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창녕 조씨 집성촌. 감도리는 감한리와 도방동 마을의 지명을 한자씩 취하여 감도리라 하였다. 하만골의 옛 이름은 감한리이다. 감한리는 감한사라는 절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창녕 조씨 판윤공파 감도리 입향조인 조수성(曺守誠)[1570~1644]은 화순현 녹구리[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에 거주하다가...
-
조선 전기 화순 지역에 이거한 곡부 공씨의 입향조. 공자(孔子)의 53세손인 창원백(昌原伯) 공소(孔昭)의 4세손이다. 아버지는 공완(孔浣)이다. 사성의 벼슬을 지냈다. 화순에 입성하여 살게 되었다....
-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지명(之明)·지천(芝川). 김완(金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영석(金英碩), 아버지는 김윤(金胤)이고, 어머니는 정인걸(丁仁傑)의 딸이며 부인은 조신(曹信)의 딸이다. 김공희(金公喜)[1540~1604]는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0년(선조 13)에 문과에 급제하여, 종사관(從事官), 영...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김응옥(金應玉)의 아들이다. 김규문(金奎文)[?~?]은 1876년(고종 13) 흉년 때 혼자서 화순현의 전세(田稅)와 포량(砲粮), 잡비를 합하여 쌀 471석과 콩 229석을 모두 대신 납부하였다. 이러한 행적이 널리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1878년 김규문에게 사천 현감을 제수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서남(瑞南). 사헌부 집의(執義)를 지낸 김정(金禎)의 후손이다. 김재수(金在洙)[?~?]는 타고난 품성이 순박하고 지기(志氣)가 고결하여 일찍이 문리에 밝아 경전과 역사서를 두루 섭렵했다. 만년에는 서석산(瑞石山)[무등산 별칭] 아래 동면(東面) 청궁리(靑弓里)에 은거하여 부귀현달(富貴顯達)을 구하지 않고 소...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선행인.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찬(聖贊). 감역(監役) 김정식(金廷植)과 자오재(子梧齋) 김인갑(金仁甲)의 후손이다. 김현리(金顯履)[?~?]는 타고난 성품이 관대하며 과묵(寡黙)하고 기개(氣槪)와 도량(度量)이 장대했다. 성품이 너그럽고 덕이 있어 베푸는 것을 좋아하여, 매번 흉년에 많은 곡식을 내어 빈곤한 사람을 구제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창서(昌瑞), 호는 부암(浮庵). 금호(錦湖) 나사침(羅士沈)의 후손이다. 나경(羅炅)[?~?]은 화순 출신으로, 일찍이 집안의 가르침을 받아 재주가 뛰어났고, 편안하고 고요히 분수를 지키며, 안빈 낙도 하였다. 『대학(大學)』의 「명명덕(明明德)」과 『중용(中庸)』의 「구경지도(九經之道)」에 관한 저술을 하였고,...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으로 호조 참판으로 증직된 인물 본관은 달성. 자는 형택(亨澤), 호는 계당(桂堂).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裵文祐)의 후예로 아버지는 배응신(裵應紳)이다. 배충신(裵忠信)은 효우(孝友)가 순독한 데다 학문(學問)을 부지런히 갈고 닦으니, 향당(鄕黨)이 천거하였다. 유생들의 추천으로 가선 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되었다....
-
화순 일대에서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 선행인(善行人)이란 타인에게 착한 행실을 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러한 사람으로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한 사람, 기근이 들었을 때에 곡물을 내어 기아자를 구제한 사람, 향교에 재산을 희사하여 교육을 도운 사람, 오갈 데 없는 어린이나 노인을 부양한 사람, 타인의 밀린 세금을 대납한 사람 등이 있었다. 이 가운...
-
개항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이견(利見). 아버지는 학생(學生) 유한수(柳漢樹)이고, 형은 생원(生員) 유사갑(柳思甲)이다. 유사룡(柳思龍)[?~?]은 성품이 너그럽고 화목하였으며, 효도하고 우애하였다. 1888년(고종 25)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통정대부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거쳐 가선대부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도곡(道谷). 환산정(環山亭) 유함(柳涵)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유난연(柳鸞演)이다. 유정운(柳鼎運)[?~?]은 경전에 널리 통달하여 후배들을 가르쳤다. 천성이 효순하여 양친을 봉양함에 달고 맛있는 것을 드리고, 안부 살피는 것을 늙도록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는 똥을 맛보아 병의 증세를 가...
