계 송정기(宋廷耆)는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지조가 단결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받았다. 벽계 송정구는 송정기의 가운데 동생으로 형을 엄부와 같이 섬기며 효로써 집안을 다스리고 예로써 가르치니 향인이 흠모하여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六松祠)에 배향하다가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송정모는 송정기...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마산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 1907년 박윤성에 의해 설립된 교회로서 일제강점기에는 민족교육은 물론, 신사참배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투쟁에도 참여하였는데, 1962년 난산교회의 목사로 부임한 강희남은 박정희 유신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옹호하였으며,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난산교회의 설...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남산서원(南山書院)에서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였던 유지화(柳志和)[1599~1680]를 중심으로 동강 남궁제(南宮濟)를 제향하고 있다. 유지화는 1633년(인조 11)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는 번드리라 불리기도 한다. 번드리는 드넓은 마을의 논에 물이 꽉 차면 멀리서 볼 때 번들번들하게 보였다 해서 생겨난 이름이며 대창리는 이곳이 큰 곡창 지대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찍이 전킨[한국명 전위렴] 전도사로부터 전도를 받고 입석리교회를 이끌던 이기선(李基先)으로부터 기독교를 전...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두곡서원(杜谷書院)은 성리학자 강원기(康元紀)[1423~1498]의 거처가 있던 곳으로, 배향되어 있는 사람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봉호당 문헌공 강원기, 난계 성전림(成傳霖) 등이다. 성리학자 강원기는 야은(冶隱) 길재(吉再), 정몽주와 더불어 경전을 읽어 유풍(儒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그가 경원과 은성 두 고을의...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청소년 문화 공간. 2001년 6월 18일 창립된 만경 청소년문화의집은 청소년들에게 지역사회 생활권에서의 문화활동을 보장하고, 급변하는 각종 사회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연중행사로 매년 5월 김제시 청소년의 달을 기념하여 김제시 청소년 5:5 풋살대회, 왁자지껄 페스티벌, 청소년 3:3 길거리 농구대회, 청소년 무박2일...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요촌성당의 제9대 김재덕[아우구스띠노] 신부가 황산농원에 공소를 설립하고 만경 지역의 기와집 두 채와 대지를 매입하여 공소 설치에 대비했으며 10대 범석규 신부는 만경공소를 신축하였다. 2001년 1월 29일 만경성당이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임 신부는 김태환[베드로] 신부이며 전체 신자 수는 384명이...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향교. 만경향교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만경현 향교조에 의하면 당시 동헌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2리쯤 떨어진 곳이었다. 1620년(광해군 12)에 화재로 인해 건물 전부가 소실된 뒤 17년이 지난 1637년(인조 15) 현재의 위치인 만경읍 만경리 183-1번지[두내산1길 25-10]에 중건되었다. 만경향교는...
-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 있는 박초의 영정을 모신 사당. 김제시 입석동에서 태어난 박초(朴礎)[1367~1454]는 본관은 함양, 자는 자허(子虛), 호는 토헌(土軒)이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15살에 진사로 태학에 입학하여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하였다. 전라도제찰사(全羅道提察司) 등을 거쳐 이조판서겸예문관대제학에 올랐...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배극렴의 불천위 사당. 배극렴(裵克廉)[1325~1392]의 본관은 성산(星山)이고, 자는 양가(量可)이며, 호는 필암(筆庵)·주금당(晝錦堂)이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성계 휘하에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파하였다. 1388년(창왕 1) 이성계 등과 위화도 회군을 결행하여 조선을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개국공...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백산서원(白山書院)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청곡(靑谷) 윤찬(尹瓚)을 비롯하여 구봉(九峰) 윤여임(尹汝任), 죽계(竹溪) 백선남(白善男), 죽음(竹陰) 윤자선(尹滋善), 담재(澹齋) 윤자민(尹滋民)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윤찬은 영흥군(鈴興君) 윤지효(尹之孝)의 아들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어가(御駕)를...
