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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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山精舍掩耳齋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산 79-1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영미 |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가옥 및 강학소.
[개설]
봉산정사(鳳山精舍) 엄이재(掩耳齋)는 고광선(高光善)이 건립하여 사용한 곳이다. 고광선은 나도규(羅燾圭)와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공부한 한학자이다. 엄이재는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 고광선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곳으로 처음에는 움막의 형태이었다. '엄이'란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는 의미로, 시끄러운 세상일에 대해 귀를 막고 살고자 하였던 고광선의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배우러 오는 학생의 수를 감당하지 못하자 문인들이 힘을 모아 1919년 엄이재 옆에 봉산정사를 지어 이곳에서 강학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봉학마을에서 꽤 높은 곳인 봉황산 가파른 중턱에 있다.
[변천]
엄이재가 있는 곳의 북쪽 바위는 고종이 승하한 뒤 고광선이 통곡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읍궁암(泣弓巖)으로 불린다. 고광선이 죽자 1936년 읍궁암 곁에 문인들이 영당을 지어 제향해 오다가 1964년 향교 유림들의 논의로 봉산사(鳳山祠)로 이름을 고치고, 그 곳에 고광선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975년에는 엄이재를 중건하였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왼쪽 뒤편에는 봉산정사가 세워져 있었고 엄이재 오른쪽 뒤편에는 고광선의 영당(影堂)인 봉산사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형태]
봉산정사는 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쌓아 지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로 골기와 맞배지붕이다. 엄이재는 막돌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기둥을 세운 정면 4칸, 측면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황]
봉산정사는 현재 사찰로 운영되고 있고, 고광선의 영당인 봉산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훼손되었다. 결국 2016년 여름 흔적도 없이 터만 남게 되었으며 엄이재도 마찬가지다.
[의의와 평가]
봉산정사 엄이재에는 한 지식인이 시대적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울분을 삭히며, 세상을 등지고자 하였던 흔적이 보임과 동시에 수백 명에 달하는 문인들을 대상으로 강학하였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