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022
한자 金瑪利亞
영어공식명칭 Kim Maria
이칭/별칭 근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2년 6월 18일연표보기 - 김마리아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6년 - 김마리아 연동여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10년 6월 16일 - 김마리아 연동여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12년 - 김마리아 일본 히로시마 고등여학교 유학
수학 시기/일시 1915년 - 김마리아 일본 동경여자학원 유학
수학 시기/일시 1924년 - 김마리아 미국 파크대학 3학년 편입
수학 시기/일시 1927년 5월 - 김마리아 미국 파크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0~1912년 - 김마리아 수피아여학교 교사 근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김마리아 일본 동경여자유학생친목회장, 2.8독립선언 대회 여성 대표 참석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김마리아 중국 상하이 망명 후 임시정부 의정원 황해도 대표 선출, 중국 난징대학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28년 - 김마리아 미국 뉴욕 근화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김마리아 흥사단 입단
활동 시기/일시 1933~1943년 - 김마리아 마르타윌슨 여자신학원 교수 재직
몰년 시기/일시 1944년 3월 13일연표보기 - 김마리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김마리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출생지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소래마을
학교|수학지 연동여학교 - 서울
학교|수학지 히로시마 고등여학교 - 일본
학교|수학지 동경여자학원 - 일본
학교|수학지 파크대학 - 미국
학교|수학지 마르타윌슨 여자신학원 - 함경남도 원산
활동지 수피아여학교 - 전라남도 광주
성격 사회운동가
성별
본관 광산
대표 경력 대한애국부인회 회장|마르타윌슨 여자신학원 교수

[정의]

전라남도 광주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근대 여성 양성에 힘썼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개설]

김마리아(金瑪利亞)[1882~1944]는 일제강점기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으며,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가계]

1882년(고종 19) 음력 6월 18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소래마을에서 아버지 김윤방(金允邦)과 어머니 김몽은(金冡恩)의 셋째 딸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근포(槿圃)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서울에서 작은아버지 김필순(金弼淳)의 집에 의탁하였다. 김필순은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며 서북 출신인 안창호, 노백린, 이갑, 이동휘, 유동렬 등과 가깝게 지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김마리아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김마리아의 큰 고모 김구례의 남편인 서병호는 신한청년단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였으며, 넷째 고모 김순애의 남편은 김규식이었다.

1906년 미국 북장로교 학교인 서울 연동여학교[정신여학교의 전신]에 진학하였다. 1910년 6월 16일 연동여학교를 졸업한 김마리아는 2년간 수피아여학교의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2년 일본 히로시마 고등여학교에서 1년간 유학하였다.

1913년 국내로 돌아와 정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신여학교 루이스 교장의 주선으로 동경여자학원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이 무렵 김마리아는 동경여자유학생친목회의 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2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2.8독립선언 대회에 여성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후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국내에 들어와 3.1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1919년 10월 19일 18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고, 회장에 선출되어 군자금 모집에 최선을 다하였다. 1921년 8월 국내를 탈출하여 상하이[上海]에 망명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24년 10월 파크대학 3학년에 편입하여 1927년 5월 졸업하였다. 1928년 1월에는 뉴욕에서 다시 만난 황애덕, 박인덕 등과 함께 '근화회'를 조직하였다. 1929년 6월에는 흥사단에도 입단하였다.

1933년 귀국한 김마리아는 함경남도 원산의 마르타윌슨 여자신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43년 12월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1944년 3월 13일 사망하였다.

[묘소]

김마리아의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 보라매공원에 기념비[순국열사 김마리아 선생 상]가 세워져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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