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사찰. 1945년 7월에 노노당(老老堂) 대휘(大徽) 선사가 소악사(小岳寺)라고 불리던 절터 위에 초막을 지었다. 1947년에 관음전(觀音殿)을 짓고, 1989년에 설법보전(說法寶殿)을 지었다. 1990년에는 대광명전(大光明殿)을 지어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고, 범종각(梵鐘閣)을 지어 범종(梵鐘...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명상(權命相)[1883~1951]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많은 운동가들이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거둘 때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활동하였다.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내의 역량을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던 시기이었다. 1919년 가을 정인옥(鄭寅玉)에게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특파원...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권상하(權尙夏)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권도상(權道相)이다. 공화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 전개된 3·1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나라 안팎에서 여러 개의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서울에서는 3·1 운동의 감동 속에서 한성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때 권희목(權熙穆)[1891~1930]은 이규갑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인천의...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 서구적인 신식학교가 19세기 후반 우리 사회에 도입된 이후 갑오교육개혁, 대한제국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학교 체제로 정착해 나가게 된다. 신식 학교를 처음 접했을 때 조선의 민중들의 시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식 학교는 외세와 침탈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식 학교에 대...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언형(金彦型)[1892~?]은 1920년 7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김덕선, 정호척, 김재현, 주효점, 지달하 등과 함께 대한독립신민단을 조직하였다. 본부는 노령에 두었으며 북간도 연길현 옹성패자명월구에 참모부를 설치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신민단은 이민족 지배 반대, 국내외 자본주의 및 군국주의 타파, 계급 제도 타파, 빈곤 해결을...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진목(金鎭睦)[1899~?]은 제천 남천 출신으로 주로 미주에서 활동하였다. 3·1 운동 때 경성공업전문학교 졸업반 학생으로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대한문까지 행진하다가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어 이틀간 구금되었다. 석방된 후 일본어 서적을 모두 불태우고 졸업반인데도 총독부 관립 학교라 하여 나가지 않았다. 경성공업전문학교에 다...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상언(南相彦)은 3·1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7일 제천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경찰이 감당하지 못하자 수비대까지 출동하여 진압했다. 이때 체포되어 태형을 받았다....
-
일제 강점기 3·1 운동 이후 제천청년회가 개설한 야학. 1907년 한국 초유의 노동 야학 기관인 마산노동야학이 창립된 이후 주로 1920년대에 전국 각지에 청년회가 조직되면서 애국 계몽 활동을 전개하는데 그 일환으로 노동 야학을 개설하여 민중을 교화하고자 하였다. 제천청년회도 1920년 창립 이후 각종 활동을 전개하면서 노동 야학도 설치하고 지역의 계몽을 위해 노력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김해일의 문집. 김해일(金海一)[1640~1691]의 본관은 예안이며, 자는 종백(宗伯), 호는 단곡(檀谷)이다. 아버지는 김단(金鍴)이며, 아들은 학고(鶴皐) 김이만(金履萬)이다.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중앙 정계에서 물러난 1680년 겨울부터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제천의 경치에 매료되어 10여 년간...
-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철도 수화물 처리와 관련된 건물. 일제 강점기 일본은 식민지 경영이라는 목적 하에 주요 자원을 가져가기 위해 철도 건설에 역점을 두었다. 특히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해서 건설한 중앙선은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경기도 등 동부 지역 일대의 지하자원 수탈과 만주~일본을 잇는 교통선을 개발하기 위해 1936년 착공하였다. 1941년 9월 1일에...
-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이거나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구한말 항일 의병의 본거지였던 제천 지역은 다양한 형태의 항일 독립운동이 전개됨으로써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권 회복의 날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 국권 상실 직후에는 의병론자들이 개화론자들과 연대하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나 일제의 강력한 탄압에 눌려 복벽(復辟)운동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이후 1919...
-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 학생들이 단행한 동맹 휴학. 1926년 순종(純宗)의 인산(因山)을 앞두고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두 차례에 걸쳐 맹휴 투쟁을 일으켰다. 1차 맹휴는 일부 부적절한 교사들에 대한 배척이 표면적인 이유였고, 2차 맹휴는 순종 황제에 대한 일본인 교장의 불경한 언동과, 제반 학사에 대한 교장의 고압적이고 비교육적인 처사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1...
-
일제 강점기에 충청북도 제천에 있던 공립 보통학교의 전단계적 성격의 교육 기관. 모범서당은 제천에 봉양모범서당과 수산모범서당이 있었으며 이를 모태로 봉양공립보통학교와 수산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또 제천간이학교 역시 모범서당을 모태로 출발하였다. 제천에서 모범서당과 관련된 기록은 1919년의 봉양공립보통학교와 1922년의 수산공립보통학교에 관한 것들...
-
1944년 정해봉(鄭海鳳)이 금수산에 있는 무암사의 정경을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무암사(霧巖寺)」는 무암사 앞 절벽에 새겨져 있는데, ‘갑신(甲申) 2월 11일 정해봉’이라는 암각의 기록을 보아 정해봉[1888~?]이 56세 되던 1944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암사」가 오래 전부터 『제천군지』 등에 전하는 것으로 보아 정해봉은 제천 출신의 문인이었을 것으로...
