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 김근배(金根培)[1847~191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광원(光元), 호는 매하(梅下)이다. 아버지는 김현교(金顯敎)이고, 아들은 김종호(金鍾昊)이다. 김근배는 1847년 7월 15일 지금의 익산시 모현동에서 태어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조옥승(曺玉承)에게서도 시문을 배웠다. 1866...
-
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시복(金時福)[1885~?]은 1885년 전라북도 익산군 남일면 용자포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서 1909년까지 2년 동안 전국적으로 펼쳐진 의병 항쟁 중 호남 지역은 그 어떤 지역보다 전투가 치열하였다. 호남 의병을 토벌하기 전에는 한일 합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2개월 동안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성(金龍成)[1911~1943]은 1911년 8월 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현영동에서 태어났다. 김제 백구면에 있는 부용공립보통학교(芙蓉公立普通學校)[현 부용초등학교] 재학 중 안영묵(安榮黙)의 영향으로 강한 항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부용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에 가입하여 농민조합을 조직하고...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교육자. 김원룡(金元龍)[1909~195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아버지는 유헌(悠軒) 김종원(金鐘遠)이다. 김원룡은 1909년 지금의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서 태어났다. 1916년 여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22년 전주공립농업학교 중퇴 후 1923년 전주도립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926년 김제 월촌공립보통학교에,...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효자. 김종하(金鐘河)[?~?]는 익산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정3품 상계(上階)인 당상관에 올랐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사헌부감을 지냈으며 효행으로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석하마을에 1892년 세워진 김종하 효자각(金鐘河孝子閣)이 있다. 비각에는 “효자통정대부사헌부감김공종하지려(孝子通政大夫司憲府監金公鐘河之閭)”...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한규(金漢奎)[1900~1961]는 1900년 1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6월경 김한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입국한 김진성(金振聲)을 중심으로 고정식, 이순명, 김교우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대해 논의하였다. 김한규 등은 1920년 8월 14일 군산에서 완구용 육혈포...
-
근현대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유학자. 김형재(金亨在)[1909~1988]는 전라남도 나주 출신의 현대 유학자로, 말년을 익산에서 보냈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일청(一靑)이다. 김형재는 1909년 나주에서 태어났다. 전라북도 순창 출신의 성리학자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학맥을 이은 율계(栗溪) 정기(鄭琦)[1879~1950...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화곤(金華坤)[1899~1944]은 1899년 10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경의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세이소쿠영어학교]에 유학 중 일본인들에 의한 동포들의 차별과 수모를 직접 경험한 후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을 결심하고 1926년 학교를 중퇴하였다. 귀국한 김화곤은 1927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환(盧桓)[1916~1994]은 1916년 12월 13일 지금의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서 태어났다. 전주북중학교 교사로 재직 당시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며 다가올 조국 독립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다가 1942년 10월 31일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43년 9월 20일 일제는 유치장에 있는 노환에게 교...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도현(朴道玄)[1865~1919]은 1865년 2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1919년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수문(朴水文)[1897~1937]은 1897년 7월 7일 지금의 익산시 용동면 화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유학 중 3.1운동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문용기(文容基)·박도현(朴道玄)·서정만(徐廷萬)·장경춘(張京春) 등의 주도로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에 열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기독교인과 학생 등 200여 명...
-
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장. 박이환(朴駬桓)[1873~1953]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야은(野隱)이다. 아버지는 박윤서(朴潤瑞), 형은 박영환(朴永桓)이다. 박이환은 1873년 3월 12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06년 4월 25일 정읍군 태인면 종성리에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규홍(李圭弘)·문형모(文亨謨) 등...
-
조선 시대 익산 출신의 효자. 박종국(朴宗國)[?~?]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익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고 한다. 엄동설한에 병에 걸린 아버지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구해와 봉양하였고, 앵두가 먹고 싶다고 하자 뒷마당에 있는 앵두나무 아래에서 수일을 정성으로 빌고 또 빌어서 앵두 세 송이가 열리자 아버지에게 봉양하여 병을 낫게...
-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열녀. 김소사(金召史)[?~?]는 업무(業武) 방한창(方漢昌)의 부인이다. ‘소사’는 당시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이르는 호칭이며, 실명은 알 수 없다. 김소사는 열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길쌈과 품팔이를 하며 홀로 남은 어머니를 봉양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방한창과의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셨다. 결혼한 지 3년...
