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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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1년 2작 혹은 2년 4작으로 밭농사를 짓는 농법. 근경법은 한국농업사에서 흔히 윤작법(輪作法) 혹은 돌려짓기라 불리는 농법의 하나로, 밭 이모작 농사에서 보리·밀 등 앞그루[전작(前作)] 작물을 수확한 후 재빨리 세 번의 쟁기질[세 가웃지기] 혹은 네 번의 쟁기질[네 가웃지기] 아니면 여섯 번의 쟁기질[여섯 가웃지기]에 의해 밭을 갈아 두둑을 만들고 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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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을 시조로 하고 우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단양 우씨의 시조는 우현(禹玄)이다. 우현은 고려 현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다고 한다. 단양 우씨는 우현 이후 6세손 우천석(禹天錫)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10세손 우현보(禹玄寶)가 공양왕의 부마가 되는 등 고려 시대의 유력한 성씨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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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대유(大猷), 호는 취석실(醉石室). 부친은 우정서(禹鼎瑞)이며, 백부 우정태(禹鼎台)에게 입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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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우하영이 국정의 개혁안에 관해 논술한 정책서.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대유(大猷), 호는 취석실(醉石室)이다. 아버지는 우정서(禹鼎瑞)이며, 큰아버지 우정태(禹鼎台)의 가계를 이었다. 1755년(영조 31)부터 과거공부를 시작하여 여러 번 응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시골의 유생으로 평생을 보낸 조선 후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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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우하영이 국정의 개혁안에 관해 논술한 정책서.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대유(大猷), 호는 취석실(醉石室)이다. 아버지는 우정서(禹鼎瑞)이며, 큰아버지 우정태(禹鼎台)의 가계를 이었다. 1755년(영조 31)부터 과거공부를 시작하여 여러 번 응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시골의 유생으로 평생을 보낸 조선 후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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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우성전과 조선 후기 실학자 우하영의 묘역. 추연우성전묘역(우하영묘역포함)은 단양 우씨 우성전(禹性傳)[1542~1593]과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무덤이다. 우성전은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예문관 검열, 홍문관 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군호(軍號)를 추의군(秋義軍)이라 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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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우성전과 조선 후기 실학자 우하영의 묘역. 추연우성전묘역(우하영묘역포함)은 단양 우씨 우성전(禹性傳)[1542~1593]과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무덤이다. 우성전은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예문관 검열, 홍문관 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군호(軍號)를 추의군(秋義軍)이라 하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