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유태형이 계양산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계양산(桂陽山)에 올라서」는 유태형(柳台衡)이 계양산에 올라 느낀 흥취를 기록한 한시이다. 계양산은 높이 395m로 고려시대에는 안남산으로 불렸다. 시흥천과 계양천이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산의 동남쪽에는 넓은 부평평야가 있고, 북쪽에는 김포평야가 전개된다. 현 주소는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이다. 계양산에 올라 느낀 호기...
-
조선 후기 유지익이 계양을 예찬하고, 우정과 연군을 노래하며 지은 한시. 「계양화시(桂陽畵詩)」는 1949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전 구로구의 일부 지역이었던 부평[현 인천광역시 계양구]에서 풍류를 즐기며 벗과의 우정과 임금에 대한 충성스런 마음을 노래한 한시이다. 유지익(柳之翊)[1760~ ?]은 조선 철종 때 사헌부지평을 지내고 부평에 낙향하여 많은 시를 남겼다. 「계양화시」의...
-
1872년(고종 9) 만들어진 경기도 부평부 지도. 흥선대원군은 병인앙요와 신미양요 이후 국방을 강화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각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고자 1871년(고종 8) 전국적으로 읍지를 편찬하였고, 이듬해에는 각 지방의 지도를 제작하였다. 「부평부지도(富平府地圖)」는 전국적인 지도 제작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경기도 지도 40장 가운데 하나이다. 한 장으로 이루어진 「...
-
조선 후기 문신 송국준이 민중의 곤궁한 삶을 소재로 지은 한시. 「부평촌속(富平村俗)」은 1949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전 구로구의 일부 지역이었던 부평군의 부평부사를 지낸 송국준(宋國準)[1588~1651]이 부사를 사임하고 인천에 낙향한 뒤에 다시 부평을 방문하여 지은 시이다. 그의 문집 『화방집(畵舫集)』에 실려 있다. 부역과 조세로 인해 가난하고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
-
1797년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태평성국을 소재로 지은 한시. 「부평행행시(富平行幸詩)」는 1797년(정조 21)에 정조(正祖)[1752~1800]가 김포의 장릉을 참배하고 계양산 경명현을 넘어서 부평 땅에 행차하였을 때 태평성국을 이루려는 자신의 의지를 밝힌 시이다. 부평은 1949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전 구로구의 일부지역이었다. 7언 절구의 금체시(今體詩)이다. 계양산색...
-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정려각 소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새 잡다 소실된 정려각 설화」는 지극한 효행을 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표창하기 위하여 세워준 파평윤씨 집안의 상징인 정려각이 불에 타서 사라졌다는 정려각소실담이다. 정려각이란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충신, 열녀, 효자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사는 마을 입구에 세웠던...
-
1872년(고종 9) 만들어진 경기도 시흥현 지도. 흥선대원군은 병인앙요와 신미양요 이후 국방을 강화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각 지방의 실정을 파악하고자 1871년(고종 8) 전국적으로 읍지를 편찬하였고, 이듬해에는 각 지방의 지도를 제작하였다. 「시흥현지도(始興縣地圖)」는 전국적인 지도 제작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경기도 지도 40장 가운데 하나이다. 한 장으로 이루어진 「...
-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윤효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엄동에 잉어를 잡아 효도한 오류동의 윤효자」는 한 겨울에 잉어를 잡아 노모를 봉양했다는 윤씨 가문의 효행담이다. 구로구 오류동은 옛 수주읍 소재지로 부평도호부 때는 황어면 지역이었다. 이 마을에는 오리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오리울, 오릿골, 오류올, 오류동이라고도 했다. 오리울이 생긴 유래를 살펴보면, 1595년(선조...
-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인조 부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조 부왕의 산역과 나무서리」는 조선 제16대 왕 인조(仁祖)의 부왕인 원종(元宗)[사후 추대]의 능에 대한 풍수지리담이자 나무서리에 대한 지명유래담이다. 이 설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조선시대에는 구로가 부평부에 속해 있었다. 장릉(章陵)은 사적 제202호로, 인조의 부왕인 원종과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능이다....
-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인조 부왕의 장릉 이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장릉 조성시 북잡이 지관 이야기」는 인조대왕의 부왕 장릉을 국장으로 치를 때에 북재비면서 지관인 박씨를 몰라 본 국장도감 때문에 명당을 얻지 못하고, 박씨를 인지한 사령 김씨와 이씨는 명당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풍수지리담이다. 이 설화는 옛날 구로가 속해 있던 부평부의 계양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선...
