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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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士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영수 |
[정의]
조선시대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유학자와 선비 세력에 대한 호칭.
[개설]
사림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조선시대 훈구파가 정계에 진출하여 활동하였던 것과는 달리 향촌 사회에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실천한 유학자들을 말한다. 전라도 광주 지역의 사림은 조선시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실천적 의리 정신을 중시하고 개혁 지향적이고 실천적인 학문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문학적 풍모와 예술 정신을 나타내었다.
[호남 지역 사림의 활동]
호남 지역에 유학 사상이 수용된 것은 멀리 백제시대까지 소급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유학이 향촌 사회의 지배원리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이다.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고 수용된 후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면서 유학은 전통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심에 서게 되었다. 호남 지역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으로 유학이 형성되고 전개되었다.
호남 지역에 유입된 성리학자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 정신을 지킨 인물들이었다. 성리학적 소양을 갖춘 이들은 중앙 정계와 일정한 거리를 둔 호남 지역으로 이주한 후 향촌 사회의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사림파의 주요 인물로 성장하여 호남 지역 사림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조선 전기 호남 지역에 유입된 사림들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 정치적 부도덕함을 비판하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 중앙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단순히 은거나 도피에만 머무르지 않고 후세 교육과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호남 지역의 사림들은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한 경제적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향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재지적 기반을 확충하였고, 도학적 의리 정신을 함양하면서 성리학 연구와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16세기 호남 지역 사림은 활발하게 활동하였는데, 대략 다음의 여섯 계열로 구분된다.
첫째, 김굉필(金宏弼) 계열로는 최산두(崔山斗), 유계인(柳季麟), 윤신(尹信), 최충성(崔忠成), 유맹권(柳孟勸), 김인후(金麟厚), 유성춘(柳成春), 유희춘(柳希春) 등
둘째, 최부(崔溥) 계열로는 윤효정(尹孝貞), 임우리(林遇利), 유계인(柳桂隣), 윤구(尹衢), 윤항(尹巷), 윤행(尹行), 윤복(尹復), 유성춘(柳成春), 유희춘(柳希春), 이중호(李仲虎) 등
셋째, 송흠(宋欽) 계열로는 양팽손(梁彭孫), 나세찬(羅世纘), 송순(宋純), 안처성(安處誠), 양응정(梁應鼎), 김인후(金麟厚) 등
넷째, 박상(朴祥) 계열로는 송순(宋純), 임억령(林億齡), 정만종(鄭萬鍾), 채중길(蔡仲吉), 박순(朴淳) 등
다섯째, 이항(李恒) 계열로는 김천일(金千鎰), 기효간(奇孝諫), 김제민(金齊閔), 백광홍(白光弘) 등
여섯째, 김안국(金安國) 계열로는 김인후(金麟厚), 유희춘(柳希春) 등이 있다.
18세기 호남 지역의 사림에는 ‘호남(湖南) 삼천재(三天才)’라고 불리는 신경준(申景濬)[1712~1781], 황윤석(黃胤錫)[1729~1791] 등이 있다. 이들은 학문 활동을 통해 유형원에 이어 호남에 실학적 학문 기풍을 조성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19세기에 접어들어 호남 지역 사림은 기호학맥을 계승하면서 뚜렷한 사승관계 없이 독자적인 학문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기정진(奇正鎭)[1798~1879]이 주도하였다. 기정진은 이이의 성리설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통해 구한말 도학의 성취를 이루었다. 기정진은 기(氣)에 대한 이[理]의 철저한 주재를 바탕으로 한 이기론 체계와 이일분수(理一分殊)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통해 호락논쟁을 지양하였다. 기정진의 성리설은 기정진을 조선조 성리학 6대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특히, 기정진의 위정척사 정신은 구한말 호남의병으로 이어져 호남 유학 사상의 실천적 지향을 명확히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