-
조선 전기 화순 지역으로 입향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완(聖完), 호는 퇴일당(退逸堂). 완창대군(完昌大君) 이자흥(李子興)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문안공(文安公) 파성군(坡城君) 이사철(李思哲)이다. 이석공(李石公)[1438~1493]은 1462년(세조 8)에 문과에 급제하여 양주 목사(楊州牧使)에 제수되었다. 장수의 천거로 1477년에 특별히 전라 병마절...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연지(年之), 호는 동계(東溪).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으로, 진사 임회(林檜)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임명(林蓂)이다. 임대년(林大年)[1539~?]은 1606년(선조 39)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가 되었다. 전라남도 화순군 대리 대동 마을로 이거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평택(平澤). 초명은 상록(相祿), 자는 계천(啓天), 호는 농은(農隱). 두문재(杜門齋) 임선미(林先味)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고(林熇)이고, 어머니는 수원 이씨 이세익(李世益)의 딸이며 부인은 남평 문씨 문연겸(文演謙)의 딸이다. 임중록(林中綠)[1737~1775]은 초야에 은거하며 경학으로 스스로 즐겼다. 책 한 권을 저술하였...
-
조선 후기 화순 지역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흥덕(興德). 자는 면부(勉夫), 호는 일심재(一心齋). 안경공(安敬公) 장연우(張延祐)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사직(司直) 장몽량(張夢良)이며 부인은 보성 선씨(寶城宣氏)이다. 장희성(張希聖)[1558~1613] 충청도 공주(公州) 유구리(維鳩里)에서 출생하였으며, 천성이 강직하고 바르며 재주가 명민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미명(美命), 호는 경산(景山). 문헌공(文獻公) 정현영(鄭玄英)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환교(鄭煥敎)이다. 정낙규(鄭樂圭)[?~?]는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젊어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정성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경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성리학을 강론하고 연구하였다. 선생이 칭찬하여 ‘미명...
-
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이 하동(河東). 자(字)는 권숙(權淑), 호는 서은(瑞隱). 둔재(遯齋) 정여해(鄭汝該)의 후손이다. 정순백(鄭淳伯)[?~?]은 타고난 품성이 중후(重厚)하여 향교에 정성을 쏟았다. 특히 향교 대성전 석전제(釋奠祭) 행사에 쓰이는 제사 비용을 위해 전답 2두락을 헌납하였다. 미풍양속을 위해 노력하고 향교에 대해 베푼 정성과 그의 품행을 고...
-
조선 후기 화순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삼(從三), 호는 송계(松溪). 문헌공(文憲公) 정도전(鄭道傳)의 14세손으로, 양경공(良敬公) 정문형(鄭文炯)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정수항(鄭守恒)이다. 정응신(鄭應臣)[?~?]은 사직서 령(社稷署令)을 지냈으며 태인에서 처음 화순으로 들어와 우거하였다....
-
조선 전기 기묘사화로 화순 에 낙향하여 은거한 문신. 중종 때의 문신으로, 조광조의 칭찬을 받았으나 사직하고 낙향하였으며,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은거하였다.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백서(白墅). 옥천군(玉川君) 공희공(恭僖公) 조흡(曺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시어사(侍御史) 조연(曺衍)이며, 아버지는 화순 입향조인 사의(司議) 조온(曺穩)이다. 경주인(慶州人) 이...
-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신민(信民), 호는 벽송재(碧松齋).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건(曺健)이며, 아버지는 조세명(曺世明)이고, 어머니는 나주인(羅州人) 정도(鄭覩)의 딸이다. 진원인(珍原人) 박이경(朴而儆)의 딸 및 홍주인(洪州人) 송정수(宋庭秀)의 딸과 혼인하였다. 조경중(曺景中)[1533~1584]은 화순...
-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창휘(暢輝), 호는 낙호당(樂乎堂).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건(曺健)이며, 아버지는 조세명(曺世明)이다. 어머니는 나주인(羅州人) 정도(鄭覩)의 딸이며 부인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약(金約)의 딸이다. 조대중(曺大中)의 형으로, 화순 녹구리에서 태어났다....