-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걸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포동에 얽힌 설화」는 미곡 증산을 위한 둑 쌓기가 실패를 거듭하여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스님이 산사람을 넣어 둑을 쌓으면 성공한다고 하여 원님의 기지로 서울 금부도사(禁府都事)에게 사형 선고 내린 자를 이곳에서 사형을 집행케 하여 둑을 쌓는데 성공했다는 토건유래담이다. 과거 구로지역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던 시흥시 포동...
-
1800년 이전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에 수록된 경기도 금천현 지도. 『광여도(廣輿圖)』의 편찬 하한 시점은 1800년이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전국 군현 지도집은 이 밖에도 『해동지도(海東地圖)』, 『여지도(輿地圖)』, 『여지편람』 등이 있다. 『광여도』 전체의 구성은 『해동지도』와 비슷하다. 세계지도, 중국도·일본도 등의 외국지도, 「요계관방지도」, 「조선지도」...
-
1800년 이전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에 수록된 경기도 부평부 지도. 영조 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집 편찬의 전통은 19세기에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영조 대 말부터 기호식 지도집의 편찬 흐름이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합리적인 윤곽을 가진 기호식 지도집을 편찬하여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관찬 군현 지도집은 더 이상 정책 자...
-
18세기 중엽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여지도』에 수록된 경기도 부평부 지도. 『여지도(輿地圖)』는 채색 필사본으로 모두 6책으로 구성되어 있는 군현 지도집으로, 2008년 보물 제1592호로 지정되었다. 제1책에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와 「성경여지전도(盛京輿地全圖)」, 제6책에 「조선여진양국국계도(朝鮮女眞兩國國界圖)」가 첨부되어 있다. 지도 364장, 주기(註記) 3...
-
1760~1770년 사이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조선지도』에 수록된 경기도 금천 지역 지도. 1760~1770년대 동일한 기준으로 전국의 군현 지도인 『조선지도』를 제작할 때 만들어진 지도로 경기도 군현 지도 33장 가운데 하나이다. 한 장으로 이루어진 『조선지도』「금천」은 20리 방안이 가로와 세로에 각각 세 개씩 있으며, 총 아홉 개의 방안에 그려졌다. 지도 오른쪽...
-
1760~1770년 사이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조선지도』에 수록된 경기도 부평 지역 지도. 1760~1770년대 동일한 기준으로 전국의 군현 지도인 『조선지도』를 제작할 때 만들어진 지도로 경기도 군현 지도 33장 가운데 하나이다. 한 장으로 이루어진 『조선지도』 「부평」은 20리 방안이 가로에 네 개, 세로에 세 개이며 총 12개의 방안에 그려졌다. 지도 오른쪽 상단에...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관. 본관은 순천(順天). 초명은 명휘(命徽), 자는 군석(君錫). 강명길(康命吉)은 1768년(영조 44) 잡과 시험인 식년의과(式年醫科)에 급제하고, 다음 해 내의원의관이 되었다. 정조가 세손으로 있을 때 총애를 받아 의약에 대한 자문에 응했으며, 1794년(정조 18) 내의원수의(內醫院首醫)가 되었다. 수의로 봉직하면서 양주목사와 지중추...
-
조선 후기 금천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아버지는 이조참의를 지낸 강찬(姜燦)으로, 큰아버지 강순(姜焞)에게 입양되었다.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인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의 아버지이다. 강석기(姜碩期)[1580~1643]는 김장생(金長生)의 제자로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
조선 후기 시흥현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능성(陵城). 자는 공휴(公休). 아버지는 구윤빈(具允斌)이다. 구강(具康)은 1800년(정조 24) 별시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祖實錄)』에는 문과 급제 한 해 전인 1799년(정조 23) 10월 19일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중 재생(齋生)의 제술(製述)에서 수석을 했다는 내용도 보인다. 순조 대 함경도에 암행...
-
조선 후기 구로 출신인 선조의 부마.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홍보(弘輔). 예조판서를 역임한 권협(權悏)의 손자로, 아버지는 우의정을 역임한 권신중(權信中)이다. 어머니 이씨(李氏)는 세종의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7세손으로, 사평(司評) 이정필(李廷弼)의 딸이다. 부인은 선조와 정빈민씨(靜嬪閔氏) 소생의 정선옹주(貞善翁主)이다. 권대임(權大任)은 정선옹주와...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거(仲車), 호는 소천(蘇川)·돈간재(敦艮齋)·용문(龍門). 예조판서를 역임한 권협(權悏)의 손자로, 아버지는 진사 권위중(權偉中)이고, 어머니는 신종사(申宗泗)의 딸이다. 권대재(權大載)는 1646년(인조 24) 사마시, 1653년(효종 4)에 별시문과 을과, 1658년(효종 9) 문과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
-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권신중의 묘소. 권신중(權信中)은 가선대부(嘉善大夫) 권협(權悏)의 아들로 자(字)는 군집(君執)이다. 1575년(선조 8)에 태어나 1633년(인조 11)에 사망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풍덕군수를 지냈다. 아들 권대임(權大任)은 선조의 7녀 정선옹주(貞善翁主)와 혼인하였다. 광덕로를 따라 가다보면 서서울...