-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개되었거나 제천 지역 출신자가 전개한 민족 해방 운동.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제천 지역에서도 여러 가지 민족 운동들이 일어났다. 비타협적 무장 투쟁 노선의 원류가 된 의병을 비롯하여 3·1 운동이 일어났으며 학생 운동, 청년 운동 등의 사회 운동과 교육 운동도 일어났다. 3·1 운동은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던 이범우(李範雨)가 서울에...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선학원 소속 사찰. 보덕암(寶德庵)의 연원은 신라 시대 왕리조사(王利祖師)가 수행한 보덕굴에서 비롯한다. 왕리조사가 수행한 곳에 1918년 보덕암을 축조하였다고 전하며, 지금의 사찰은 1979년 무허가 사찰이 헐린 후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보덕암은 관음도량이며, 왕리조사가 수행하였던 곳에서 연유하였다고 하...
-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충청북도 제천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제천은 항일 의병의 전통이 있는 곳이었으므로 일제에 대한 저항감이 높았다. 무단 통치를 겪으면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고 전통적인 충군애국(忠君愛國) 사상으로 인하여 고종(高宗)의 죽음에 대한 추모의 정서가 높았다. 이러한 가운데 신식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만세 운동을 주도하면서...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지곡리에 있는 신창 표씨 문중의 재실. 원래 현재의 위치에서 아래쪽으로 50여 m 지점의 고수골 충주댐 수몰 지구에 있던 것을 1983년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위치는 골짜기로 종가 소유의 땅에 수몰을 피해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제천시 수산면 지곡리 마을 끝자락에 같이 이건한 행랑채, 김진국 가옥 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남동쪽...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권섭의 문집. 권섭(權燮)[1671~1759]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월(百越)이다. 본래 한양에 거주하다가 정치에 환멸을 느껴 1714년 당시 큰아버지 권상하(權尙夏)가 있는 청풍 황강리로 낙향하였고, 말년에는 제천 봉양에 거주하였다. 여기에서 권상하의 학풍을 시풍으로 계승하였다. 산수 유람과...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단양(端陽). 호는 단운(檀雲), 이명은 우연준(禹連俊). 아들로 우대영(禹大榮)을 두었다. 우덕순(禹德淳)[1879~1950]은 어려서 상경하여 잡화상을 경영하면서 독립 협회 등 애국 계몽 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04년(고종 41)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연초 행상을 하다가 안중근·이범윤 등과 만났다. 그곳에서...
-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의 문집.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庵)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며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14살 때 화서 이항로(李恒老)에게 수학하였으며, 그 뒤 김평묵·유중교(柳重敎)에게 수학하였다. 1962년...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하(李起夏)[1897~?]는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권종필(權鍾弼), 전필현(全弼鉉) 등과 4월 17일 제천 장날에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는데, 중간에 발각되어 관련자가...
-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맹삼(李孟三)[1867~1919]은 일명 이희민(李喜敏)이라고도 한다.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4월 17일 제천군 제천면 장날 장터에서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 거...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범우(李範雨)[1892~1969]는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부명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천군 잠업계 조수로 근무하였다. 1919년 봄 제천군 대표로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려고 서울에 갔다가 평소에 사숙하던 최린(崔麟)을 만나 만세 운동을 권유받았다. 최린은 3·1 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계열의 인사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성구(李晟九)[1924~1978]는 일제가 대륙 침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미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조선인을 전쟁터로 끌어내던 1943년 10월 일본군에 강제로 징집되어 중국 산시성[山西省] 안읍지구(安邑地區)에 주둔하던 일본군 3541부대에 배속되었다. 이때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광복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44년 11월...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준(李容俊)[1907~1946]은 본관이 광주(廣州)이며, 1925년 3월 제천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제천군청에 근무하다가 신간회에 가담하는 등 민족 운동을 하였다. 1930년 『동아일보』 봉천지국(奉天支局) 보급원으로 만주에 갔다. 이듬해 원심창(元心昌)의 권유에 따라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종사할 것을 결심하...
-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용태(李容兌)[1890~1964]는 호는 단암(檀菴)이며, 충주시 산척면 광동 출신으로 어려서 봉양으로 이사하였다. 임의상(林宜常)·이소응(李昭應) 등 화서학파 학자들에게 배웠으나 나라가 망한 후로는 구학문으로 나라를 건질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개혁에 뜻을 두었다. 24세 때 근좌면 면서기로 공직에 나섰으며, 1920년...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주면(李柱冕)[1900~1947]은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등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난 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내의 역량을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활성화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주면은 1919년 12월 서울 인사동에 거주하...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우(李亨雨)[1890~1958]는 광복단(光復團)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다. 3·1 운동 후 창립된 광복단은 원래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祺中)·유창순(庾昌淳)·한훈(韓焄) 등이 조직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서 비롯한 것으로, 박상진(朴尙鎭)·양제안(梁濟安)·우재룡(禹在龍)·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 등이 가담하여 1...
