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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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陽-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선봉규 |
설립 시기/일시 | 1960년 9월 5일 - 삼양타이어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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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삼양타이어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
현 소재지 | 금호타이어 -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 658[소촌동 555] |
성격 | 기업체 |
설립자 | 박인천|박동복|박상구 |
[정의]
1960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있었던 타이어 제조업체.
[개설]
삼양타이어는 1960년 9월에 설립된 금호타이어의 전신이다. 삼양타이어 공동 창업자인 박인천, 박상구 사장이 광주여객을 운영하며 심각한 타이어 구입난을 겪게 되자, 원활한 타이어 공급을 위해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기술 개발 및 혁신을 통해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으며, 타이어 산업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984년 금호실업과 합병되며 금호로 개칭되었고, 2003년 이후로는 금호타이어로 맥이 이어지고 있다.
[설립 목적]
광주여객 운영 당시 타이어 공급 업체이던 흥아타이어 및 동신화학의 절대적 공급 부족과 품질 불량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1960년 9월에 설립되었고, 1965년 태국에 첫 해외 수출을 개시하였다. 1966년 KS 마크를 획득하고 1968년 삼양타이어공업으로 개칭하였다. 1970년에는 한자명 삼양(三洋)을 삼양(三陽)으로 변경하고, 1971년 송정공장을 세웠다. 1973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전남제사를 합병하였다. 1974년 광주 신공장을 세우고, 이듬해인 1975년 국내 타이어 회사 중 최초로 항공기 타이어를 개발하였다. 1976년 제사사업부를 매각하고, 1978년 삼양타이어를 거쳐 '금호타이어'로 개칭했다가, 1980년 다시 삼양타이어로 개칭하였다. 1981년 광주 중앙연구소를 세웠고, 1984년 금호실업에 합병된 이후로 브랜드명이 '금호타이어'로 개칭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승용차 타이어, 트럭버스 타이어, 항공기 타이어 등의 개발, 생산, 판매와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1961년 4월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으나 당시의 생산 설비가 수동식이어서 트럭 버스 타이어의 1일 생산량은 5개 규격 20본에 불과하였다. 판매망은 광주특약점 2개를 비롯해 전라남도, 경상남도, 대전, 제주 특약점, 천안 직매소 등을 갖추었다. 1962년 설비 확장을 통해 1일 7개 규격 50본을 생산했고, 판매망도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 특약점을 개설하고, 26개의 거래처를 확보하는 등 크게 신장하였다. 그러나 기술 부족으로 인한 품질 불량으로 연간 약 500본의 사고 타이어가 발생함에 따라 186만 원의 보상을 해주게 되었다.
1963년 기계 설비를 확충하고 타이어 제조 기술도 향상하여 1일 생산량을 13개 규격으로 늘리는 한편, 사고 타이어는 약 240본으로 감소시켰다. 1964년 6000여 만 원 상당의 기계 설비를 확충하여 1일 생산 능력이 250본으로 증가했고, 제품도 추가로 6개 규격을 새로 개발하였다. 1975년에는 항공기용 타이어 및 레이디얼(Radial) 타이어를 개발했으며, 1987년 수출용 차에 국산 타이어를 장착할 수 있는 인증을 획득하였다. 1999년 펑크가 나도 시속 80㎞ 속도로 주행할 수 있는 런플랫 타이어(Run-flat)를 국내 최초, 세계 네 번째로 개발하였다.
[현황]
1981년 공동 설립자인 박상구 회장은 삼양타이어의 지분을 25억 원에 금호로 넘겼다. 2003년 6월 30일 금호산업의 타이어 사업 부문을 분사해 신설 법인인 금호타이어가 설립되었다. 금호타이어는 8개 국가에 8개 판매 법인, 4개 국가에 8개 공장[광주, 곡성, 평택, 남경, 천진, 장춘, 베트남, 조지아], 12개 해외 지사 및 지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