-
조선 후기 안동권씨 구로 지역 입향조.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성(思省), 호는 석당(石塘).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권상(權常)이고, 어머니는 안정나씨(安定羅氏)로 어모장군(禦侮將軍) 나운걸(羅云傑)의 딸이다. 권협(權悏)은 24세 때 정시에서 장원을 하고, 25세 때 알성시에서 4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과 춘추관을 거쳐 승정원에 들어갔다. 성균관의 전적(典籍)을 비롯하여...
-
조선 후기 부평도호부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달부(達夫). 아버지는 김상겸(金尙謙)이다. 김민선(金敏善)[1542~1592]은 1542년(중종 37) 부평[현 서울특별시 구로구를 포함한 인천광역시 북부 및 북동부, 경기도 부천·시흥 일대] 지역에서 태어났다. 1572년(선조 5)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집의(執義)가 되었다. 1581년(선조...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사정(士精), 호는 도계(陶溪)·손곡(損谷).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김시환(金始煥)이다. 김상성(金尙星)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다. 13세 때 「금수정기(金水亭記)」란 글을 지어 신동이란 평을 들었다. 1723년(경종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곧이어 시행된 정시 갑과(甲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서가...
-
조선 후기 부평부사에 임명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여백(汝伯). 아버지는 영돈령부사를 역임한 김우명(金佑明)이다.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동생이다. 김석연(金錫衍)은 1680년(숙종 6)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아가 예빈시정(禮賓寺正)과 전설(典說), 별검(別檢) 등을 역임하였다. 1686년(숙종 12) 12월 지금의 구로 지역을 관장하는 부평부사로 임명되었...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앙(子昻), 호는 몽촌(夢村)·석릉(石陵). 증조할아버지는 김희수(金希壽)이고, 할아버지는 김로(金魯)이다. 아버지는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지낸 김홍도(金弘度)이며, 어머니는 이계백(李繼伯)의 딸이다. 형은 김첨(金瞻)이고,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창녕성씨(昌寧成氏)이다. 김수(金睟)는 27세 때인 1573년(선조 6) 알성시 병과에...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정(以定). 아버지는 김육(金堉)이다. 딸이 현종의 비(妃) 명성왕후(明聖王后)로 책봉되었다. 김우명(金佑明)은 1642년(인조 20) 임오식년시(壬午式年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후 강릉참봉과 세마(洗馬) 등을 역임하였으며, 1654년(효종 5) 12월부터 1656년 8월까지 지금의 구로 지역을 포괄한 부평부...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사직(士直), 호는 검재(儉齋). 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김징(金澄)이고, 어머니는 이의길(李義吉)의 딸이다. 김유(金楺)는 박세채(朴世采)와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일찍이 학문에 조예가 깊어 박세채가 그의 후계자로 지목하였으며, 송시열도 그의 재주를 중히 여겼다. 1674년(현종 15)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이경(而敬). 증조할아버지는 김희수(金熙壽)이고, 할아버지는 김의숙(金義叔)이다. 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김건(金鍵)이며, 어머니는 조숙관(趙叔瓘)의 딸이다. 김정목(金廷睦)은 24세 때인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응시하여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3년(선조 1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호조정랑...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두남(金斗南)이다. 김준용(金俊龍)[1586~1642]은 1607년(선조 41)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주부, 인동도호부사, 영주군수 등을 거쳤다.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재직하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사들을 이끌고 광교산에서 청나라 병사와 격전 끝에 청 태종의 사위인 백양고라(白羊高羅)의 목을 베...
-
조선 후기 구로 지역 출신의 문신. 남연(南淵)은 1651년(효종 2) 구로 지역에서 출생하여 1728년(영조 4) 사망하였다. 본관은 의령(宜寧). 충간공파(忠簡公派)의 15세손이다. 부평도호부사(富平都護府使)를 지낸 충장공(忠壯公) 남이흥(南以興)의 손자, 남두추(南斗樞)의 아들이며, 남징(南徵)의 동생이다. 부평도호부사를 지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형 남징과 함께 부천 지역으로...
