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참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11
한자 驛站制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노성태

[정의]

고려·조선시대에 전라도 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제도.

[개설]

고려시대의 역참제(驛站制)는 매우 발달하여 전국에 걸쳐 체계적인 도로망을 갖추고 있었다. 참역(站驛)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육상 교통 기관으로 정치·군사·경제상 주요 도로에 설치되어 정령(正令) 및 공문의 전달, 군사적 연락 및 출장 관리의 왕복 숙박과 특수물자의 운송 등을 담당하였다. 전국에 22도의 역로 간선을 설치하고, 여기에 총 535개의 역이 있었다.

[내용]

22도 중 승나주도(昇羅州道)는 현재 전라남도 지역의 교통로였으며, 승나주도에는 청암역 등 30개 역을 두었는데, 전라도 광주 지역에는 선암역과 경양역의 2개 역이 있었으며, 그중 경양역이 광주의 중심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전라도 역원과 역로는 고려시대의 제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기록된 전라도의 역으로는 창활도(昌活道), 앵곡도(鶯谷道), 제원도(濟原道), 벽사도(碧沙道), 삼례도(參禮道), 청암도(靑巖道), 경양도(景陽道) 등 7개의 중심 역에 50개의 소속 역이 있었다. 조선 후기 『호남역지(湖南驛誌)』에 따르면, 경양역이 주역인 경양도에는 덕기[담양], 가림[화순], 인물[능주], 검부[동복], 창신[순창], 대부[옥과] 역이 소속되어 있었다. 전라도 광주 지역의 또 다른 역인 선암역은 나주 쪽으로 연결된 청암도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전라도 광주 지역에는 고려시대처럼 경양·선암의 2개 역이 있었는데 경양역은 경양도의 중심 역이었고, 선암역은 창암도의 소속 역이었다. 선암역[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 황룡강변 일대]은 읍의 서쪽 40리[약 16㎞]에 있었고, 경양역[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우산동 일대]은 읍의 동쪽 8리[약 3.2㎞]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경양역은 역졸만 1,300여 명을 거느리는 전라도 최대의 역이었다. 역에는 일정한 수의 말이 준비되어 있어 관원이 지방에 출장 가는 일이 있으면 말을 빌려 타거나 바꾸어 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으며, 중앙의 공문이 지방에 전달될 때에도 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황]

경양역 인근에 있던 ‘찰방박공종형청덕선정비(察訪朴公鍾瀅淸德善政碑)’, ‘찰방송공규식애인선정비(察訪宋公奎植愛人善政碑)’, ‘찰방은공성호영세불망비(察訪殷公成浩永世不忘碑)’, ‘찰방이원기청덕선정비(察訪李元基淸德善政碑)’ 등 경양역 역장인 찰방을 기리기 위한 4기의 선정비는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광주공원 내에 서 있다. 또한, ‘찰방김공붕래구폐영세불망비(察訪金公朋來捄弊永世不忘碑)’와 ‘찰방송공택훈권학청덕거사비(察訪宋公宅薰勸學淸德去思碑)’ 등 2기의 선정비는 광주공원으로 옮겨졌다가 2003년 옛 경양역 인근의 향토문화로독립로가 만나는 지점의 소공원에 옮겨져 서 있다.

[관련 기록]

전라도 광주 지역 역참제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고려사(高麗史)』 92 병2 역참, "승나주도(昇羅州道)는 30역을 관장하였다. 청암[나주]·선암·경양[광주]·덕기[담양] …… 섬거[광양]·율양[승주]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역승(驛丞)이 7인이니, 창활도(昌活道)의 관할 역이 11이요, 앵곡도(鶯谷道)의 관할 역이 5이요, 제원도(濟原道)의 관할 역이 2이요, 벽사도(碧沙道)의 관할 역이 9이요, 삼례도(參禮道)의 관할 역이 6이요, 청암도(靑巖道)의 관할 역이 9이요, 경양도(景陽道)의 관할 역이 8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 광산현 역원, "경양역은 현의 동쪽 8리에 있는데 승(丞)을 두었다. 금상(중종) 5년에 승을 혁파하고 찰방을 두었다.…… 선암역은 현의 서쪽 40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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