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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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忠信時調三作品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76년 - 정충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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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36년 - 정충신 사망 |
성격 | 시조 |
작가 | 정충신 |
[정의]
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인 정충신이 지은 시조 3수.
[개설]
시조 3수를 지은 정충신(鄭忠信)[1576~1636]의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시호는 충무(忠武),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고려 명장 정지(鄭地)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정윤(鄭綸)이고 어머니는 영천이씨이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7세의 나이로 권율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1592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부원수를 지냈으나, 1633년 금과의 절화(絶和)[화친 관계를 끊음]를 반대하는 소를 올려 충청도 당진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다. 저서로 『만운집(晩雲集)』, 『금남집(錦南集)』,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등이 있다. 정충신이 지은 시조 작품 3수는 여러 시조집에 전하고 있다.
[내용]
정충신이 지은 시조 작품 3수는 다음과 같다.
공산(空山)이 적막(寂寞)한데 슬피 우는 저 두견(杜鵑)아/ 촉국 흥망(蜀國興亡)이 어제오늘 아니거늘/ 지금(至今)에 피(血)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나니
- 『악학습령』
1수의 「공산이 적막한데」에 등장하는 두견새는 '귀촉도' 혹은 '망제혼'이라고 불리는 새이다. 억울하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은 촉나라 왕 두우의 넋이 밤이면 밤마다 목에서 피가 나게 울어 듣는 이의 애간장을 태운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작자의 의지가 그려지고 있다.
소금 수레 메었으니 천리마인 줄 제 뉘 알며/ 돌 속에 버렸으니 천하보인 줄 제 뉘 알리/ 두어라 알 이 알지니 한할 줄이 이시랴
- 『대동풍아』
2수의 「소금 수레 메었으니」는 귀한 인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나고 귀하게 쓰일 때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에 한탄할 필요가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황하수(黃河水) 맑다더니 성인(聖人)이 나시도다/ 초야(草野) 군현(群賢)이 다 일어나단 말가/ 어즈버 강산풍월(江山風月)을 누를 주고 니거니
- 『가곡원류―국립국악원본』
3수의 「황하수 맑다더니」는 자연을 뒤로하고 현실로 나아가야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는 해석과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는 주인이 없으니 즐겨야 한다는 강호한정의 정취를 노래하고 있다는 해석이 있다.
[의의와 평가]
정충신이 지은 시조 작품 3수는 무신으로서 인생 대부분을 국경 부근이나 전쟁터에서 보냈던 정충신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3수 「황하수 맑다더니」는 작가가 달리 전해지기도 하는데, 『시가(詩歌)―박씨본』, 『영언유초(永言類抄)』에는 김춘택(金春澤)으로, 『악학습령(樂學拾零)』과 『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김광욱(金光煜)으로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