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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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難窩遺稿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바른 |
간행 시기/일시 | 1916년 - 『난와유고』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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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전남대학교 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300] |
소장처 | 연세대학교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
성격 | 문집 |
저자 | 오계수 |
편자 | 오정선|오준선|오재수 |
권책 | 17권 8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30.1×19.7㎝ |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광산군 출신의 유학자 오계수의 문집.
[개설]
『난와유고(難窩遺稿)』는 1916년 오준선(吳駿善), 오정선(吳禎善), 오재수(吳在洙) 등 오계수(吳繼洙)[1843~1915]의 문인들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오재수가 지은 발문이 있다.
[저자]
오계수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함(重涵), 호는 난와(難窩)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기정진은 오계수를 집안을 일으킬 인물로 기대하며 학문과 수신에 힘쓸 것을 당부하고 '선난후획(先難後獲)[먼저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 얻는다.]'이라는 좌우명을 손수 써 주기도 하였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고종의 아관파천 등에 항거하여 기정진의 손자인 기우만(奇宇萬)이 의병을 일으키자 오계수는 달려가 도왔다. 그리고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병합되자 일본 천황이 친일파로 만들기 위해 제공한 '은사금(恩賜金)'을 거절하다가 1911년 5월 헌병대에 붙잡혀 20일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1915년 75세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형태/서지]
『난와유고』는 17권 8책으로 간행된 목활자본이다. 전체 크기는 30.1×19.7㎝이고, 10행 20자로 구성되었다. 전남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17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부터 4권까지는 총 473수의 시가 실려 있다. 1권 137수, 2권 96수, 3권 80수, 4권 160수가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스승이나 동학, 교유(交遊) 인물들이 거처하는 서실이나 정자, 그리고 교유에 관한 것을 노래하거나 회갑이나 죽었을 때 지은 수연시나 만사(輓詞) 등이 많다. 특히, 조선이 국권을 침탈당하는 과정에서 임진왜란 때의 금산의병이나 대한제국 시기의 호남의병, 국권 피탈에 죽음으로 항거한 황현(黃玹) 등의 우국충정을 노래한 시 등이 대표적이다.
5~6권은 소(疏) 2편, 서(書) 11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7~9권은 기(記) 79편, 서(序) 59편, 발(跋) 2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0~11권은 행장(行狀) 34편, 전(傳)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2~14권은 묘갈명(墓碣銘) 18편, 묘지명(墓誌銘)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5~16권은 논(論) 2편, 설(說) 7편, 명(銘) 1편, 혼서(婚書) 3편, 표전(表箋) 2편, 제문 9편, 축문(祭文) 7편, 상량문(上樑文) 23편, 여문(儷文)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7권에 부록으로 최익현(崔益鉉), 나도수(羅燾圭), 기우만이 지은 「난와기(難窩記)」 3편, 오계수의 행장·묘갈명·제문·발문으로 구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난와유고』는 개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인 오계수의 문집으로 당대 저명한 유학자, 지방 관료 등과 왕래하면서 교유하였던 각종 시나 서간문, 묘갈명 등의 자료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따라서 근대 호남 유학사를 이해하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