-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교육자. 백남혁(白南赫)[1907~1982]은 1951년 이리농과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목인(牧人)이다. 백남혁은 1907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서 태어났다. 1927년 고창고등보통학교(高敞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2년 동경농업대학(東京農業大學)을 졸업하였다. 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규섭(邊圭燮)[1911~1945]은 1911년 3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5월, 전주고보(全州高普)를 퇴학한 이석용(李碩鎔)을 만나 조국의 독립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청년 및 노동자 등 민중의 단결을 촉구하는 격문을 제작해서 7월 17일 금마면 장터에 게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재석(徐載錫)[1909~1968]은 1909년 2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 학생들이 광주여고보 3학년인 박기옥(朴己玉) 등을 희롱하자 이를 본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등과 싸움이 벌어졌다. 이는...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정만(徐廷萬)[1889~1919]의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서공유(徐公有)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서정만은 1889년 6월 13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현 익산시 오산면]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서정만은...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선백중(宣百仲)[1890~1931]은 1890년 7월 15일 익산군 황화면[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났다. 1921년 5월경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하였다. 조선독립단은 홍주의병(洪州義兵),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에 참여했던 이내수(李來修)가 대동단(大同團) 사건 이후...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효자. 소국민(蘇國民)[1596~1677]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아버지는 소동준(蘇東俊)이다. 소국민은 1596년(선조 29)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 용양위부호군(龍讓衛副護軍)에 이르렀다. 아버지 소동준이 병들어 사경을 헤매자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그 피를 먹이면서까지 극진히 간호하였...
-
조선 후기 익산 지역의 열녀. 여흥민씨(麗興閔氏)[1572~1592]는 1572년(선조 5) 익산에서 태어나 소행진(蘇行震)[?~1592]의 둘째 아들인 소동(蘇同)과 결혼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시아버지 소행진은 같은 고향 사람인 이보(李寶)와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여 이치(梨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소행진의 전사 소식을...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효자. 소동헌(蘇東獻)[1581~1621]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호는 오봉(五峯)이다.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의 후손이다. 삼촌은 소동준(蘇東俊)이다. 소동헌은 1581년(선조 14) 익산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 어머니가 중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두 차례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피를 먹이기도 하였다. 어머...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열녀. 해평윤씨(海平尹氏)[1692~1720]는 1692년(숙종 18)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평안병마사 소두산(蘇斗山)의 아들인 소상삼(蘇相參)과 결혼하였다. 결혼한 뒤 남편 소상삼이 병이 들자 매일 기도하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다. 남편이 사망하자 음식을 거부하며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1720년 해평윤...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진형(蘇鎭亨)[1886~1936]은 1886년 6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으로 이주하여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안종운(安鍾雲)과 함께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을 지원하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일제에 노출되자 소...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의병장. 소행진(蘇行震)[?~1592]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세득(蘇世得), 아버지는 소종선(蘇宗善)이다. 아들은 소계(蘇繼)와 소동(蘇同)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행진은 같은 금마면 출신인 이보(李寶)와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고 가산(家資)을 정리하여 군량과 병기를 마련한 후 금산(錦山)에...
-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종교인. 송동환(宋東煥)[1861~1950]은 전라북도 진안 출신의 원불교인이다. 법명은 혜환(慧煥)이고 법호는 공산(公山)이다. 송동환은 여덟 살 때부터 한문을 배웠고 1919년 마령보통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오랫동안 한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농업전수학원(農業專修學院)에서 1년간 학습하기도 했다. 1926년 친구인 전음...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향토사학자. 송상규(宋祥圭)[1929~1998]의 호는 상산(常山)이며, 아버지는 송병옥(宋炳玉)이다. 사학자인 송호정이 아들이다. 송상규는 1929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1954년 익산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익산고등학교에서 교사 및 교감을...
