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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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龍雲 |
영어공식명칭 | Gang Yong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허경 |
[정의]
일본에서 전위적 회화를 경험하고 돌아와 추상 회화의 태동기인 1940년대에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약한 화가.
[개설]
1940년대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화단은 자연주의와 인상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때 강용운(姜龍雲)[1921~2006]은 일본에서 전위적 회화를 경험하고 돌아와 비정형 미술을 추구하면서 광주 화단에서 전위 운동의 주역이자 비구상 작가로서 선도적인 위치를 보여주었다. 1947년 6월 전라남도 학무국 주최로 열린 '새교육전람회'에 출품된 강용운의 「봄」은 앵포르멜(Informel)의 물질감과 신체 제스처(gesture)를 통한 자유로운 붓의 움직임이 반영된 작품으로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 화단의 첫 추상 작품으로 알려졌다.
[활동 사항]
강용운은 1939년 일본 도쿄[東京] 고다이라[小平]에 있는 도쿄제국미술학교[지금의 무사시노미술대학]에 입학하면서 데생(dessin)을 강조한 교육에 충실하였다. 하지만 1941년 3학년이 되던 해, 비구상 계열로 명성이 높았던 가와구치 기가이[川口軌外] 교수를 만나면서 회화의 방향성에 대한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일본 유학 시절 수채에 의한 드로잉과 유화로 입체파와 야수파의 형식을 선보였다면 1940년 중반 전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할 때에는 자동 기술[automatism]에 의한 분방한 표현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을 탐구하는 비정형을 추구하였다. 1940년대 초반부터 표현주의적인 특성과 함께 「여(女)」, 「시장풍경」, 「포옹」 등에서 자동 기술적인 기법을 구사하였고 신체적 몸짓을 통한 움직임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의 「축하」와 「비」에서는 뿌리고 흘러내린 복잡하게 얽힌 얼룩들의 중복과 병치를 통해 '전면이 뒤덮인 화면[all over]'이 나타났다. 1950년대 후반에는 서구에서 밀려들기 시작한 추상미술 사조에 힘입어 「예술가」, 「절대」 등 순수 추상을 지향하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1958년 중앙 화단에서 주최한 '현대작가초대전'에 참여하여 전후 세대인 후배 화가들보다 앵포르멜 회화를 훨씬 뚜렷하게 선보임으로써 전위 운동의 주역이자 비구상 작가로서 선도적인 위치를 보여주었다.
한국 앵포르멜 운동이 1958년 '현대미술가협회'의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발화하여 하나의 동일한 미학적 방향성을 전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중앙 화단의 활동과는 별개로 1950년 전후 광주 화단에서 활동한 강용운의 작품에서 그 간극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1944년 「시장풍경」, 1948년 「가을날에」, 1946년 「여름날에」, 1950년 「축하(祝賀)」, 1959년 「비(秘)」 등의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