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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241
한자 日省齋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90년 9월연표보기 - 일성재 건립
현 소재지 일성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 지도보기
성격 사당
양식 골기와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박노열
관리자 박석원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1990년에 건립된 사당.

[개설]

일성재(日省齋)광주광역시 광산구 일대에 하남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토지보상금을 받게 된 박노열(朴魯烈)이 일본에 있는 맏아들 박민규와 일성계(日省契) 계원들의 협조를 받아 1990년에 건립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 안청마을 뒷쪽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변천]

박노열은 박노술(朴魯述)에게 학업을 익히고, 다시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넓혔다. 이후 박노열은 자신의 학문을 대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맏아들 박민규를 비롯한 종친(宗親) 박일, 인척(姻戚) 심수택 등과 함께 10년 동안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통현산에서 산당을 지어 독공(篤工)을 하는 생활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여러 제자들이 박노열을 따라 학문을 익혔으며, 10년간의 공부 이후에 하산하였다. 하산한 후에 많은 제자가 모였고, 이때의 제자들이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하나의 계회(契會)를 만들어 이름을 '일성'이라 하였다. 해마다 한 차례의 모임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친목을 다졌으며, 갹출로 계회의 재원을 충당하였다.

일성재의 창건(創建)은 1988년 4월 일성계 발의와 1989년 7월 상량을 거쳐 1990년 9월에 준공되었다. '일성'란 뜻은 중국 증자(曾子)의 "일삼성오신(日三省吾身)"라는 고어에서 연유된 말이다. "날마다 자신을 하루 세 번씩 반성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깨우쳐 바로 한다."는 뜻이다.

[형태]

전면 4칸, 옆면 2칸으로 원형 주초석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겹처마로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었다. 좌우 양쪽에 각 1칸의 거실이 있고, 중앙의 2칸은 벽이 없는 마루로 개방되어 모임을 위한 강당의 형태이다. 아래쪽에 있는 솟을대문과 부속 건물 1동은 전통 가옥의 형태를 따랐다.

[현황]

박노열의 후손이 관리하고 있어 보존 상태가 좋다. 내부에는 중앙 정면에 정명(亭名)을 적은 대서 현판과 일성재를 건립하기까지 과정을 소상히 기록한 나갑주(羅鉀柱)의 '일성재기(日省齋記)'라는 기문이 걸려 있다. 박노열의 옛날 고서 일부만 책장에 보관되어 있어 2013년 박노열의 자손들과 문생들이 각처에 산재해 있는 잔여분을 수집하여 『이재유고(易齋遺稿)』를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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