-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행정 구역을 개편하고 여러 사회 간접 자본을 확충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천 지역에서는 항일적인 색깔이 분명한 이범우(李範雨) 등이 주도한 3·1 운동,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맹휴 투쟁, 김학간·김정호 등이 주도한 제천청년회...
-
한말 제천 의병에 참가하였던 의병장 주용규의 시문집. 주용규(朱庸奎)[1845~1896]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이다.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생부는 주기섭(朱箕燮)이며, 백부인 주종섭(朱宗燮)에게 입양되었다.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91년에는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손자인 주윤문(朱允文)이 유고를 수습하여 1931년에 간행...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필현(全弼鉉)[1894~?]은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이기하(李起夏)·권종필(權鍾弼) 등과 4월 17일 제천 장날에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준비 도중에 발각되어 관련자가...
-
일제 강점기 제천 지역의 열녀. 본관은 상산(商山). 남편은 정수영(鄭壽永)이다. 상산 김씨(商山金氏)는 28세 때 남편이 집을 나가 10년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이웃 사람들이 모두 재가하라고 권하였으나 거절하고 어린 자식을 데리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갔다. 10여 년 만에 돌아온 남편이 하루 뒤 다시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는데, 객사하였다는 소식을 들려오자 곧장 달...
-
충청북도 제천시 명동에 있는 엽연초 수납 업무를 취급하는 곳. 잎사귀를 자르지 않고 말린 담배를 지칭하는 엽연초(葉煙草)는 조선 시대인 1618년(광해군 10) 일본에서 전래된 이래 수익성이 높아 점차 경작이 확대되었다. 개항과 함께 일본에서 공장 생산된 담배가 들어오고, 1910년 한일 합병 이후에는 담배를 조세 확보의 한 방편으로 삼으면서 담배 재배를 통괄하는 엽연초...
-
충청북도 제천시 명동에 있는 제천 엽연초생산조합의 옛 사옥. 엽연초(葉煙草)는 잎사귀를 자르지 않고 말린 담배를 지칭하는 것으로, 조선 시대인 1618년(광해군 10) 일본으로부터 국내로 전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에는 주로 제한된 지역에서 자급자족을 목적을 위한 자가 생산 방식으로 경작되다 소비 증가와 높은 수익성으로 17세기 중반 이후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경작되...
-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3·1 운동 이후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에 대비하자는 실력양성론이 대두되어 전국적으로 각종 문화 계몽 운동이 확산되었다. 충청북도 지역에서도 50여 개의 청년 단체가 조직되어 지역의 교육 및 문화·사회 운동에 적극 나섰다. 제천청년회도 그러한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의 하나로 지역 사회에서 교육을 비롯한 계몽 활동을 전개...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지곡리에 있는 전통 가옥. 남한강 줄기를 낀 청풍면·한수면·수산면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선사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다. 또한 곳곳에 선사 시대의 집 자리 유적과 고인돌,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는 고분군들이 흩어져 있는 등 강줄기를 따라 많은 문화유적이 분포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수운...
-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인 유제함의 문집. 유제함(柳濟咸)[1884~1960]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사형(士亨), 호는 직와(直窩)이다. 생부는 유의석이며, 유인석(柳麟錫)의 양자가 되었다. 술헌 이배인과 회당 박정수에게서 수학하였다. 1990년 국민 훈장이 추서되었다. 필사본으로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유연수(柳然壽), 유남균(柳南均)이...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정자. 탁사정(濯斯亭)은 제천시에서 봉양읍을 거쳐 국도 5호선을 따라 원주 방면으로 15㎞가량 가다 보면 우측 용암천 변 높은 절벽 위 송림(松林) 속에 동남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1568년(선조 1)에 제주수사(濟州水使)로 있던 임응룡(任應龍)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
-
충청북도 제천에서 간행된 조선 후기 문인 정양의 문집. 정양(鄭瀁)[1600~1668]의 본관은 영일(迎日)이며, 자는 안숙(晏叔), 호는 부익자(孚翼子)·포옹(抱翁)이다. 할아버지는 정철(鄭澈)이며, 아버지는 강릉부사 정종명(鄭宗溟)이다. 초시(初諡)는 정절(貞節)이었으나 뒤에 문절(文節)로 개시되었다. 정양은 병자호란 이후 태백산에 은거하였는데, 이후 후손...
-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백정들의 사회 운동. 형평 운동은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창립되어 1935년까지 유지된 형평사를 중심으로 천민으로 박해를 받아오던 백정들이 인권 존중과 평등 대우를 주장한 사회 운동이다. 제천에서의 형평 운동은 1923년 형평사 제천분사가 결성된 이래 처음에는 강한 저항에 부딪쳤으나 빠르게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충청북도에서도...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철수(黃哲秀)는 본관이 창원(昌原)이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919년 제천읍 만세 운동에 참여하다가 제천 수비대에 체포되어 구금을 당하였다. 이때 7일간 단식으로 저항하여 제천 수비대에서 의사(義士)라고 일컬으면서 석방하였다고 한다....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필옥(弼玉), 호는 몽호(夢乎). 황학수(黃學秀)[1879~1953]는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 부위로 근무하던 중 1907년(순종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귀향하여 동명학교를 설립하는 등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3·1 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