-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문과에 급제하여 전도가 유망하였는데, 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를 역임하던 중 정여립 사건에 연루되어 장살(杖殺) 당하였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화우(和宇), 호는 정곡(鼎谷).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건(曺健)이며, 아버지는 조세명(曺世明)이고, 어머니는 나주인(羅州人) 정도(鄭覩)의...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천서(天瑞), 호는 낙재(樂齋). 구봉(九峯) 조엽(曺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정오(曺挺五)이며, 아버지는 조선춘(曺善春)이다. 조명옥(曺命玉)[1708~?]은 재주가 총명하여 10세에 문장을 지을 줄 알았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1762년(영조 38)에...
-
조선 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응행(應行), 호는 학탄(鶴灘). 아버지는 사마(司馬) 조세명(曺世明)이다. 조민중(曺敏中)[1541~?]은 문학으로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1573년(선조 6)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589년 기축옥사에 아우 조대중(曺大中)이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고, 자신도 의금부에 구금되었으나 여러 번 상소...
-
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회계(晦溪).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석윤(曺錫胤)이며, 아버지는 조치순(曺致淳)이다. 조병만(曺秉萬)[1829~1895]은 성재(性齋) 허부(許傅)의 제자로, 일찍부터 천재성을 발휘하여 일곱 살 때 천지인 삼재를 물었고, 12세 때는 규화시(葵花詩)를 읊었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칠(敬七), 호는 월계(月溪).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과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의 후손이다. 조선섭(曺善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창적(曺昌迪)이고, 아버지는 조희연(曺喜演), 어머니는 최종길(崔宗吉)의 딸이다. 조상진(曺相振)[1779~1847]은 1822년(순조 2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
개항기 병인양요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죽포(竹圃)이다. 조익은(曺翊殷)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조대진(曺大振)이다. 조석기(曺碩麒)[1859~?]는 1880년(고종 17)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후 1866년(고종 3)에 병인양요[1866]가 발발하자 셋째 아들 조양승(曺兩承), 조카 조의승(曺儀承)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는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학모(學模), 호는 영모재(永慕齋). 아버지는 조하필(趙夏弼)이다. 조석우(曺錫佑)[?~?]는 성품이 인자하고 행동이 돈독하며 학문(學問)이 해박(該博)하여 주위의 호평을 받았다. 여러 유자들이 호남 고사(湖南高士)라 칭하며 학행으로 천거한 결과 통정대부(通政大夫)가 주어졌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미(士美).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조수성(曺守誠)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조욱(曺煜)이고, 아버지는 조정우(曺廷佑)이다. 어머니는 함양 박씨 박융업(朴隆業)의 딸이고, 부인은 하동 정씨 정석현(鄭碩賢)의 딸이다. 조선휘(曺善徽)[1647~1700]는 1693년(숙종...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으로 병자호란 때 의병 활동을 했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칠원(漆遠). 조대중(曺大中)의 둘째 아들이다. 조수헌(曺守憲)[?~?]은 아버지가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己丑獄事)로 화를 만남을 애통히 여겨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폐하였다. 자취를 숨긴 조수헌은 대동산 아래에다 집을 짓고, 책 수천 권을 보관하여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으로써...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계의(季毅), 호는 사촌(沙村)·용헌(用軒).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조세명(曹世明)이며, 아버지는 조민중(曺敏中)이다. 어머니는 상산 김씨 김충걸(金忠傑)의 딸이며 부인은 문화 유씨 유응서(柳應瑞)의 딸과 홍주송씨 송방형(宋邦衡)의 딸이다. 정곡(鼎谷) 조대중(曺大中)의 조카이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오중(五重), 호는 율재(栗齋).