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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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橋 |
영어공식명칭 | Geumgyo Brid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동구 금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현명 |
준공 시기/일시 | 1910년대 - 금교 준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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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설|폐설 시기/일시 | 1963~1965년 - 금교 재가설 |
전구간 | 금교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동구 금동 |
해당 지역 경유 구간 | 금교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동구 금동 |
성격 | 교량 |
길이 | 56m |
차선 | 2차선[왕복] |
폭 | 12m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과 동구 금동을 연결하는 교량.
[개설]
금교(金橋)는 광주광역시에 설치된 소교량으로, 남구 사동과 동구 금동 사이에 자리한 광주천을 건널 수 있도록 건립된 교량이다.
[명칭 유래]
금교라는 교량명이 붙여진 것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첫 번째로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의 동명을 '과거의 금계리 앞에 있는 다리'라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것이 있고, 두 번째로 과거에 이 일대 사람들이 광주천을 금계라고 불렀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제원]
금교는 왕복 2차선의 교량으로 총 길이는 56m, 총 폭은 12m, 유효 폭 넓이는 8m, 높이는 5m이다. 교량의 경간 수는 5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1m이다. 상부구조 형식은 강I 형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라멘식이다. 교량 난간 재질은 스테인리스강을 사용하였고, 설계하중은 DB-23가 적용된 2등교이다.
[변천]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는 과거에 남도극장이 있었는데 남도극장과 남구 양림동의 사직공원 입구에 금교가 가설되었다. 금교가 가설된 것은 광주교가 가설된 이후인데 1910년대로 추정된다. 가설된 후 여러 차례 재가설 및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초기 금교는 목교였는데, 정봉현(鄭鳳鉉) 시인의 작품 중 "원시판교횡간와(遠市板橋橫澗臥)[멀리 도심 잇는 판교가 개울 위에 누워 있네]"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판교'가 바로 초기에 가설된 금교를 지칭한다. 광주천에 놓여진 교량은 노지다리를 제외하고는 1920년대 후반에 진행된 광주천 개수공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제방이 하천의 좌우에 축조되면서 교대[교량 끝 지지대]를 설치하기가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교가 놓여진 자리에는 예외적으로 개수공사가 진행되기 이전부터 교량이 놓여 있었고, 여러 차례 보수 및 재가설을 반복해왔다. 1963년에서 1965년에 지금의 금교가 가설되었고, 수차례 개축과 재가설 과정에서 교량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사직공원 입구 근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