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68
한자 曺亞羅
영어공식명칭 Jo Ara
이칭/별칭 민주화운동의 대모,광주의 어머니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2년연표보기 - 조아라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1년 - 조아라 수피아여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조아라 백청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조아라 광주YWCA 상무이사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45~1952년 - 조아라 전라남도청 근무
활동 시기/일시 1951년 - 조아라 성빈여사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52년 - 조아라 호남여숙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조아라 계명여사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80년 - 조아라 5.18민주화운동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92년 - 조아라 남북여성토론회 참석
몰년 시기/일시 2003년연표보기 - 조아라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3년 7월 8일연표보기 - 조아라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2015년 - 소심당 조아라기념관 건립
추모 시기/일시 2018년연표보기 - 조아라 건국포장 추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7월 12일 - 국립5.18민주묘지 안장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군
학교|수학지 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 - 광주광역시 남구 백서로 13[양림동 242]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남구 백서로 13[양림동 242]지도보기
활동지 광주YWCA - 광주광역시 북구 중가로 43[유동 107-5]지도보기
활동지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지도보기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지도보기
성격 교육자|사회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광주YWCA 상무이사|성빈여사 설립자|호남여숙 설립자|계명여사 설립자|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 동창회장|전라남도청 문교사회국 사회과 주사

[정의]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던 여성 사회운동가이며 교육자.

[개설]

조아라(曺亞羅)[1912~2003]는 1912년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태어나 기독교 장로로 계몽운동에 힘쓴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조아라수피아여학교 보통과[지금의 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를 거쳐 1931년 수피아여학교 고등과[지금의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과 함께 이일학교(裡一學敎) 교사로 있던 중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하였던 백청단(白靑團) 사건 당사자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르고 교직에서도 쫓겨났다.

1945년 8.15광복 후 정치 활동을 하다가 1951년 성빈여사(聖貧女舍) 설립을 시작으로 하여 교육 활동에 매진하였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에는 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에서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헌신적으로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을 펼쳐 '민주화운동의 대모', '광주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활동 사항]

조아라는 1945년 8.15광복 후 전라남도청에서 근무하면서 광주YWCA 상무이사로 선임되었고 이후에도 광주YWCA와의 인연을 이어 나갔다. 이와 함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에 참여하였다가 독립촉성부인회 전라남도 총무를 맡았다. 1947년에는 수피아여자중학교 동창회장을 맡아서 일제강점기 말에 폐교되었던 모교를 재건하기 위해 열심히 도왔다. 1949년에는 대한부인회 전라남도본부 간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51년 그동안의 정치 활동을 접고 전쟁 고아들을 위한 성빈여사를 세웠다. 1952년에는 3년제 야간 여자 중학교인 호남여숙(湖南女塾)을 설립하였다. 이후에도 청소년 야학인 별빛학원과 소외받는 여성들을 위한 계명여사(鷄鳴女舍)를 열기도 하였다. 1952년 전라남도청 문교사회국 사회과 주사 업무를 끝으로 퇴직하였다. 그 뒤 별빛학원과 계명여사를 운영하는 한편 광주YWCA와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에 전념하였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일로 계엄군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출감 후에는 부상자와 사망자 처리에 전념하였다. 이때부터 '민주화운동의 대모', '광주의 어머니'로 불리기 시작하였다.1992년에는 남북여성토론회 한국 여성계 대표로 참석하였고, 5.18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광주 국제사면위원회, 국민운동 전라남도본부, 21세기 여성발전위원회, 광주여성정치연맹 등의 고문을 지내기도 하였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4-86이다.

[상훈과 추모]

광주시민 대상, 정일형 자유민주상, 무등여성 대상, YWCA 전국대회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3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고, 2015년에 소심당 조아라기념관이 세워졌다.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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