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과 화순 입향조인 조온(曺穩)의 후손으로, 조세명(曺世明)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조굉중(曺閎中)이고, 아버지는 조수천(曺守天)이다. 어머니는 전의 이씨(全義李氏) 이섬지(李暹之)의 딸이고, 부인은 정민행(鄭敏行)의 딸이다. 조정(曺烶)[1610~1681...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학사(鶴沙). 옥천군(玉川君)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수훈(曺守訓)이고, 아버지는 조엽(曺熀)이며, 어머니는 장택 고씨(長澤高氏) 고부집(高傅楫)의 딸이다. 조정오(曺挺五)[?~?]는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고, 문과에 급제하여 발탁되었다. 늙은 나이에 천운산에 은거하였으며, ‘학사처사(鶴沙處士)...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선림(善林), 호는 죽계(竹溪). 문헌공(文獻公) 최충(崔沖)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윤범(崔尹範), 아버지는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된 최천부(崔天符), 어머니는 순창인(淳昌人) 임회(林檜)의 손녀이자 임철공(林鐵恭)의 딸이다. 최경장(崔慶長)은 최경회(崔慶會)의 중형(仲兄)이며 순창인(淳昌人...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은 해주. 자는 성원(聖源), 호는 담헌(澹軒)·창주(滄洲).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예이고, 최홍재(崔弘載)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최용창(崔龍昌)이고, 아버지는 최사석(崔師錫)이다. 최시준(崔時濬)[1754~?]은 학문이 정밀하고 문장이 호방하였다.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禮學)을 깊이 연구하였다. 송환기...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관인. 최홍재(崔弘載)의 현손이고, 최휘(崔撝)의 아들이다. 최언당(崔彦曭)[?~?]은 1728년 무신난(戊申亂)[이인좌(李麟佐) 등의 소론(少論)이 주도한 반란]이 일어 났을때 난의 괴수 몽필(夢弼)이 죽도(竹島)에 도망하여 숨으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사로잡아 바치는 군공을 세워 충의위에 제수되었다....
-
조선 전기 해주 최씨 화순 입향조.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공도(公度).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13대손이고, 아버지는 좌통례(左通禮)에 추증된 최혼(崔渾)이다. 손자에 최경운(崔慶雲)·최경장(崔慶長)·최경회(崔慶會)가 있다. 최윤범(崔尹範)[?~?]은 문장과 필법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1501년(연산군 7)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훗날 손자 최...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덕주(德周), 호는 사촌(沙村).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예이고, 최윤범(崔尹範)의 증손자이다. 아버지는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이고, 아우는 최홍식(崔弘式)이다. 최홍기(崔弘器)[1562~?]는 가정에서 수업에 정진하여 학식이 고명하였다. 1589년(선조 22)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이 해주(海州). 고려 시대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을 후손이며 아버지는 최경일(崔慶日)이다. 최홍이(崔弘頤)[?~?]는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며 중후하고 학문은 고상하고 빼어났다. 만년에 소곡촌(所谷村)에 송호재(松湖齋)를 지어 후손들과 후진들을 가르치며 즐거움을 삼았다. 늙도록 학문과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덕흥(德興), 호는 죽은(竹隱).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천부(崔天符)이고, 아버지는 진사 최경운(崔慶雲)이며, 어머니는 달성 배씨 배온(裵溫)의 딸이고, 천안 전씨 전응각(全應角)의 딸과 파평 윤씨 윤덕순(尹德純)의 딸, 그리고 청주 한씨 한영(韓瀛)의 딸과 혼인하였다. 최경회(崔慶...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치행(穉行), 호는 규남(圭南). 금사(錦沙) 하윤구(河潤九)의 7세손이고, 아버지는 하진성(河鎭星)이며, 어머니는 고휘겸(高撝謙)의 딸이고, 부인은 제주 양씨 양달제(梁達濟)의 딸이다. 진양 하씨는 군수(郡守) 하치(河治) 때 동복에 입향하여 대대로 이곳에 살았다. 하백원(河百源)[1781~1845]은 동복...
-
조선 전기 기묘사화를 피하여 전라도 화순 지역에 입향한 문인.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춘영(春英), 호(號)는 도곡(道谷)이다. 학사(學士) 형옹의 후손으로서 충청 병사(忠淸兵使) 형군철(邢君哲)의 5세손이고 아버지는 벽동 현감(碧潼縣監) 자홍(邢自弘)이다. 형세영(邢世英)[1507~1581]은 1519년경 기묘사화의 변을 피하여 나주 남평 우산리 골모리를 거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