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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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화성 지역에는 초기 국가 시대부터 정치체가 성립하기 시작하였으나, 정치체의 명칭이나 위치 등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삼국 시대에 들어서는 백제-고구려-신라 순으로 통치하였는데, 백제 시대의 관련 유적이 가장 풍부하다. 화성 지역은 경기도권 내에서도 백제 유적의 밀집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이며, 여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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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기관. 원시 시대에는 생존 및 생산 기술 전승, 종교 의식의 전파, 집단 보호 기능 전수 등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후 인간이 역사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고대사회에 이르러 다양한 형태의 학교 교육이 출현하였다. 삼국 시대에 이르러 고구려의 경당(扃堂)과 태학(太學), 신라의 국학(國學)은 역사 기록이 보여주는 당시 교육 기관이다. 다만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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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기관. 원시 시대에는 생존 및 생산 기술 전승, 종교 의식의 전파, 집단 보호 기능 전수 등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후 인간이 역사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고대사회에 이르러 다양한 형태의 학교 교육이 출현하였다. 삼국 시대에 이르러 고구려의 경당(扃堂)과 태학(太學), 신라의 국학(國學)은 역사 기록이 보여주는 당시 교육 기관이다. 다만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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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가 존속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의 역사. 남양만을 끼고 있는 경기도 화성 지역은 고대 사회 이래로 서해안 교통의 중심지였다. 고려 시대에는중국과의 교역 통로로서의 기능도 있었지만,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漕運)의 중요 통로였고, 수시로 자행된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한 방어 거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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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 조선 초기 본관(本貫) 제도의 정착과 행정 구역 개편은 화성 지역 성씨 집단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 시대 화성 지역은 수원도호부와 남양도호부가 관할하였다. 조선 전기 수원과 남양 지역에 정착한 성씨는 『세종실록지리지』[1454]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들은 수원·남양을 비롯하여 속현인 쌍부·영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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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기도 화성시 일대인 수주(水州)의 호족. 김칠(金七)[?~?]은 기록에 따라 김칠(金柒)로 나타나기도 한다. 수주(水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으로, 현재의 경기도 화성시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을 말한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수주는 940년(태조 23) 고려 태조가 남쪽을 정벌할 때, 고을 사람인 김칠 최승규 등 200명과 귀순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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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행을 시조로 하고 홍덕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남양 홍씨는 크게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으로 나뉜다. 남양 홍씨가 당홍과 토홍으로 나뉜 데에는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전혀 다른 계파로 구분하고 있다. 당홍은 당나라에서 고구려로 건너온 8명 중 1명인 홍천하(洪天河)를 시조로 하는데, 홍천하가 남양[당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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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남양도호부(南陽都護府)는 조선 시대 지방 행정 구역으로,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마도면·비봉면·송산면·서신면 등을 관할하였다. 읍치는 남양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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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당성군(唐城郡)은 5세기 후반에 고구려가 백제로부터 한강 유역을 빼앗은 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다만,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당시부터 당성군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당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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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지역에 있던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당은군(唐恩郡)은 통일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으로,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로 비정된다. 고려 초에 당은군의 옛 이름인 당성군(唐城郡)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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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과 수원 지역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매홀군(買忽郡)은 삼국 시대에 고구려가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초기 국가 시대에는 마한의 소국 중 하나인 모수국(牟水國)이 있던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모수의 '모'와 매홀의 '매'가 음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모수국은 3세기 후반이나 늦어도 4세기 초에 백제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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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다양하게 나타난 무관들의 활약과 여러 전투로 형성된 무향으로서의 화성 지역. 화성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강 유역을 수호하는 주요 거점 지역이었다. 삼국 시대에는 한강 유역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요충지로, 조선 시대에는 적군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주목되었다. 그로 인해 화성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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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인 남양 방씨의 후손으로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활동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초명은 방중량(房仲良), 호(號)는 행은(杏隱). 당나라 태종대의 재상인 방현령(房玄齡)의 둘째 아들인 부마도위 방준(房俊)이 643년 고구려 보장왕의 요청으로 동래하여 경기도 화성시의 당성(唐城)에 정착하면서 남양 방씨(南陽 房氏)의 가계가 시작되었다. 중시조 방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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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북양리 비봉산에 있는 사찰. 봉림사(鳳林寺)는 신라 진덕여왕 때 고구려의 침략을 불도(佛道)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창건하였고, 궁궐에서 기르던 봉황새가 절 주위의 숲에 와서 앉아 봉림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남양도호부 불우조에 ‘봉림사재비봉산(鳳林寺在飛鳳山)’이라는 기록이 전하고, 같은 내용이 『범우고(梵宇攷)』에서도 확인된다. 불상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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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북양리 비봉산에 있는 사찰. 