-
조선 후기 구로 지역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욱초(旭初). 아버지는 통어사(統禦使)를 지낸 민진익(閔辰益)이고, 어머니는 찰방(察訪)을 지낸 유천기(柳天機)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 김해수(金海壽)의 딸이었으나, 자식이 없자 안동김씨 안흥군(安興君) 김욱(金昱)의 딸과 재혼하여 민사로(閔師魯) 등 4남 1녀를 두었다. 민승(閔昇)은 기개가 있고,...
-
조선 후기 부평도호부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언휘(彦暉),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민만(閔晩)이고,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이다.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로, 민윤창(閔允昌)·민경창(閔景昌)·민회창(閔會昌) 등 3남 1녀를 두었다. 민이승(閔以升)은 부평[현 서울특별시 구로구를 포함한 인천광역시 북부 및 북동부, 경기도 부천 일대]에서 태어나...
-
조선 후기 구로 지역 출신의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자수(子秀)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손자인 취성군(鷲城君) 이영(李潁)의 딸과 혼인한 박철정(朴鐵貞)의 증손자이다. 박철정은 연산군 때 부평으로 내려와 죽산박씨(竹山朴氏)의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박기남(朴奇男)은 1559년(명종 14) 박문보(朴文輔)의 큰아들로 출생하였다. 박기남은 임진왜란 때 경상도에서 왜적...
-
조선 후기 시흥현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룡(子龍), 호는 기재(寄齋)·오창(梧窓)·봉주(鳳洲).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박응복(朴應福)이다. 박동량(朴東亮)[1569~1635]은 1569년 시흥[현 서울특별시 구로구·금천구 및 경기도 시흥 일대] 지역에서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여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로 등용되...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진(子眞).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박응복(朴應福)이다. 박동망(朴東望)은 유조인(柳祖認)의 문인으로, 1594년(선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대교·봉교 등을 역임하고 지평이 되었다. 이어 평산부사·신천군수·강화부사 등을 지내고, 성균관직강으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수(子粹), 호는 서포(西浦). 할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박소(朴紹)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역임한 박응천(朴應川)이다. 금주군(錦州君) 박정(朴炡)이 아들이다. 박동선(朴東善)[1562~1640]은 28세 때인 1589년(선조 22)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도(汝道).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박호(朴濠)이고, 어머니는 신흠(申欽)의 딸이다. 박세모(朴世模)[1610~1667]는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45년(인조 23)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세마(洗馬)를 지내고, 1654년(효종 5) 춘당대정시에 갑과로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화천당(花遷堂). 박춘무(朴春茂)는 찰방(察訪)을 거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사(倡義使)가 되어 의병을 일으키고, 조헌(趙憲)과 함께 호서 지방을 지키는 데 큰 활약을 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는 임천군수와 인천부사를 역임했으며, 1598년(선조 31)에는 지금의...
-
조선 후기 부평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구(景久), 호는 회와(悔窩)·일우(一愚)·송담(松潭). 아버지는 부승지를 지낸 박세성(朴世城)이다. 박태원(朴泰遠)은 1689년(숙종 15) 증광시에서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다. 같은 해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이를 적극 반대하였다. 1697년(숙종 23) 휘릉참봉을 거쳐 1702년(...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량(仲良), 호는 인재(忍齋). 증조할아버지는 박원(朴垣)이고, 할아버지는 박세기(朴世基)이다. 아버지는 금창부위(錦昌副尉)를 역임한 박태정(朴泰定)이며, 어머니는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딸인 경녕궁주(慶寧宮主)이다. 박필명(朴弼明)은 1697년(숙종 23)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의 검열과 봉교를 역임하...
-
조선 후기 시흥현으로 낙향한 문인.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순보(純甫), 호는 오헌(傲軒). 할아버지는 백검(白儉)이고, 아버지는 가선대부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백시채(白時采)이다. 아들은 백사민(白師敏)이다. 백상형(白尙瑩)은 서울에서 살다가 시흥현[현 서울특별시 구로구·금천구 및 경기도 시흥 일대]에 정착하였다. 이후 면포정(面圃亭)이란 정자를 지은 뒤 그 앞에 작은 연못 2개...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하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지(誠之), 호는 오정(梧亭). 할아버지는 변희전(卞希詮)이고, 아버지는 변건원(卞乾元)이며, 어머니는 김침(金琛)의 딸이다. 변삼근(卞三近)[1579~1648]은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종사랑·통사랑·무공랑·선무랑의 관직을 거쳐, 1613년(광해군 5)에는 정6품인 승훈랑이...
