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인민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803
한자 光州人民委員會
영어공식명칭 Gwang-ju People’s Committee
이칭/별칭 광주 인민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9월 10일연표보기 - 광주인민위원회 설립
최초 설립지 광주인민위원회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69-7[충장로 3가 8]지도보기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정의]

1945년 9월 광주광역시에서 설립된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회 소속 민간 자치 기구.

[개설]

해방 직후 새로운 민족국가건설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활동해 온 건국준비위원회는 1945년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표명하기에 이른다. 또한 9월 14일 중앙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처럼 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지역의 건국준비위원회 지부도 인민위원회 지부로 변경되었다.

[변천]

광주인민위원회는 1945년 9월 10일 오전 10시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의 회의를 통해 개편되었다.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는 중앙의 개편 지시에 따라 인민위원회로의 개편을 결의하였다. 집행부는 부위원장이었던 서우석을 제외하고는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의 간부들이 그대로 유임되었다. 즉 광주인민위원회는 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 대부분을 유지하였으며, 적산관리부만 추가되었다.

광주인민위원은 위원장 1명, 부위원장 2명, 시 책임위원 22명, 기타 평의원 등을 포함하여 총 50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미군의 광주 진주 이후인 1945년 11월, 광주인민위원회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행정, 치안 유지 활동은 공식적으로 중지되기에 이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광주인민위원회는 치안 유지, 적산 관리 등의 활동을 하였다. 예를 들어, 광주 지역의 해방 직후 일본인 소유의 공장들이 대부분 인민위원회에 의해 관리되었다고 한다. 다만 광주인민위원회는 전남도 인민위원회와 활동이 중복되는 점이 많았다. 즉, 광주 지역의 치안유지, 적산관리 등의 업무를 이미 도 인민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이에 광주인민위원회 사무실은 주로 국내외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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