봉림사(鳳林寺)는 신라 진덕여왕 때 고구려의 침략을 불도(佛道)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창건하였고, 궁궐에서 기르던 봉황새가 절 주위의 숲에 와서 앉아 봉림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남양도호부 불우조에 ‘봉림사재비봉산(鳳林寺在飛鳳山)’이라는 기록이 전하고, 같은 내용이 『범우고(梵宇攷)』에서도 확인된다. 불상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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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우리나라의 불교는 삼국 시대에 전래되어 지역과 풍토 및 민족성 안에서 독특하게 전개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갈양사(葛陽寺), 창성사(彰聖寺), 만의사(萬儀寺) 등의 주요 사원이 화성 지역의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용주사가 1780년 정조의 명에 의한 중창 이래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최고의 사찰로 유지되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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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초기 국가 시대 소국. 상외국(桑外國)은 초기 국가 시대에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소국(小國)이다. 3세기 무렵 지금의 경기도에서 전라남도에 이르는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마한(馬韓)으로 불렸는데, 마한에는 54개의 국(國)이 있었다고 전한다. 상외국도 마한에 속한 국 중 하나였다. 상외국을 비롯한 이러한 국은 작은 규모의 ‘나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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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의 지명 유래와 관련한 이야기. 1981년 9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송산면(松山面) 명칭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505~506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1980년 6월 20일 송산면 사강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김찬모[남, 64세], 조사자는 성기열, 최명동, 김용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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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의 지명 유래와 관련한 이야기. 1981년 9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송산면(松山面) 명칭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505~506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1980년 6월 20일 송산면 사강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김찬모[남, 64세], 조사자는 성기열, 최명동, 김용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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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당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대 신라와 중국 간의 인적·물적 교류. 경기도 서남부에 자리한 화성 지역은 고대부터 남양만을 통해 중국 산둥반도의 등주(登州)나 청도(靑島) 등으로 오갈 수 있는 서해의 관문이었다. 남양만에서 산둥반도로 건너가는 항구는 화량진과 마산포가 대표적이었으며, 연안 항로와 서해 직단 항로가 모두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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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화성시의 역사. 화성시의 역사는 발굴 조사된 유적과 문헌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유적은 태안 지역, 봉담 지역, 향남 지역 및 길성리 토성 주변 지역, 서해안에 접한 우정읍-장안면 일대, 마도면-서신면 지역, 오산-동탄 지역 등에서 다수 조사되었다. 이러한 유적들을 통해 선사 시대 이래 사람들의 거주 양태와 정치 세력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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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초기 국가 시대 소국. 원양국(爰襄國)은 초기 국가 시대에 경기도 화성 지역에 있던 소국(小國)이다. 3세기 무렵 지금의 경기도에서 전라남도에 이르는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마한(馬韓)으로 불렸는데, 마한에는 54개의 국(國)이 있었다고 전한다. 원양국도 마한에 속한 국 중 하나였다. 원양국을 비롯한 이러한 국은 작은 규모의 ‘나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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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공자 사상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학문 및 의례 활동. 유교는 삼국 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져 보편화되었다. 고구려는 태학(太學)을 세워 유교적 교육을 실시했고 백제는 일본에 왕인 박사를 파견하여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고, 신라는 국학을 세웠다. 삼국의 유교교육으로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등 시문에 능하고 경전과 사기에 통달한 유학자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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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공자 사상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학문 및 의례 활동. 유교는 삼국 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져 보편화되었다. 고구려는 태학(太學)을 세워 유교적 교육을 실시했고 백제는 일본에 왕인 박사를 파견하여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고, 신라는 국학을 세웠다. 삼국의 유교교육으로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등 시문에 능하고 경전과 사기에 통달한 유학자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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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분포하는 인문 지리적 요소.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는 초기 국가 시대에 마한 54개 소국 중 원양, 모수, 상외 3개의 소국이 위치하였고, 고구려 시기에는 ‘당성’과 ‘매홀’로 편제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당은군[당성], 수성군[매홀]으로 개편되었으며,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당성군, 수주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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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청명산성은 산성의 축조 방식 및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 사이에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남양만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입지이다. 화성 지역 및 남양만 일대에 대한 통치 거점으로서 역할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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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청명산성은 산성의 축조 방식 및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 사이에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남양만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입지이다. 화성 지역 및 남양만 일대에 대한 통치 거점으로서 역할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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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기도 화성시 일대인 수주(水州)에서 활동한 호족. 수주 최씨(水州崔氏)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고려사』나 『세종실록 지리지』 등 기록에는 수주 최씨와 최승규의 직접적인 관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신라 말 고려 초 본관제의 성립 과정이나 현종 대 활약한 최사위(崔士威), 의종 대 활약한 최유항(崔裒抗) 등 후손의 묘지명에 나타나는 출신을 통하여 같은 가문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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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을 본관으로 하는 남양 홍씨의 시조. 남양 홍씨 당홍계(唐洪系)의 시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