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전자권이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합되기 전 금구면의 실상을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긴 읍지. 금구면은 일제강점기까지 김제군의 군청소재지였다. 이 때문에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전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문화재들이 약탈되거나 소실되었다. 이에 금구면과 관련하여 남아 있는 문헌들과 전승 문화를 기록으로 보존함과 동시에 그 동안 금구면의 변화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와 월전리 경계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금구산성의 축성 연대와 건립 경위를 명확히 밝혀 주는 문헌 자료는 없다. 관련 기록 중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있는데 여기서는 “봉두산 재현동2리(鳳頭山在縣東二里)”라 하였고 금구산성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금구산성에 대하여 기록된 자료로는 『금구읍지(金溝邑誌)』와 김정호의 『청...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고려 후기 금구향교의 대성전. 향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으로 공자나 그의 제자 그리고 역대 성현들의 가르침을 기리고 공부하던 곳이다. 조선시대는 각 군·현마다 향교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으며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금구향교(金溝鄕校) 대성전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와 선암리에 걸쳐 있는 산. 봉두산(鳳頭山)은 봉황을 닮은 형상이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봉두산은 현 동쪽 이십리에 있다[鳳頭山在縣東二十里]’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통일신라시대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는 월전리 성터가 있어서 인지 ‘산성봉(山城峰)’으로 나와 있다. 봉두산의 산줄기는...
조선시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 봉수는 국경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다른 지역의 변경에 알리기 위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외부로부터 적이 침입하였을 때에는 외적과의 격전지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는데, 평상시에는 1개...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봉두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봉수는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타 지역의 변경에 알리는 통신 수단이다. 또한 외부로부터 적이 침입하였을 때에는 외적과의 전투를 치르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금구읍지(金溝邑誌)』에 남아 있는 “남산에 불을 피웠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남산봉수’와 선암리 봉두산 봉수대와의 관계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일설...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단순한 향토사에 머물지 않고 지리·풍속·문학·예술·행정 등 향토에 관한 모든 사상(事象)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 의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김제 지역과 관련되어 있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