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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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竱 |
영어공식명칭 | Oh Jeon |
이칭/별칭 | 경보(敬甫),인주(麟洲)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엽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오전(吳竱)[1588∼1634]은 본관이 동복(同福)이다. 아버지는 우참찬 오억령(吳億齡)이며, 어머니는 홍담(洪曇)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할아버지는 사옹원 직장 오세현(吳世賢)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조 참판 오극권(吳克權)이며, 장인은 유근(柳根)이다. 형은 오익(吳翊), 사위는 지평(持平) 심황(沈榥)이고, 아들은 양자(養子)로 들인 오정위(吳挺緯)이다.
[활동 사항]
오전은 1603년(선조 36) 초시에 합격하고, 1609년(광해군 원년) 증광시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아버지 오억령(吳億齡)이 강화(江華)에서 처벌의 명을 기다리자 과거를 단념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의금부 도사와 빙고 별제(氷庫別提)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24년(인조 2) 식년시 병과에 합격하였고, 1625년 승정원 주서·세자 시강원의 설서(說書)·사서(司書) 등을 지냈다. 1631년 교리(校理)·부교리·지평(持平)을 역임하고 시독관(侍讀官)을 겸하였다. 1633년 황해도 암행어사가 되어 활약하였으나 병이 깊어져 다음해인 1634년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오전은 인품이 단아하고 글씨에 능하였는데 특히 해서(楷書)를 잘 썼다고 알려져 있다.
[묘소]
1634년 오전이 사망하자 황해도 배천(白川) 반월강(半月岡)에 장사지냈다. 이후 1654년 부인이 죽자 경기도 양주(楊州)의 아차산(峨嵯山) 구지강(龜止岡)[현 구리시 아천동]에 장사지냈고, 1655년 오전의 묘소를 열어 구지강의 부인 묘와 합장하였다. 오전의 묘지명은 이민구(李敏求)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