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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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群山內港- |
이칭/별칭 | 군산 내항 부잔교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석기 |
준공 시기/일시 | 1933년 -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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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8년 8월 6일 -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국가등록문화재 제719-1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국가등록문화재 재지정 |
최초 설립지 |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 -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
성격 | 산업 시설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등록문화재 |
[정의]
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하여 1930년대 군산 내항에 설치한 다리 형태의 구조물.
[개설]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군산 내항의 극심한 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대형 선박을 접안시켜 미곡 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말까지 진행된 제3차와 제4차 축항 공사에서 다리 형태의 구조물을 연결하여 설치한 시설물로 현재 그 일부가 군산 내항에 현존하고 있다.
[건립 경위]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대형 선박을 접안시켜 일본으로의 미곡 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1926년~1932년 사이에 진행된 제3차 축항 공사를 통해 3기가 설치되었다.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조선 총독이 1926년 기공식에 참석할 만큼 제3차 축항 공사는 군산을 통해 미곡 수탈을 확대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제3차 축항공사에서 완공된 뜬다리를 통해 썰물 때에도 3천 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었다. 또한, 1936년~1938년 사이에 진행된 제4차 축항 공사에서 뜬다리 1기를 추가 설치하여 3천 톤급 기선 6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변천]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1926년~1932년의 제3차 축항 공사와 1936년~1938년의 제4차 축항 공사를 통해 설치되었으나 부분적으로 멸실되었고, 현재는 제3차 축항 공사 과정에서 설치되었던 뜬다리 3기 각각의 일부가 현존하고 있다.
[구성]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육상에서 바다 쪽으로 연장된 2개의 다리 형태 구조물 각각을 중간에 4개의 원기둥 형태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에 연결하여 간만의 차에 의해 상하 변위가 가능하게 하고 끝 부분을 선박이 접안하는 콘크리트 부유체 위에 얹어 놓은 형태로 구성하였다.
[현황]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육상에서 해상으로 연결되는 다리 형태의 구조물 2개를 해상에서 콘크리트 부유체로 서로 연결하여 1기의 뜬다리를 구성하는 형식으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에 설치된 3기의 뜬다리 각각에서 다리 형태의 구조물 1개씩이 멸실되어 현재는 각 뜬다리의 일부인 총 3개의 다리 형태 구조물이 현존하고 있다. 2018년 8월 6일 국가등록문화재 제719-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