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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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不換亭 |
이칭/별칭 | 복룡암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등길 265[등임동 20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숙 |
건립 시기/일시 | 1771년 - 불환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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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3년 - 불환정 개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6년 - 불환정 중수 |
현 소재지 | 불환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등길 265[등임동 204] |
원소재지 | 불환정 - 광주광역시 광산구 내등길 265[등임동 204] |
성격 | 누정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평택임씨 문중 |
관리자 | 평택임씨 문중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개설]
불환정(不換亭)의 ‘불환(不換)’은 “아름다운 강산을 삼공[고려시대의 세 벼슬을 이르던 말. 태위·사도·사공이 있고 조선시대 삼정승과 같은 뜻]과 바꿀 수 없다.”는 의미의 ‘삼공불환비강산(三公不換比江山)’이라는 고시(古詩)에서 비롯되었다. 상량문에 ‘승정기원후삼신묘(崇禎紀元後三辛卯)’라는 기록이 있어 1771년(영조 47)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자 안에는 금호 임형수의 『금호집(錦湖集)』 목판각이 보관되어 있고, 한말의 학자이자 의병장인 기우만(奇宇滿)[1846~1916]의 「불환정중수기문」이 있다. 기우만의 기문에 따르면, 정자를 세운 이는 조선 후기의 처사였던 임덕원(林德遠)[1713~1787]이다. 임덕원의 선조 중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을사사화로 화를 입은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1504~1547]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광주목사를 지내던 중 이괄의 군사에게 살해당한 관해(觀海) 임회(林檜)[1562~1624]가 있다. 선비 집안의 가풍을 이어받아 대쪽처럼 올곧은 성품을 소유하였던 임덕원은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사람들은 임덕원이 지은 복룡암이란 시에서처럼, 마치 용이 엎드려 있다는 뜻으로 임덕원을 복룡암(伏龍巖)이라 불렀다.
[위치]
불환정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고봉로로 걸어서 약 5분 정도 가다가 고봉로 사거리에서 오른쪽 박호등임로에서 내등제 길을 따라 맨 오른쪽 길로 가다가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변천]
불환정은 원래는 초정(草亭)이었으나 중수 과정에서 기와지붕으로 바뀌었다.
[형태]
불환정은 언덕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데 전면부는 잡석으로 기단을 높이 쌓아 후면부가 산등성이에 연결된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툇간(退間)을 둘러 가운데 한칸 방을 들였다. 덤벙주초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얹었다.
[현황]
불환정은 2006년 후손들이 정자를 중수하고 기념비와 입구에 작은 연못을 건널 수 있게 구름다리를 설치하여 정자의 규모를 갖추었다.
[의의와 평가]
불환정은 자신이 세운 뜻을 잘 가꾸고 지키는 삶의 자세가 후손들에게 삶의 사표(師表)가 되는 것을 배우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