-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천목씨 문중의 묘역. 사천목씨 목철경[1440~1504]은 1471년(성종 2) 사마시, 1479년(성종 10)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주서, 설서 등을 역임하고 지괴산군사를 지내다 연산군의 폭정 때 부평 상오정리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구로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북당골 방향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그 입구 궁동 산6번지에 사천목씨...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행옥(行玉). 아버지는 한성부서윤을 지낸 한종적(韓宗積)이다. 서명형(徐命珩)은 1723년(경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가 되고, 1730년(영조 6) 사간원정언으로 재직하던 중 과격한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다. 1734년(영조 10) 사간원헌납에 다시 등용되었고, 그 해 5...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급(聖及)이다. 선조 때 유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성혼(成渾)의 8세손이다. 성도묵(成道默)의 출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804년(순조 4)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부터 각 주·군의 수령으로 치적을 올렸다. 1830년(순조 30) 7월 16일부터 지금의 구로 지역을 포괄하는 부평부사를 지냈다. 후에 관직이 돈령부도정...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평중(平仲). 아버지는 진사 송희득(宋希得)이다. 송국준(宋國準)은 1624년(인조 2) 생원이 되고,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있다가 예조정랑겸춘추관기주관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 윤집(尹鏶), 이영현(李英顯)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 뒤 병조정랑과 종...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신백(愼伯), 호는 정곡(靜谷). 할아버지는 송세인(宋世仁)이고,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송초(宋礎)이다. 송극인(宋克訒)은 1602년(선조 3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서 일하다가 예문관으로 옮겨 검열·봉교·대교를 지냈다. 이후 형조정랑을 거쳐 성균관전적으로 재직하였다. 광해군이 즉위한 뒤 사헌부집의·사간원...
-
조선 후기 금천현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입지(立之). 아버지는 송백순(宋伯純)으로, 임진왜란 당시 검지산(黔指山)에서 전사하였다. 송립(宋岦)은 1616년(광해군 8)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반란군 편에서 휘하 군사를 이끌고 관군에 투항하였다. 이후 보성군수로 임명되었고, 1636년(인조 1...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숙가(叔嘉), 호는 정재(靜齋). 할아버지는 목사 안여경(安汝敬)이고, 아버지는 선조 때의 호성공신(扈聖功臣) 안황(安滉)이며, 어머니는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岹)의 딸이다. 안응형(安應亨)[1578~?]은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6년(선조 39) 식년 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그...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의 열녀. 어명규(魚命圭)의 처 이씨는 남편이 창질(瘡疾)이 나 모든 약이 효험이 없자, 사람 고기를 쓰면 좋다는 소리를 듣고 몰래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구워 먹였다. 이에 남편의 병이 한결 좋아졌는데,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무슨 고기이기에 맛이 이리 좋으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1840년(헌종 7)에 정려가 세워졌다....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중숙(重叔), 호는 창랑(滄浪).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엄황(嚴愰)이다. 엄정구(嚴鼎耇)[1605~1670]는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에 보직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세자시강원설서로 남한산성에서 왕을 호종(扈從)하였다. 이듬해 사헌부지평이 되었...
-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경지(敬止), 호는 만회(晩悔). 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엄성구(嚴聖耉)이다. 엄집(嚴緝)[1635~1710]은 1673년(현종 14)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78년(숙종 4) 사간원정언이 되었고, 홍문관부교리·사간원사간·사헌부집의·승정원승지 등 주로 삼사(三司)의 청요직(淸要職)을 지냈다. 1695년(숙종...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빈우(賓羽), 호는 농재(聾齋). 아버지는 종친부전부령(宗親府典簿令) 오사겸(吳士謙)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한성서윤 이시중(李時中)의 딸이다. 오빈(吳䎙)[1602~1685]은 1632년(인조 10) 알성시(謁聖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도원찰방에 제수된 뒤 원수종사관(元帥從事官), 평안도도사, 호조·공조의 정랑을 거쳐...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여완(汝完), 호는 죽남(竹南).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역임한 오백령(吳百齡)이다. 오준(吳竣)[1587~1666]은 1618년(광해군 10)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를 거쳐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세자시강원필선·홍문관수찬 등을 지냈다. 병자호란 뒤인 1639년(인조 17) 한성부판윤으로 주청부사(奏請副使)가 되...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원주(原州). 원산군(原山君) 원황(元滉)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원계검(元繼儉)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을 지낸 참찬 원호영(元虎英)이다. 아들로 원승길(元升吉)과 원이길 등이 있다. 원성모(元成模)[1569~1636]는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여 선교랑 거산도찰방이 되어 벼슬길에 나서 현령에 이르렀...
