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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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孝洞錦山-錦山城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현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9년 - 「충효동 금산과 금산성」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동림마을 주민 정남수의 이야기를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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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충효동 금산과 금산성」 『광주의 전설』에 「금산과 금산성」으로 수록 |
관련 지명 | 금산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채록지 | 동림마을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
성격 | 설화|지명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문씨|정씨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풍수지리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금산과 금산성에 관한 이야기.
[개설]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의 앞산인 금산과 금산성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금은보화가 가득해서 금산이 되었다는 지명 유래와 금산성을 축조하게 된 이유 그리고 금곡의 바위에 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동림마을 주민 정남수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1990년에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금산과 금산성」으로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부터 충효동 앞산인 금산에 금은보화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산 아래 평촌마을의 문씨(文氏)가 산에 올라가 커다란 돌문을 발견했다. 그 문 안에는 금은보화와 쌀이 가득 있었다. 문씨는 이 사실을 자신의 가문에만 알려 주어 이 덕에 오랫동안 풍족하게 살았다. 후손의 어느 대에 이르러 이 비밀을 지실마을의 정씨(鄭氏)에게 알려주었다. 정씨가 금산에 갔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쇠 금(金)’ 자 대신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 다른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정감록이 광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어느 날 무등산에 올라 창평과 지실을 내려다보니 불에 위험한 곳이었다. 그래서 불에 맞지 않으려면 금산에 있는 성게 바위가 안 보이도록 성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실정씨들이 금산에 성을 쌓았다. 이 성을 금산성이라 하며, 지금도 그 성곽이 남아 있다. 또한, 지실에서 보면 금곡의 바위 무더기가 보이는데, 이곳의 바위가 아래로 굴러 내려올 때마다 지실에 훌륭한 인물이 한 사람씩 태어났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충효동 금산과 금산성」의 주요 모티프는 ‘지명 유래’와 ‘비보 풍수’ 이다. 충효동의 앞산인 금산이 ‘쇠 금(金)’ 자에서 ‘비단 금(錦)’ 자로 바뀌게 된 연유에 관한 전설이다. 금산에 묻힌 금은보화로 그 후대까지 오랫동안 잘 살았던 문씨의 이야기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실정씨 사람들이 산에 가보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지실정씨 사람들이 나중에 금산에 산성을 쌓게 되는데, 이유는 지실마을이 불에 위험한 형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비보(裨補)로 성을 쌓는데 이 성이 바로 금산성이다. 비보는 부족한 것을 채워 인위적으로 보완하는 것으로 성이나 탑과 같은 조형물을 세우거나 나무를 심기도 한다. 땅의 부족한 형세를 채워 인위적으로 좋은 자리, 명당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