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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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ic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광주광역시 내에 있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
[개설]
광주광역시에는 구석기 중기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 족장의 무덤인 고인돌이 많이 남아 있으며, 신창동 유적을 남긴 광주 지역 사람들은 칠기를 사용하고 현악기를 연주하는 등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다.
[내용]
구석기 문화는 인류가 유인원에서 갈라져 인간으로 진화하기 시작하여 자연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최초로 이룩한 문화다. 구석기인들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생활하였고, 무리를 지어 이동 생활을 하였으며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살거나 막집을 짓고 살았다.
광주광역시 지역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은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매월동과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월동이며, 이들 유적지에서는 몸돌, 긁개, 찍개 등 뗀석기가 발견되었다. 광주광역시 인근 지역의 유적으로는 나주시 동강·당가·용호, 순천시 죽내리, 화순군 도산, 장흥 신북 등이 유명하다. 이들 대부분은 구석기 후기의 유적이지만, 광주광역시 치평동과 순천시 죽내리, 나주시 당가 유적 등은 신석기 중기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기원전 4만 년 이전부터 전라도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 준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우리나라의 기후와 지형은 현재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면서 구석기 시대가 지나고 신석기 시대가 전개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농경과 목축의 시작, 간석기와 토기의 사용, 정착 생활과 촌락 공동체의 형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때 만들어져 사용된 대표적인 토기가 빗살무늬토기이다. 신석기인들은 물과 식량이 풍부한 바닷가나 강가에 움집을 짓고 고기잡이와 사냥, 야생식물을 채집하면서 살았다. 신석기 시대 초기의 유적이 주로 바닷가나 큰 강변에 집중되어 분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주광역시 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은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유적이다. 노대동 유적에서는 아가리 부분이 두 겹으로 이루어진 이중구연(二重口緣)을 공통으로 하면서 연속된 점무늬, 짧은 빗살무늬, 마름모 찍은 무늬 등이 새겨진 토기 조각들과 소량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광주광역시 인근인 전라남도에서 확인된 신석기 시대 유적은 섬이나 해안가의 조개더미 유적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유적에는 여수시 송도 조개더미와 안도 조개더미, 신안 대흑산도 조개더미와 가거도 조개더미, 완도 여서도 조개더미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함평군 장년리, 장흥시 오복동 등 내륙에서도 신석기 시대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를 이어 한반도에는 기원전 10세기 경에 청동기 시대가 전개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생산경제가 더욱 발달하고,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전문 장인이 출현하였으며, 사유재산제도와 계급이 나타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청동기 시대의 전형적인 유물로는 반달돌칼, 바퀴날 도끼 등의 석기와 비파형동검, 거친무늬 거울 등의 청동기, 미송리식토기, 민무늬토기 등의 토기가 있다.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청동기 유적은 광주광역시 서구 송암동·북구 운암동·우치동 유적인데, 이들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와 함께 갈돌·숫돌·민무늬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은 56곳에 400여 기가 분포하고 있을 정도로, 광주광역시는 전라남도와 함께 전국 최대 밀집 지역 중 하나이다. 이 중 광주광역시 인근의 화순군 효산리·대신리 고인돌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철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특히,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업이 발달하여 경제 기반이 확대되었다. 농업은 조, 보리, 콩 등 밭농사가 중심이었지만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를 지었다. 철기와 함께 출토된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을 통하여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음도 알 수 있다.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철기 시대 유적은 영산강변에 위치한 신창동·수문·산월동·용두동·성덕 유적 등이다. 이 중 신창동 유적은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생산과 생활 그리고 무덤의 실상을 알려 주는 거대한 농경 복합 유적으로 사적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12번의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발굴할 때마다 최초·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2,000년 전 당시의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유물이 그대로 발굴되었는데, 목검 등의 무기, 괭이·자귀 등의 농·공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통형 칠기를 비롯한 각종 용기와 발화구, 신발골, 베틀 부속구, 현악기, 수레바퀴, 볍씨, 오이씨, 호도, 가래 등의 유물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처음 출토된 것으로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 현악기나 칠기 등은 당시 광주 지역을 비롯한 영산강 지역에 살았던 광주 지역 사람들의 문화 수준을 잘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