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15
한자 奇挺龍
영어공식명칭 Ki Jeongryong
이칭/별칭 현경(見卿),낙암(樂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0년 9월 16일연표보기 - 기정룡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38년 2월 16일연표보기 - 기정룡 사망
출생지 고룡리(古龍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용동사(龍洞祠)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행주(幸州)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기정룡(奇挺龍)[1670~1738]의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현경(見卿), 호는 낙암(樂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기의헌(奇義獻)이고, 할아버지는 정자(正字) 기침(奇琛)이다. 아버지는 기진성(寄震省)이며 어머니는 박상현(朴尙玄)의 딸 평양박씨(平陽朴氏)이다. 부인은 둘인데 첫째 부인은 이남로(李南老)의 딸 성산이씨(星山李氏)로, 3남 3녀를 낳았으며 아들은 기제훈(奇齊勳), 기홍훈(奇弘勳), 기형훈(奇衡勳)이다. 후처는 이만휘(李萬輝)의 딸 광산이씨(光山李氏)로, 2남 2녀를 낳았으며 아들은 기병훈(奇炳勳), 기태훈(奇兌勳)이다.

[활동 사항]

기정룡은 1670년(현종 11) 9월 16일 전라도 광주 고룡리(古龍里)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과거 응시의 뜻을 접고 평생 벼슬하지 않은 채 학문에 정진하였다. 외삼촌인 박광일(朴光一)기정룡을 가리켜 "기대승을 이을 한 사람[高峰後一人也]"이라고 칭찬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드렸으며, 상(喪)을 당하여서도 법도에 따라 소홀함이 없었다.

기정룡은 스스로 수양하며 널리 경전에 통달하였고, 가난 속에서도 행실이 좋아서 어사 원경하(元景夏)와 감사(監司) 홍창한(洪昌漢)이 조정에 기정룡을 천거하기도 하였다. 1738년(영조 14) 2월 16일에 69세로 사망하였는데, 기정룡의 훌륭한 인품에 가깝고 먼 인사들이 모두 조의를 표하며 현인이 사망하였다고 애도하였다.

[학문과 저술]

기정룡의 저술로는 1910년 후손 기동두(奇東斗)가 편집·발행한 『낙암유고(樂庵遺稿)』가 있으며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기정룡은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되었으며, 용동사(龍洞祠)에 향사되었다. 용동사는 전라도 광주에 있었던 서원으로, 기정룡기진(奇進), 기의헌(奇義獻), 기언정(奇彦鼎) 등이 배향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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