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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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景義齋 |
이칭/별칭 | 소해정(蘇海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소해로 11[일곡동 514]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한백 |
건립 시기/일시 | 1930년 - 소해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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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5년 - 소해정에서 경의재로 개칭 |
현 소재지 | 경의재 - 광주광역시 북구 소해로 11[일곡동 514] |
원소재지 | 경의재 - 광주광역시 북구 소해로 11[일곡동 514] |
성격 | 재실 |
양식 | 골기와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3칸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강학 공간.
[개설]
경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으며, 1930년 소해정(蘇海亭)이란 이름으로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1856~1940]이 건립하였다. 노종룡은 최익현(崔益鉉)[1833~1907], 송병선(宋秉璿)[1836~1905] 등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구한말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면서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물리치고 나라를 보전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고향인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으로 와서 교육과 후진 양성을 하였고, 본인의 아호를 딴 소해정을 지었다. 1965년 노종용의 아들인 노진영이 소해정을 같은 공간에 있는 만주사(晩州祠)의 강당으로 헌납하면서 경의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
경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514번지에 있다.
[변천]
경의재는 1930년에 소해정으로 건립되었으며, 1965년에 경의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형태]
경의재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골기와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황]
경의재는 정면에 '景義齋(경의재)', '勉修齋(면수재)', '聾啞(농아)'라는 현판이 있으며, 그 외 고광선, 노상익, 기우만 등이 쓴 기문과 시 등의 46개 현판이 더 있다. 같은 공간에 1817년 노재규가 세운 농암정(聾巖亭)과 1959년에 송병선과 노종룡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만주사가 있다.
[의의와 평가]
경의재는 구한말 광주광역시 지역 유학자의 독립운동 활동 모습과 광복 후 이들을 어떻게 기리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