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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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ak Yongj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진우 |
출생 시기/일시 | 1956년 7월 9일 - 박용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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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80년 5월 21~25일 - 박용준 『투사회보』 필경 담당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5월 27일 - 박용준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5월 - 5.18구묘지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활동지 | 옛 전라남도청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
활동지 | 광주YWCA - 광주광역시 북구 중가로 43[유동 107-5]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 |
성격 |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YWCA 신용협동조합 간사|들불야학 강사|『투사회보』 필경 담당 |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박용준[1956~1980]은 1980년 광주YWCA 신용협동조합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투사회보』를 발행하는 팀에서 필경을 담당하였고,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박용준은 1978년 들불야학과 인연을 맺고 야학 강사로 활동하면서 소외받고 착취당하는 이웃을 위해 시민운동을 펼쳤다. 1980년 5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시에 계엄군이 들이닥쳐 갖은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에 박용준을 비롯한 들불야학 강사와 학생들은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신군부의 폭력에 항거하였다.
박용준은 5월 21일부터 동료 강사 및 학생들과 함께 계엄군의 만행과 시민들의 피해 상황 등을 알리는 『투사회보』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박용준은 정리된 문안들을 필경하는 역할을 맡았다. 『투사회보』는 5월 21일부터 25일까지 2만~3만 부씩 8호가 발행되었다. 투사회보팀은 5월 25일부터 광주YWCA로 자리를 옮겨 『민주시민회보』로 이름을 바꾸어 배포하였다. 5월 26일 『민주시민회보』는 9호가 마지막으로 발간되었다.
박용준은 자신에게 몸을 피하라는 야학 동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항거하다가 5월 27일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5.18민주화운동이 끝난 뒤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묻혔다가,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2-38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