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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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之和 |
영어공식명칭 | Yoon Jihwa |
이칭/별칭 | 순경(順卿),남촌(南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에 거주한 문신.
[가계]
윤지화(尹之和)[1476~1558]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순경(順卿), 호는 남촌(南村)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윤득룡(尹得龍), 증조할아버지는 윤응행(尹應行), 할아버지는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를 지낸 윤기견(尹起畎)이다. 아버지는 병조참판(兵曹參判) 윤구(尹遘), 어머니는 권술(權述)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설윤화(薛允和)의 딸 순창설씨(淳昌薛氏)와 전림(全琳)의 딸 천안전씨(天安全氏)로 둘이었는데, 자식이 없다. 윤지화는 연산군의 모후인 제헌왕후(齊獻王后) 윤씨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윤지화는 1476년(성종 7)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우(孝友)와 문장이 출중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며, 1506년 8월에 음보(蔭補)로 호조정랑(戶曹正郞)에 제수(除授)되었다. 같은 해 중종(中宗)[재위 1506~1544)]이 즉위하면서 연산군의 외척인 윤지화는 전라도 장흥(長興)에 유배되었으며, 1513년 풀려나 전라도 광주로 이거하여 효우면(孝友面) 구암(龜巖)[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자리를 잡고 세거하였다. 윤지화는 당시 광주 지역에서 문장으로 유명한 감사(監司) 정만종(鄭萬鍾), 눌재(訥齋) 박상(朴祥), 하천(霞川) 고운(高雲) 등과 더불어 시를 나누며 교유하였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39호인 ‘고운 묘 출토유물(高雲墓出土遺物)’ 가운데 윤지화가 고운을 애도하며 지은 만장(輓章)이 확인되어, 이들의 막역한 교유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윤지화는 1558년(명종 13)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윤지화의 저술로는 1909년 간행된 『남촌유고(南村遺稿)』가 있다. 『남촌유고』는 윤지화가 지은 시·문을 엮은 것으로, 기재(奇宰)[1854~1921]가 서문을 썼으며, 김영한(金甯漢) 등이 발문을 지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묘소]
윤지화의 묘소는 광주 효우면(孝友面) 구암(龜巖)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 일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