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인한(金仁漢)[1899~?]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일명 김거봉(金巨奉)이라고도 불렸다. 3·1운동이 확산될 당시인 1919년 3월 28일 밤, 노온사리(老温寺里) 경찰주재소에 강제 구금된 이정석(李貞石)을 구출하는 사건과 관련하여 일제에 시위하다가 체포되었다....
개항기 광명 출신의 농민운동가. 성우경(成禹慶)[1842~1916]은 본관이 창녕(昌寧)으로, 시흥군 남면 유등리[현 광명시 학온동]에서 태어났다. 시흥군 남면 동학(東學)의 집강(執綱)으로 활동하면서 1898년(고종 35)과 1904년(고종 41) 두 차례에 걸쳐 다른 집강들과 함께 이른바 시흥농민봉기를 주도하였다. 1차 시흥농민봉기는 일본의 침략과 간섭이 노골화하던 1898년...
경기도 광명 지역 출신이거나 광명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 일제강점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의로운 활동을 한 사람. 예부터 광명 지역에는 이원익(李元翼) 등의 충신들과 송수회(宋秀誨) 등의 효자들이 많은 충효의 고장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는 많은 의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침략에 맞선 의인들이 많았다. 성우경(成禹慶)[1842~?]은 개항기의 항...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원(李宗遠)[1864~194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이원중(李元仲) 또는 이종운(李鐘雲)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7일 밤 아들 이정석(李貞石)이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순사보 최우창 등에게 체포되어 노온사리(老溫寺里) 주재소에 강제 연행되자, 이 사실을 같은 동네의 청년 최호천(崔浩天)·윤의병(...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일제에 의해 자행된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황제의 통치권이 크게 손상되었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에 따른 군대 해산으로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의병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장원겸(張元謙)[1866~?...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광명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주환(崔周煥)[1882~1950]은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같은 마을 사람인 이정석(李貞石)이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자 3월 28일 밤 최호천(崔浩天)·윤의병(尹宜炳)·이종원(李宗遠)·김인한(金仁漢)·최정성(崔正成)·유지호(柳志浩) 등과 함께 이정석 구출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