-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백석서원(白石書院)에는 백석 유집(柳楫)[1585~1651], 창강 조속(趙速)[1595~1668], 반곡 유도(柳棹)[1604~1663] 등 향현 3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주벽에는 유집이 자리하고 있다. 유집은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와 찰방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당시 이흥발(李興跋) 등과...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서원. 서원은 나라 안팎의 훌륭한 분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지방의 청년들이 학문과 덕행을 연마하는 수도장이었다. 그러나 서원이 곳곳에 세워져 그 수효가 많아지자 갖가지 옳지 못한 일이 일어나 당파 싸움의 소굴이 되기도 하였다. 벽성서원(碧城書院)은 1965년 김해김씨 종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벽성서원의 구성은 외삼문인 어덕문(御德門), 정면 4칸, 측...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에 있는 송기면을 모신 사당.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1882~1956]은 시(詩)·서(書)·화(畫)의 삼절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석정 이정직(李定稷)에게 글씨와 문인화 등을 배웠고, 대한제국 말기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인 간재 전우(田愚)의 제자로 글씨, 문인화, 문장에 뛰어났다. 병암사(屛巖祠)는 송기면의 제자들과 지역 유림들이 송기면의 학...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성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관을 모신 영당. 김관(金瓘)[1425~1485]의 본관은 언양(彦陽)으로, 초명은 종동(終同). 자는 영중(瑩中), 호는 묵재(默齋)이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1479년 동지중추부사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
-
전라북도 김제시 월봉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김제 지역에 활발하게 복음이 전파된 배경 중 하나는 동학 혁명 직후, 기독교로 귀의한 동학도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다. 1900년에 세워진 입석리교회가 동학 세력의 개종으로 설립된 교회의 대표적인 예이다. 전의렴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곽성국 등이 월촌면 입석리에 기도처를 마련하여 1900년 10월 1일 설립한 입석리교회가 봉...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봉성온씨 문중의 사당. 수신재(守愼齋) 온신(溫信)은 1366년(공민왕 15) 신돈(莘旽)의 농정을 극간하다 벼슬이 강등되어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에 살게 되었다. 운림(雲林) 온림(溫琳)은 온신의 아들로 공양왕 때 좌랑을 지냈으며 고려 말기 두문동에 들어가 태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채 봉림동에 숨어 살며 스스로 운림한사(雲林寒士)라...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삼현서원(三賢書院)은 강승(姜昇)[1430~1500]·김시습(金時習)[1435~1493]·남효온(南孝溫)[1454~1492]을 배향하고 있다. 주벽으로 모신 강승은 『김제군선생안』에 등재되어 있는 인물로 김제군수를 역임하였다. 또한 매월당 김시습은 생육신으로 단종이 폐위되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글을 남겼는데, 소설 『금오신...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있는 애국지사 장태수의 사당. 서강사(西岡祠)는 금구면사무소에서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방향으로 1㎞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935년 일제강점기에 인동장씨가 중심이 되어 대한제국 말기 일제 침략에 반대하여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세상을 떠난 일유재 장태수(張泰秀)[1841~1910]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당시 일제가 장태수를 으뜸 위패로...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신종교인 성덕도의 교화원. 1952년 음력 5월 27일에 ‘성덕도 교화원’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되었는데, 본원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있다. 김옥재는 물법계로 분류되는 김봉남(金奉南)과 사제지간이었으나, 후에 성덕도의 신앙을 통해 먼저 심성을 다스려 개과천선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1986년 2월부터 재단법인[성덕도 유지재단]이 되었고, 1997년부터...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회룡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1896년 군산에서 장을 보고 오던 중 송원선과 강문성이 전위렴[W.M. Junkin] 목사를 만나 전도를 받은 후 두 사람은 당시 송지동에 거주하던 문학선의 방 하나를 빌려 송지동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최치국 등 다수의 신자들이 협력하여 교인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세례 교인 15명...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1890년대 호남에는 3개의 성당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천주교로 귀의시켰다. 되재본당[전라북도 완주 화산], 나바위본당[당시 익산군 망정면 화성리], 수류본당[당시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화율리]이 바로 그곳이다. 수류성당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 가장 많은 신부를 배출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류본당...
