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730
한자 建築
영어공식명칭 Architecture of the Gwangju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미

[정의]

근대 이후 광주광역시에 형성된 건축의 역사.

[개설]

대한민국건축은 개항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많은 변화와 과도기를 경험하며 변화를 거쳐 왔다. 대한민국 현대 건축에 있어서 특히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은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 이후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쳐 급격히 변화하였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근·현대 건축으로 이어지는 광주 건축은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건립된 광주 건축, 광복 이후부터 1950년 이전 건축, 한국전쟁이 일어난 시기인 1950년대 건축, 기술과 재료의 발달이 실험된 1960년대 건축, 대형화 및 고층화 양상이 두드러진 1970년대 건축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10년-1945년 이전: 일제강점기 광주 건축]

1910년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개화기와 식민기의 분기점이자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20세기 건축의 시작이다.

1910년 이후 조선을 완전히 통치하게 된 일본은 광주 지역에서도 행정과 사법 조직을 재조직하였으며, 관청을 비롯한 관립 학교, 은행 등을 건립하였다. 전라남도청과 헌병대, 경무부 등의 관공서가 경술국치 직후 건립되어 광주 지역의 상권 및 산업을 잠식하였으며, 광주농공은행, 광주금융조합 등의 근대적 금융기관이 설립되었다. 한편, 일본인들이 증가하면서 광주에 일본식 여관과 요정이 나타났으며, 광주우체국을 중심으로 충장로에 일본인들의 상가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의 광주 지역의 건축은 서울과 같은 양식주의적인 특성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전통 건축의 답습과 함께 일본식과 서양식의 외래 건축 도입과 절충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에는 공공 건축, 학교 건축, 종교 건축, 문화시설, 금융시설, 주거 건축 등 다양한 유형이 건축되었다.

1. 공공 건축

광주객사, 전라남도청, 광주군청, 광주면청[면사무소], 광주우체국, 광산군청, 광주역사, 자혜의원, 제중원, 광주감옥[광주교도소] 등이 건축되었다.

2. 학교 건축

광주공립소학교[광주 최초의 학교], 광주공립보통학교[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일본인고등소학교[광주중앙초등학교], 수피아여학교, 숭일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 광주공립고등여학교[광주여자고등학교], 광주여자보통학교[전남여자고등학교] 등 많은 학교가 건축되었다.

3. 종교 건축

북문안교회, 중앙교회, 양림교회, 유진벨선교기념관, 광주북동천주교회, 양림동 선교사 사택 등 다수의 기독교 건물이 세워졌다.

4. 문화시설

오웬기념각, 광주좌[광주 최초 공연장], 제국관[무등극장], 광주극장 등 문화시설이 광주 도심에 들어섰다.

이 시기 광주 지역의 건축 형태는 주거 건축의 경우 전통 한옥이나 일본식 주택이 대부분이었으며, 종교 건축[교회 건축]은 고딕 양식, 관공서나 금융기관은 르네상스 양식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조선인 건축가가 출현하여 설계된 작품이 실현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으로서 비로소 대한민국의 현대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45년-1949년: 광주 건축의 암흑기]

1945년 광복 이후는 건축계를 비롯한 문화 면에 변화가 나타났으며, 조선건축사협회 등 활동 단체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여건은 건축가들의 창의적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관에 의하여 주도된 공사가 많았으며, 광주의 경우 낙후된 지역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기 광주에 세워진 건축물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합동강의실[1946년 설계, 1947년 준공, 벽돌조의 계단식 강의실, 김한섭 作]이 있으며, 조선대학교 본관[1948년 설계, 1949년 준공, 이길성 作]과 조선대학교 약학대학[1948년 설계, 1951년 준공, 김우석 作],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의 세균학교실[동물사 A동]과 간호학과 강당 등이 있다.

[1950년대: 전쟁에 의한 파괴와 복구의 시기]

광복 후 활기를 띠던 건축계 활동은 한국전쟁 발발로 좌절되었다. 폐허가 된 전국 각 도시의 복구를 위하여 건축가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대형 건축 프로젝트는 기대하기 어려웠으나, 복구 공사 위주로 공장, 상업건축, 교실, 극장, 은행 등이 세워졌다. 전쟁 이후 도처에서 복구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특히 학교 건축이 활발히 진행되어 전남대학교 문리대 강당[정옥진 作], 전남대학교 법대 본관[1955. 10], 전남대학교 공대 본관[1955. 11], 전남대학교 학생회관[1956. 4], 전남대학교 본부[1957. 12, 김성추 作], 광주사범대학과 광주사범부속초등학교[1957~59, 김한섭 作], 교육대학 3호관 등이 지어졌다. 김한섭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51년의 광주제사공장 복구설계와 중앙극장[1956], 사범대학과 사범부속국민학교, 광주 최초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용아빌딩[1957], 광주YWCA 회관[1958] 등이 있다. 특히 광주YWCA는 철근콘크리트에 의하여 추구할 수 있는 기하학적 아름다움과 조형주의를 표현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1960년대: 행정주체에 의한 실험의 시기]

1960년대는 대한민국 건축이 형태적으로 크게 발전한 시기이다. 1960년대는 건축 기술과 재료 발달로 인하여 건물이 고층화·대형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새로운 공법이 시도되었다. 이 시기 광주 건축은 1950년대 활동하던 건축가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김한섭은 전남의대 간호원 기숙사[1960], 중앙여자중고등학교[1960] , 서광주세무소[1960], 전남적십자병원[1961], 전남의대부속병원 전염병동[1961], 태평극장[1961] 등의 작품을 남겼고, 채규당은 광주세무소[1968], 한미빌딩[1968], 광천동 시민아파트[1969], 상업은행[1969] 등과 같은 작품을 남겼다. 1960년대 광주 건축에 있어 주목할 만한 점은 아파트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관영 아파트라 할 수 있는 광천동 시민아파트와 농성동 시민아파트가 건설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미도아파트와 공무원아파트 등과 같은 민영 아파트가 건립되었다.

[1970년대: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

1970년대는 1960년대 나타났던 건축이 안정된 모습을 보여 준 시기로서 기념적 공공 건축, 업무용 건축의 대형화, 주거 건축 형식의 변화 등의 큰 특징이 나타난 시기이다. 특히 상업시설과 은행, 극장과 학교, 공공건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건축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추세는 1970년대 들어서 민간 건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는 10층 이상의 고층화, 커튼월식 외벽 구조 등 구조 기술의 발달로 고층 빌딩이 들어서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고층화가 진행되었다. 전일빌딩[현 광주일보 사옥, 조동희·오무송 作], 중앙교회[1972, 김태만 作], 이광로 설계의 전남대학교 의대부속병원[1973] 등이 있다. 이 시기 주요 건축물로는 KBS방송국, 광주우체국』, 무등극장, 상업은행, 카톨릭센터,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이 있다.

[1980년대: 지속적 발전과 개성적 건축 실현]

1980년대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하였으며, 유명한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건축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작품 활동이 이루어졌다. 고속터미널[한종언 作], 한전 전남지부[이각표 作], MBC방송국, 윤광섭 산부인과[류영창 作], 송암빌딩[한진수 作] , 광주건축사회관[박화수 作], 기독교방송국 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 시기 작품들은 대부분 고전적인 비례미와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 조형 특성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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