-
조선 후기 구로 출신의 문신이자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혜풍(惠風)·혜보(惠甫), 호는 영재(泠齋)·영암(泠庵)·가상루(歌商樓)·고운당(古芸堂)·고운거사(古芸居士)·은휘당(恩暉堂).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유자신(柳自新)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유춘(柳瑃)이다. 유득공(柳得恭)[1749~1807]은 1773년(영조 49) 생원시에, 이듬해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779년...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지언(止彦). 아버지는 공조판서 유잠(柳潛)이며, 어머니는 증호조참판 정승렴(鄭承廉)의 딸이다. 광해군의 장인이다. 아들로 유희분(柳希奮), 유희발(柳希發), 유희량(柳希亮) 등을 두었다. 유자신(柳自新)[1541~1612]은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 태릉참봉을 거쳐 돈령부직장(敦寧府直長)·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평강현감...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백규(伯圭), 호는 추담(楸潭)·운계(雲溪). 아버지는 서윤 유여해(兪汝楷)이다. 유창(兪瑒)[1614~1692]은 1635년(인조 13)에 생원이 된 뒤 1650년(효종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53년 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이듬해에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655년(효종 6)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관. 유후성(柳後聖)은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기록에는 1642년(인조 20) 7월부터 12월까지 구로 지역을 관할하는 부평부사를 지낸 것으로 나타난다. 이어 1646년(인조 24)부터 3년간 왕실의 전의(典醫)를 지냈고, 1657년(효종 8)에는 고양군수에 임명되었다. 1659년 효종이 즉위 10년 만에 승하하자, 당...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택중(擇中). 아버지는 사평(司評) 윤원(尹轅)이다. 윤명선(尹明善)[1547~1608]은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580년(선조 13)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의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좌랑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해도도사로서 유근(柳根)·윤자신(尹自...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린(叔麟), 호는 동산(東山). 증조할아버지는 윤엄(尹儼)이고, 할아버지는 윤민헌(尹民獻)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윤강(尹絳)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박천구(朴天球)의 딸이며,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형은 좌의정을 지낸 윤지선(尹趾善)이 있다. 윤지완(尹趾完)[1635~1718]은 1662년(현종 3) 형과 함께 증광시...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릉(子陵), 호는 현기(玄磯). 아버지는 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 이호민(李好閔)이다. 이경엄(李景嚴)[1579~1652]은 1610년(광해군 2) 현감으로 있으면서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는 문제에 대하여 중앙 및 지방 관리들에게 의견을 수렴하였는데, 현감...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국필(國弼), 호는 시은(市隱). 할아버지는 종친의 후예인 봉래수(蓬萊守) 이형윤(李炯胤)이고, 아버지는 이무(李堥)이며, 어머니는 공조판서를 역임한 최내길(崔來吉)의 딸이다. 이기익(李箕翊)[1654~1739]은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694년(숙종 20) 성균관 유생을 이...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도원(道源). 오늘날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에서 태어났다. 이기조(李基朝)[1803~?]는 옛 구로 지역인 부평부의 부사를 지내면서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별군관으로 프랑스 함대와 교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1866년(고종 3) 중국 천진에 주둔하던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면서 병인양요가 일...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입부(立夫). 종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진(李眞)이다. 이순신(李純信)[1554~1611]은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한 뒤 온성판관·의주판관 등을 거쳐 일시 귀가하였다가 혜산진첨절제사(惠山鎭僉節制使)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방답진첨절제사(防踏鎭僉節制使)로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막하에서 중...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이후(而厚). 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이윤성(李允成)이며, 어머니는 상주김씨로 부사직 김명담(金命聃)의 딸이다. 이여온(李汝溫)[1547~1616]은 임진왜란 중 의성현령으로 재직하면서 군량미 조달을 잘하였다 하여 1593년(선조 26) 포상을 받고 면천군수가 되었다. 이후 청주판관·통진현감을 거쳐 지금의 구로 지역을...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십탄(十灘). 십탄이란 호는 경기도 가평에 머무를 때 근처에 12탄(灘)[개울]이 있어 붙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사복시첨정을 지낸 이성조(李成朝)이며, 어머니는 증찬성(贈贊成) 조상정(趙相靜)의 딸이다. 