-
전라북도 김제시 흥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승방원(承芳院)은 양헌(良獻) 정인(鄭絪)을 중심으로 국촌(菊村) 최철(崔哲), 풍천(楓川) 정수홍(鄭守弘), 복재(復齋) 정곤(鄭坤), 연화(漣華) 정임(鄭任), 벽성(碧城) 박문(朴雯)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제향이 모셔지고 있다. 1856년(철종 7) 동래정씨(東萊鄭氏)가 주동이 되어 세울 당시에는 사당의 기능이 강했을...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흥 종교란 기존의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 외에 1900년대를 전후하여 새로 탄생된 종교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제 지역에서는 모악산을 중심으로 1860년 경주의 유생 최제우(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시된 천도교를 비롯하여 강증산(姜甑山)[1871~1909]의 증산교, 박중빈(朴重彬)[1891~1943]의 원불교와...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전라북도 김제 시내에 있는 요촌성당 한 곳으로는 지역의 많은 신도들을 포용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1983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여 신풍성당을 설립하게 되었다. 1981년 김제본당의 제19대 주임신부 오현택[가시미로]이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138번지를 제2성당 부지로 매입하였다. 1983년 1월 김제시 신...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터. 쌍계서원은 1573년(선조 6)에 창건하였고 최식(崔湜), 최응삼(崔應三), 경거륜 등을 배향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쌍계서원 터는 옛날의 금구현 동면 봉월리, 즉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 당월마을에 위치해 있다. 건물은 헐려 남아 있지 않고, 문 뒤쪽에 쌍계서원이란 편액이 걸려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여호와의증인 교단 소속의 교회. 여호와의증인은 천년 왕국 신앙, 성서적 엄격주의 등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독특한 흐름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기독교 종파의 하나로, 공식 이름은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이다. 여호와의증인은 「이사야서」 43장 10절에 기록된 “너희가 바로...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배택수를 모신 영당. 배택수의 본관은 달성(達成)이고, 자는 인술(仁述), 호는 송권(松卷)이다. 아버지는 배석범이며 1899년(고종 36)에 태어났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주경야독하며 재산을 모은 뒤 숙사를 짓고 좋은 스승을 초빙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향리 사람들이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영당을 지어 모시고 있다. 오산영당(鰲山...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김제시 요촌 지역 일대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때는 확실치 않으나, 1920년 구장리 공소의 회장 김정엽이 검산리 공소를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요촌본당의 전신인 검산리 공소는 이후 신자 수가 늘어나자 수류성당의 뤼카 신부가 마련한 부지에 새로 성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1935년 6월 16일 수류성당에서...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용암서원(龍巖書院)은 조간(趙簡)을 주벽으로 하여 이계맹(李繼孟)[1458~1523]·나안세(羅安世)[1475~1527]·윤추(尹推)[1632~1707]·이세필(李世弼)[1642~1718]·나응삼(羅應參)[1505~1568]·조윤침(趙潤琛) 등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조간의 호는 열헌(悅軒), 본관은 김제(金堤)이다. 1279년(충...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과학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세계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여 쇠퇴해 가는 인류 도덕을 다시 일으키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서 새 시대 도덕의 기초를 세우고 고해에서 헤매는 인류를 낙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한국에서 창설된 새로운 교단이다. 원불교에서는 불법의 ‘시대화·대중화·생활화’라는 3가지 정신 아래...