-
조선 시대 익산 출신의 효자. 신종영(申鐘永)[?~?]은 익산 출신의 효자이다.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신종영의 효행과 가계는 물론이고 생몰년 또한 확인할 수가 없다. 효자비의 명문으로 미루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효자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현재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의 국도변에 신종영 효자비(申鐘永孝子碑)가 있다. 효자비는 화강암으로 만...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창섭(嚴昌燮)[1892~1973]은 1892년 12월 12일 태어났다. 익산 제석교회 출신의 기독교인이며, 엄병옥(嚴秉玉)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칠중(嚴七仲)[1898~1961]은 1898년 1월 1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으로 간 엄칠중은 강금옥을 통해 만난 엄창섭(...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오덕근(吳德根)[1861~1950]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오길영(吳吉泳)이다. 여동생은 오덕순(吳德順)이고, 아들은 오성환(吳成煥)이다. 오덕근은 1861년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길영이 고창군수로 부임하면서 전라도로 이주하였다. 오덕근이 아홉 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종교인. 오원집(吳元集)[1885~1953]은 1885년 지금의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에서 태어났다. 할머니 집을 방문하였다가 만지산교회[현 지경교회] 교인들의 전도를 받았다. 만지산교회는 최관보, 정치선, 강채오, 정백현, 이양화와 부인인 최매리, 최흥서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오원집은 만지산교회에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종교인. 오지영(吳知泳)[1868~1950]은 1868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서 태어났다. 1891년 3월 12일 형인 오시영(吳時泳)과 오사영(吳泀泳)의 뒤를 이어 동학에 입도하였다. 1893년 11월 14일 일어난 익산농민항쟁의 우두머리로 활약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대접주(大接主) 김방서(金邦瑞) 휘하의 중견 간부...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강만(李康晩)[1921~1956년]은 1921년 5월 21일 익산군 황화면[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청남도 논산군에 편입]에서 태어났다. 1941년 공주농업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이강만은 7월 27일 오후 7시경 친구인 영촌량부(榮村亮夫), 송본길생(松本吉生)과 함께 당시 음식점을 하던...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겸중(李謙重)[1912~1948]은 1912년 10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4월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김규선(金圭鮮), 최월상(崔月上), 정재향(鄭在鄕), 고창동(高唱東), 박재선(朴在善) 등과 함께 학교 내에 공산주의연구독서회(共産主義硏究讀書會)를 조직하였다. 김규...
-
임진왜란 때 익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이보(李寶)[?~1592]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거(伯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이수장(李壽長)이고,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이기(李巙)이다. 아버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정화(李廷華)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동생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묵재(黙齋) 이귀(李貴)이다...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영택(林榮澤)[1901년~1957]은 1901년 10월 9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23년 일제의 관립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1924년 설립되어 1946년에 국립 서울대학교로 통합] 설립 계획에 반대하여 이상재(李商在)·이승훈(李昇薰)·조만식(曺晩植) 등의 민족주의자들이 조직한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의 창...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혁근(林赫根)[1898~1934]은 1898년 1월 3일 익산군 익산면 마동리[현 익산시 마동]에서 태어났다. 1924년 1월 1일 익산읍에서 조용관(趙容寬)·임종식(林宗植)·김영휘(金永輝) 등 9명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를 조직한 뒤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5년 12월 17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경춘(張京春)[1887~1919]은 1887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엄한...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은거한 학자이자 애국계몽운동가. 정교(鄭喬)[1856~1925]의 본관은 하남(河南)이며 호는 추인(秋人)이다. 정교는 1856년(철종 7) 7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1894년 궁내부주사를 시작으로 1895년 4월 수원부 판관을 역임하였으며, 7월에 장연군수에 임명되었으나 8월에 을미사변이 발생한 후 사임하였다. 정...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이 본관인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정비. 정순왕후(定順王后)[1440~1521]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1441~1457]의 정비(正妃)이다. 정순왕후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 송계성(宋繼性)이고, 할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송복원(宋復元)이다. 아버지는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壽)이며, 어머...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종교인. 정용근(鄭瑢根)[1873~1938]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문진(文振), 천도교의 도호(道號)는 양암(樑菴)이다. 아버지는 정순경(鄭淳敬),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족보상의 이름은 정두채(鄭斗采)이고, 동학 내에서의 이름은 정양채(鄭亮采)이다. 정용근은 1873년 11월 1일 지금의 익산시 신동에서 태...
-
조선 후기 익산 지역의 열녀 밀양박씨(密陽朴氏)는 남편인 정유증(鄭有曾)이 병들어 사경을 헤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남편의 대변(大便)을 맛보며 살피는 등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다. 밀양박씨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남편이 끝내 사망하자 장례를 치른 후에 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1891년(고종 28) 조정에서는 밀양박씨의 정절을 기려 정려를 내렸다. 현재 익산...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정종식(鄭琮植)[1863~1930]의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자는 경도(敬道), 호는 가은(稼隱)이다. 정종식은 1863년(철종 14) 익산군 북일면[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고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당상관에 올랐다. 통정대부(通政大夫) 및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판서 정덕성(德成)의 아들 정지평(鄭持平), 사헌부지평 정제...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진용(鄭晉容)[1893~1965]은 1893년 7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에서 태어났다. 황해도 서흥군(瑞興郡)의 계명학원(啓明學院) 교사로 일하고 있던 1932년 7월에 동지들과 함께 조국의 독립과 민족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교육자동지회(敎育者同志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2년 8월 정진...