이우신(李雨臣)[1670~1744]은 어려서부터 이희조(李喜朝)에게 수학하였다. 부제학을 지낸 이단상(李端相)의...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가 고조할아버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수원군(秀原君) 이정은(李貞恩)이며, 할아버지는 청기군(靑杞君) 이표(李彪)이고, 아버지는 함천군(咸川君) 이억재(李億載)이다.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사헌부감찰을 지낸 정치(鄭輜)의 딸이다. 이원익(李元翼)[1547~1634]...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학(景學). 아버지는 이익성(李益誠)이다. 이유하(李遊夏)[1767~?]는 오늘날 구로구의 구로동·가리봉동·신도림동을 관할하는 시흥현에 살던 중 1795년(정조 19) 별시(別試)에 병과(丙科)[성적의 우열에 따라 나눈 등급 중 세 번째 등급]로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 홍문관부교리, 세자시강원필선 등을 역임하였다...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문약(文若). 아버지는 이종억(李宗億)이다. 이의익(李宜翼)[1794~?]은 기록에 1839년(헌종 5) 6월부터 구로 지역을 관할하는 부평부사에 임명된 것으로 나타나며, 1841년(헌종 7) 음직으로 여주목사에 제수되었다. 1848년(헌종 14) 증광 별시 문과에 응시하여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85...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운장(雲長), 호는 남곡(南谷). 아버지는 예조참판을 지낸 이경헌(李景憲)이며, 어머니는 윤응빙(尹應聘)의 딸이다. 이정(李程)[1618~1671]은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50년(효종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57년(효종 8) 사간원정언, 이듬해 사헌부지평·세자시강원사서를...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효자. 이진욱(李震郁)[1615~1688]의 본관은 전주. 자는 문권(文權)이다. 효령군파 8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채(李採)이다.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을 다하여 아버지가 병이 들자 잠시도 집을 떠나지 않고 약을 달여 올렸고, 밤을 새우고 지키며 의대(衣帶)를 10년 동안 풀지 않았다. 병환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의숙(宜叔), 호는 진암(晉庵). 증조할아버지는 이일상(李一相)이며, 할아버지는 이성조(李成朝)이고, 아버지는 옥천군수를 지낸 이주신(李舟臣)이다. 어머니는 김만기(金萬基)의 딸이다. 이천보(李天輔)[1698~1761]는 생원시에 합격하여 내시교관으로 있다가, 1739년(영조 15)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0년...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낙보(樂甫), 호는 삼수헌(三秀軒). 아버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며, 어머니는 우의정을 지낸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이하조(李賀朝)[1664~1700]는 1682년(숙종 8) 사마시에 합격하였지만, 문과시(文科試)를 단념하고 경사(經史)를 탐독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 되어 성리학에 몰두하였다. 삼수...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증조할아버지는 이소(李沼)이고, 할아버지는 이준(李浚)이며,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이덕수(李德洙)이다. 어머니는 조씨이다. 이홍연(李弘淵)[1604~1683]은 조희일(趙希逸)과 정홍명(鄭弘溟), 기옹(畸翁)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36년(인조 14) 세자익위사(世子翊衛...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중진(仲進). 증조할아버지는 이천규(李天圭)이며, 할아버지는 이찬원(李纘元)이고, 아버지는 이경화(李景華)이다. 어머니는 최주명(崔柱溟)의 딸이다. 부인은 박수검(朴守儉)의 딸이다. 이휘진(李彙晉)[1680~?]은 1708년(숙종 3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19년(숙종 45) 사헌부장령을 지냈으며, 1721년(경종 1)...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 아버지는 판서 장운익(張雲翼)이며, 어머니는 판윤 박숭원(朴崇元)의 딸이다.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며, 효종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다. 장유(張維)[1587~1638]는 1605년(선조 38)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위도(衛道), 호는 송죽당(松竹堂). 할아버지는 유학(幼學) 정경륜(鄭景倫)이며, 아버지는 첨정을 지낸 정응탁(鄭應鐸)이다.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었으며, 1611년(광해군 3) 별시(別試)에서 갑과(甲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과 이조좌랑(吏曹佐郞)을 거쳐 홍문관교리(弘文館敎理)를...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야(白也), 호는 악남(岳南). 아버지는 이효준(李孝俊)이다. 1642년(인조 20) 사마시(司馬試)에 생원으로 합격하였고, 이어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학정(學正)과 정언(正言)을 거쳐 지평(持平)이 되어 1654년(효종 5)에 인조의 후궁인 조숙원(趙淑媛) 문제를 논하다가 영산(靈...
-
조선 중기 구로 지역에 거주한 옹주.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와 정빈 여흥민씨의 일곱 번째 딸로 1594년( 선조 27)에 태어났다. 길창군(吉昌君) 충정공(忠貞公) 권협(權悏)의 손자이자, 길흥군(吉興君) 권신중(權信中)의 아들인 권대임(權大任)[1595~1645]과 결혼하여 지금의 구로구 궁동에서 거주하였다. 스물 한 살의 젊은 나이로 1614년(광해군 6...