-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는 원불교당. 교화 3대 추진 운동의 일환으로 화포교당에서 박현일 교무와 김양정 교도가 1964년 5월부터 1년 간 출장 법회를 통해 교화의 문호를 개척하여 1965년 4월 김제 교육지원청 회의실에서 200여 명의 청중을 모아 김영신 교무를 초빙하여 교리강습을 주제하였다. 그 결과 30여 명의 새 교도를 얻게 되었고 1965년 4월 11일 초대 장정수 교...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성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김제 두정리에서 마부 생활을 하던 이자익은 최의덕 선교사의 지도로 신앙 교육을 받았다. 최의덕 선교사의 진실에 감동된 이자익은 팟정이교회[현 금산교회]에서 학습, 세례 문답을 거쳐 다시 영수의 일까지 보게 되면서 1909년 두정리 지역의 면소재지인 구봉리에 구봉교회를 설립하였다. 1930년 원평리로 예배당을...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전라도 최초의 본당은 금구의 배재[현재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있었다. 본당은 주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신부가 일정한 곳에 상주하면서 관할 구역의 공동체를 사목하는 교회 단위를 말한다. 한국의 성당은 오랫동안 본당이 없이 공소로만 운영되었다. 공소는 본당보다 적은 단위로써 신부가 주재하지 못하는 지...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보급된 종교로서 유학의 연원과 전개 현황. 호남은 지역적으로 영남유학과 대별되는 기호유학에 포함되어 있다. 호남 향촌사회의 유학자들은 도학사상을 기반으로 학술활동 및 치민활동을 하면서도 의리와 실천을 그 근본정신으로 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김제 지역 유교의 전래는 김제향교와 금구향교, 만경향교를 중심으로 용암서원을 비롯한 30여 개의 서원·재·강당에...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육송사(六松祠)는 본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에 살고 있는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집안 사당으로 창건된 것이어서 육송사에 모셔져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언양김씨이다. 당초 배향되었던 송씨 3형제[송정기(宋廷耆)·송정구(宋廷耈)·송정모(宋廷模)]가 제외되고, 현재는 묵제 김관(金瓘)[1425~1485]을 중심으로 용암 김승속(...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반교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임상리에서 천석꾼의 가정에서 태어난 한상용[1889~1963]이 황산면 선인동교회에서 목사 김익두의 부흥회를 참석한 후 1920년 용지면 임상리에서 잠실(蠶室) 하나를 구입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임상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그 후 임상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회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저산서원(楮山書院)은 김제시 공덕면 회룡리 동촌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1577년(선조 16)에 창건되었으며, 1869년(고종 6) 철폐되었다가 1904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서원의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당인 저산사(楮山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저산서원에는 본관이 남평(...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윤교의 정려. 정윤교(鄭允喬)[1733~1821]의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호는 외암(畏庵)이다. 정윤교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정윤교의 아버지가 윤씨라는 여자가 거짓말을 하여 관가에 불려가 매를 맞고 죽음을 당하였다. 윤씨는 자신의 음탕한 행실이 탄로 날까 두려워 정윤교의 아버지를 이 일에 끌어들여 모면하려는 계산...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예촌리에 있는 정국공신 황탄의 부조묘. 정의공(貞毅公) 황탄(黃坦)은 1462년(세조 8) 지금의 서울특별시 석정동에서 출생하였다. 증조부는 황희 정승이고, 조부는 경기 감사와 호조판서를 역임한 황치전으로 불의와 야합하지 않은 명문 사대부 출신이다. 조선 성종 때 등과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 형조참판(刑曹參判)으로 재직하다가 연산군 때 종사가 위태로운 지경...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김제 지역은 백제시대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현재까지 성행하고 있으며, 고려 말 유교 도래 이후 일찍이 근대 시기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전래되었다. 또한 자세한 통계는 없으나 한때는 계룡산보다도 신종교가 많았다고 전해질 정도로 모악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종교가 성행하였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김제 지역 불교에 중대한...
-
증산 강일순의 교리를 바탕으로 근대에 발생한 신종교.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1871년 정읍군 덕천면 출생하였다. 일찍이 동학(東學) 교도가 되었으나,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에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원할 뜻을 품고 전국을 떠돌면서 유교·불교·도교·참위(讖緯:음양오행설에 따라 길흉화복을 점치거나 예언함) 등 여러 사상과 설(說)을 공부하...
-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지음서원은 충정공 이귀(李貴)[1557~1633]·나협[1546~1632]·나수눌(羅守訥)·고봉익(高鳳翼)·나처대(羅處大)[1714~1791]·나희후(羅喜厚) 등의 위패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이귀의 호는 묵재(墨齋), 자는 옥여(玉汝),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이이(李珥)[1536~1584]와 성혼(成渾)[1535~1598]...
