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공주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공주 지역 3·1독립만세운동의 첫 시도는 3월 7일 있었고, 3월 10일에는 독립만세운동을 위한 사전 모임이 있었으며, 3월 12일에는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독립만세운동은 3월 14일 유구에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3월 15일과 17일 양일에 거쳐 공주에서 일어났고, 4월 1일부터 5...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6년 여름 경기도 수원 지역에서는 수원고등농림학교 기숙사 내 한국인 학생모임인 조선인학생담화회를 중심으로 항일학생결사인 건아단(健兒團)이 조직되었다. 건아단은 당시 민족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농민의 계몽을 통한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목적한 학생결사였다. 건아단의 학생들은 먼저 농촌사회의 개발이 곧 독립운동의 기초가 된다고 보고 자...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범순은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고종 38)에 중추원 의관, 1911년에 충청남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범순은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0년 말 기준으로 205㏊의 토지를 소유한...
1931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충청남도 도청을 대전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한 운동. 공주 지역은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던 곳으로 호서 지역과 호남 지역의 교통과 상업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대전 지역을 통과하면서, 대전 지역이 삼남 교통의 요충지이며 물산 집산지로 변모하면서 신흥 상공업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더...
공주를 교육 도시라 부르는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학교가 많다거나 교육 인구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2007년 말 현재, 공주의 인구는 128,573명으로 도농 복합 지역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민족 항일기부터 불리어지기 시작한 교육 도시라는 공주의 지역 정체성은 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현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공주를 교육 도시라고 부르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