-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선옹주가 출가했던 안동권씨의 묘역. 정선옹주(貞善翁主)는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의 일곱 번째 딸로써 정빈(貞嬪) 민씨(閔氏)의 소생이며 안동권씨 권대임(權大任)과 결혼하여 지금의 구로구 궁동 67번지 일대에서 거주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이 지역의 동명이 ‘궁동’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정선옹주를 비롯하여 그의 남편 권대임 등 안동권씨가 매...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숙하(叔夏), 호는 반주(盤州). 아버지는 광해군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행배천군수[行白川郡守]를 지낸 정유(鄭維)이다. 1657년(효종 8) 시행된 식년시(式年試)에 진사(進士)로 합격하였다. 1658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시작으로 연원찰방(連源察訪)을 비롯한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형조좌랑을 역임한 뒤 파직되었...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고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정임선(鄭任先), 증조할아버지는 정석증(鄭錫曾), 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한 정계순(鄭啓淳)이다. 아버지는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역임한 정동만(鄭東晩)이다. 어머니는 용인이씨로 예조참판을 역임한 이숭우(李崇祐)의 딸이다. 아내는 강릉김씨로 예조판서를 지낸 김계락(金啓...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상보(尙甫). 조광조(趙光祖)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군수 조송년(趙松年)이다. 1666년(현종 7)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때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전에는 향임(鄕任)인 직장(直長) 일을 오래 맡아 지방 행정관을 보좌하기도 하였다. 남원부사와 수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는데, 현직에 있으면서 번잡하고...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흡여(潝如), 아버지는 교리(敎理) 조수익(趙守翼)이다. 광해군 말엽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23년 김류(金瑬)와 이귀(李貴) 등이 반정을 주도하자, 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함께 이천(伊川)에서 군병을 모아 공을 세웠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것을 기념하여 시행된 등극경과(登極慶科)에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성서(聖瑞). 증조할아버지는 최륜(崔崙), 할아버지는 최기화(崔基華), 외할아버지는 이우래(李宇來)이다. 아버지는 최익운(崔翼運)이다. 부인은 윤지선(尹之宣)의 딸이다. 최명린은 1744년(영조 20) 문과에 합격하였다. 1765년 삼월 초사흗날에 수석을 차지한 최명린에게 당시 영조 임금이 직접 전시(殿試)에 응하도록 하여 을유 식년시 병과에...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청주한씨를 이끈 인물. 한경홍은 부천 출신으로, 원래 부천시 원미동 일대에 터를 잡고 살던 청주한씨 일부가 1700년대 중엽 구로구 천왕동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을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한경홍이다. 지금 천왕동에 있는 300년 가까운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는 한경홍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한여직(韓汝溭)[1575~1638]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안(仲安), 호는 십주(十洲)이다. 아버지는 청천군(淸川君) 한준(韓準)이고, 어머니는 중추부도사(中樞府都事)를 지낸 최정수(崔貞秀)의 딸이다. 1604년(선조 37) 생원으로 유릉참봉(裕陵參奉)에 제수되었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 갑과에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설서·세...
-
과거 구로구에 속했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조선시대 행궁 터. 정조는 즉위 후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이름 지었다. 이는 아버지 장헌세자를 추모하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신원(伸寃)의 목적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정조는 자주 능행을 다녔는데 능행의 노선도 이러한 정치적 이유에서 바...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중(士中), 호는 유암(流巖). 아버지는 예조참의 홍주국(洪柱國)이다. 1666년(현종 7)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82년(숙종 8) 30세 때 음보(蔭補)로 벼슬길에 올랐다.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및 공조의 좌랑과 정랑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또한 사옹원(司饔院)·...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유(子由), 호는 청회(聽檜). 아버지는 동지돈령부사 홍희(洪喜)이며, 어머니는 능안부원군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아버지 홍희가 인조의 외조부인 구사맹(具思孟)의 사위로, 인조와는 이종사촌 형제간이다. 광해군이 이복동생인 능창군(綾昌君)을 역모로 처형하자 능창군의 형인 능양군(綾陽君)[뒤의 인조]이 화를 입을까...
-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이직(而直), 호는 몽죽(夢竹). 아버지는 대호군 황대임(黃大任)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호조·병조·형조 정랑을 지냈다. 1591년에는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92년 왜군이 침략해 왔을 때는 경기도순찰사 권징(權徵)의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