-
1905년 교조 손병희(孫秉熙)가 동학을 계승하여 개칭한 종교. 동학은 1860년 경상북도 경주의 유생 최제우(崔濟愚)에 의하여 창시되었다. 그는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구제해 내겠다는 결심으로 이름을 제선(濟宣)에서 제우로 고치고 호를 수운(水雲)이라 하였다. 당시의 정계는 외적의 침입으로 국권이 침탈되는 위기에 직면했으며, 종교계는 유불선(儒彿仙) 등 기성 종교가 부패하였으며...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 교회. 김제 지역의 천주교는 1866년(고종 3) 병인박해로 많은 순교자가 나온 후인 1879년(고종 16) 드게뜨 신부가 금구 배재에서 잡혀 추방되었다가 1881년(고종 18) 뭬렐 신부와 같이 재입국하면서 전래되기 시작하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 혁명 후에는 말세로구 신부가 와서 금구현 수류면[현 김제시 금산면]에 있던 전주...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청곡사(靑谷祠)에 모셔져 있는 주벽은 윤찬(尹燦)이고 배향인물은 박정영(朴廷榮)·백선남(白善男)·윤여임(尹汝任)이다. 윤찬은 원종공신에 파릉군(坡陵君)으로 봉해지고 사당을 세웠다. 박정영은 재종숙인 굴지당 박석정에게서 글을 배워 11세에 주역을 알고 경전과 술수에 밝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굴지당 박석정, 김제군수 정담(鄭湛...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증산교의 한 교파이자 교주 강일순의 사당. 청도대향원(淸道大享院)은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姜一淳)의 사당을 의미하지만, 하나의 교파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사당을 세운 김삼일(金三一)은 법종교 전 교주 김병철(金炳澈)의 아들로, 강일순의 딸인 강순임(姜舜任)이 그의 서모(庶母)이다. 김삼일은 처음에는 법종교에 귀의하였으나 강순임이 죽은...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나씨 가문의 사당. 나주나씨(羅州羅氏)는 문중 3세대에 걸쳐 8명의 효자가 나왔다. 팔효사(八孝祠) 안에 있는 은행나무는 팔효사의 주벽 나안세(羅安世)의 부친 나보증이 어려서 심었다 하며, 나씨 문중에서 장원 급제 등 경사가 있을 때 이 은행나무에 큰 북을 달아놓고 쳤다고 한다. 또한 팔효자가 날 때는 잎만 피고 3년이 지난 뒤에야 열매...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학당서원(學堂書院)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인물들을 모신 서원으로, 배향 인물들은 대개 웅치전투에서 순절했거나 임진왜란에 큰 공적을 세웠다. 매년 정기적으로 제향을 올리는 사당과 유생들의 교육장소로 강당을 모두 갖추고 있는 서원이다. 사당에는 원군(原君) 안처를 비롯하여 정담(鄭湛)[1548~1592] 등 9명의 신위를 모시고...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대석리에 있는 전통 서당. 학성강당(學聖講堂)은 기호학맥을 정통으로 계승한 전통 서당이다. 전통 학문과 상읍례(相揖禮) 의식의 맥을 제대로 이어 오는 유일한 곳으로 국내 최대의 서당이다. 성인을 배운다는 뜻을 담아 학성(學聖)이라 이름 지었다. 학성강당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대석리 대석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1954년 부터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쳐 온 김...
-
전라북도 김제시 장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외암 정윤교(鄭允喬)[1733~1821]의 아버지 정천배(鄭天培)가 어떤 여인의 무고로 억울하게 죽었다. 이에 정윤교와 송고(松皐) 정윤준(鄭允俊), 정윤검(鄭允儉) 등 3형제는 오랫동안 원수를 갚고자 제청도 치우지 않고 상복을 입은 채 원수를 찾아다녔고, 16년 만에 원수를 갚은 뒤 탈상을 하고 상복도 벗었다. 그런 다음 3형제는...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회동서원(檜洞書院)은 1602년(선조 35)에 창건되어 이서상(李瑞相)·이광춘(李光春)·이영춘(李榮春)·최주극(崔柱極)·최주항(崔柱恒)·임명항(任命恒)·임명용(任命龍) 등을 배향하였으나, 1870년(고종 7)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재건되지 못하였다. 폐사지인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는 현재는 빈 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