-
고려 후기 익산 지역의 열녀. 여산송씨(礪山宋氏)는 스물한 살 때 생원 정희중(鄭希重)과 결혼하였다. 정희중이 병들어 죽자 딸을 가엾게 여긴 친정 부모가 송씨를 재가시키기 위해 다른 집안에 납채(納采)까지 보냈지만 사양하였다. 『익산시사』에는 정희중이 고려 말 일본 정벌에 참가해 전사했다고 전하나, 『세종실록』에는 병들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송씨는 홀로 남...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남헌(趙南憲)[1923~1996]은 1923년 1월 10일 지금의 익산시 남중동에서 태어났다. 1937년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에 입학한 뒤 송정섭(宋正燮) 등과 교류하면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운 일제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반대하며 독립운동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1940년 1월 말경에는 전주(全州)에서 이상훈(...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관(趙容寬)[1885~1950]은 1885년 6월 29일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익산 지역의 3.1운동의 주동자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1920년 8월 군산노동공제회(群山勞動共濟會)를 창립하였고, 1924년 군산노동연맹(群山勞動聯盟) 대표로 활동하면서 조선노농총동...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장. 조재영(趙載榮)[?~1909]은 익산 출신으로, 호는 춘파(春坡)이다. 1908년 둘째 아들인 조승호(趙承鎬)와 함께 익산에서 항일 의병을 일으켰다.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민종식(閔宗植)이 패전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자, 조재영은 민종식 부대의 의병 40여 명을 모아 의전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익산의 이규홍(李圭弘), 임실의 이...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경제인. 지태순(池泰淳)[1902~1979]의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호는 익성(益城)이다. 아버지는 지창석(池昌錫)이다. 아들은 지성양(池成洋)이며, 손자는 지승룡(池承龍)이다. 지태순은 1902년 6월 2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구한말에 한학을 공부하였고 익산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효자. 최구한(崔龜漢)[?~?]은 본관이 해주(海州)이며, 1604년(선조 37)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이 되고 해릉군(海陵君)에 봉해진 최빈(崔賓)의 후손이다. 최구한은 익산에서 태어났다. 음사(蔭仕)[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로 가선대부 행돈녕(嘉善大夫行敦寧)이 되었고, 1790년(정조 14) 동...
-
조선 후기 익산 지역의 열녀. 조선 영조 대에 익산에 거주하던 완산이씨(完山李氏)는 중병에 걸린 남편 최덕관(崔德觀)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고 허벅지의 살을 베어 먹이는 등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다. 완산이씨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남편이 사망하자 눈물로 지내던 완산이씨는 소상(小祥)[고인 사망 1년 후 첫 기일에 지내는 상례 절차]이 다가올...
-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의 고승(高僧). 혜소(慧昭)[774~850]의 법호는 혜소(慧昭)이고, 시호는 진감(眞鑑)이다. 아버지는 최창원(崔昌元)이며, 어머니는 고씨(高氏)이다. 혜소는 774년(혜공왕 10) 2월 24일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어머니 고씨의 꿈에 한 승려가 나타나 고씨의 아이가 되기를 원한다며 유리 항아리를 건넨 후 임신을...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효자. 황세헌(黃世憲)의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버지 황정준(黃廷濬)이 사망하자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묘를 다녀 묘소까지 새 길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1879년(고종 16) 익산향교에서 황세헌의 효성을 기리는 효자비(孝子碑)를 세웠다.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오룡리 구정마을 뒷산에 1941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염규(黃濂奎)[1922~2003]는 1922년 11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에서 태어났다. 치문학교(致文學校)[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의 치문초등학교] 교원으로 일하던 중 1943년 10월부터 1944년 2월까지 5학년 수업시간에 일제를 비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정환(黃廷煥)[1905~1948]은 1905년 1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중동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 5월 16일 순종황제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중앙고등보통학교의 이동환(李東煥)·박용규(朴龍圭), 중동중학(中東中學)의 곽재형(郭載炯)·김재문(金裁文)·황정환(黃廷煥) 등...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하규(黃河奎)[1921~1950]는 1921년 12월 29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43년 5월 15일에 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에 입대한 뒤 중국 하남성(河南省) 봉구현(封丘縣)에서 광복군의 초모 공작 활동에 참여하였다. 1944년 3월에는 중국 난징[南京]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였으며,...
-
조선 후기 익산 지역에서 태어난 조선 제24대 왕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1831년~1904]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병채(洪秉寀)이고, 할아버지는 함열현감을 지낸 홍기섭(洪耆燮)이다. 아버지는 익풍부원군 홍재룡(洪在龍)이며,어머니는 예조판서 안광직(安光直)의 딸 연창부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효정왕후는 1831년(순조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