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244 |
---|---|
한자 | 鳴巖齋 |
이칭/별칭 | 궁암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현숙 |
현 소재지 | 명암재 -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
---|---|
원소재지 | 명암재 -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
성격 | 누정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개설]
명암재(鳴巖齋)는 조선 시대 중기에 명암(鳴巖) 김형(金逈)[1543~?]이 죽령산에 지은 정자이다. 김형의 자는 숙명(淑明),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김충남(金忠男)의 아들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陶琴洞) 출신이다. 김형이 고경명(高敬命)의 제자로 기록이 남아 있어, 명암재는 임진왜란 전후 무렵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형은 고경명의 문인으로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사림들의 선망을 받았는데, 과거에 뜻이 없이 은거 생활을 하며 명암처사(鳴巖處士)라 칭하였다. 고경명의 응제앵운(應製鶯韻)을 따라 글을 지어 시가 세상에 회자되었는데, 내용 중에 나오는 여인같이 마치 벙어리[瘖]처럼 과묵하다 해서 ‘구필음(口必瘖)’ 선생이라는 별칭이 있다.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광주읍지(光州邑誌)』 고적(古蹟)에 “鳴巖在州西四十里竹嶺山高十丈處士金迥作書室於其下賦詩詠巖巖忽自鳴因以爲名”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광주에서 사십 리 죽령산에 십여 길의 바위가 있는데 그 밑에 김형이 서실을 짓고 ‘巖巖忽自鳴因以爲名’으로 시를 지어 읊으니 바위가 스스로 울기를 수일 동안 하다가 그치니 그 바위를 명암(鳴巖)이라 한다.”는 내용으로, 바위와 명암재의 유래를 알 수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부용정(芙蓉亭)에 김형의 시가 있다.
[위치]
명암재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광주광역시로 넘어가는 국도 제1호선 옆 죽령산(竹嶺山) 명암바위 아래에 있다.
[형태]
명암재는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었다.
[현황]
명암재와 관련하여 마을 사람들이 아직도 우는 바위 이야기를 기억하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명암재에는 지역 인물의 선비 정신 실행과 자연환경에 얽힌 독특한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