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에 있는 신라 시대 석축 산성. 견제산성은 월악산 북쪽의 금수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봉우리 중에서 제천시 청풍면과 금성면, 그리고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를 이르는 동산[해발 896.2m]의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금수산의 중록(中麓) 세 봉우리 위에 있고 둘레가 약 5.8㎞쯤 된다고 기록되어...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와 구룡리를 연결하는 다리. 『여지도서(輿地圖書)』[1765년]에서는 “고교천은 청풍부 치소의 북쪽으로 10리에 있다. 제천현의 경계에서 발원하여 나와서 북진으로 들어온다. 옛날에는 돌다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무너지고 단지 명칭만 남아 있다. 고교천은 북쪽으로 8리에 있다. 백석동에서 발원하여 나온다”라고 하였다. 이보다 이른 시기에...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우랑(又閬)·우염(又髥)·번상촌장(樊上村庄)·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권상하(權尙夏)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양성(權養性)이고, 할아버지는 권제응(權濟應)이며, 아버지는 청풍 군수를 지낸 권중집(權中緝)이다. 어머니는 김재균(金載均)의 딸이고, 부인은 송수연(宋守淵)의 딸이다. 권돈...
-
제천 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회(思晦). 아버지는 부사 김상관(金尙寬)이고, 작은아버지인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양자로 들어갔다. 아들로 김수흥(金壽興)과 김수항(金壽恒)을 두었다. 김광찬(金光燦)[1597~1668]은 제천 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며, 병자...
-
조선 시대 제천의 열녀.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진위(振威) 김기호(金基鎬)의 처이다. 시집가서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공경으로 남편을 대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도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늙은 시어머니를 생각하여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였다. 이틀 후에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슬픔을 억누른 채 예로써 장례를 지내고 삼우제(三虞祭)까지 지낸 후에 스스로...
-
조선 후기 제천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득겸(得兼), 호는 묵묵재(墨墨齋).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김명주(金命冑)는 17세기 말엽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며, 자질이 뛰어나고 문장과 음악, 시가에 능하였다. 취병산(翠屛山)[금병산]에 은거하여 음영(吟詠)으로 여생을 소요하였다. 남휘당(覽輝堂) 이연(李演)이 그의 행장(行...
-
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효부. 본관은 청풍(淸風). 남편은 김병우(金秉祐)이고, 아버지는 김익한(金益漢)이다. 청풍 김씨(淸風金氏)는 시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항상 공손하게 내조하였다.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온몸을 정성껏 보살폈으나 효험이 없자 뒤뜰에 제단을 마련하여 3년간 천지신명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하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정성껏...
-
청풍에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회(而晦). 아버지는 빙고 별검(氷庫別檢) 김전(金㙉)이다. 김중명(金重明)[1614~1685]은 1645년(인조 23) 무과에 급제하고, 송시열(宋時烈)의 천거로 효종의 북벌 계획에 참여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다. 1671년(현종 12) 영흥 대도호부사로 재직 중 관내 사노(私奴)가 주인을 죽인 사건으로...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정숙(正叔), 호는 팔탄(八灘). 남숙관(南肅寬)은 18세기에 활동한 사람으로 1779년(정조 3) 청풍향교 명륜당 중수기를 찬술하였다. 벼슬은 음사로 나아가 영춘 현감을 지냈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박정무(朴貞武)는 아버지가 편찮을 때 배와 꿩고기가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온갖 어려움 끝에 구해다가 봉양하였고,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모셨다. 박정무의 효행을 기려 1860년(철종 11)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 효자문이 세워졌다고 한다....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순호(順浩), 아호는 동암(東菴). 조선 초기의 문신인 공효공(恭孝公) 박중손(朴仲孫)의 후손이다. 박한규(朴漢圭)는 지금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의 머리에 종기가 났을 때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어 치료하였다고 한다. 한겨울에 잉어를 맛보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위하여 두...
-
충청북도 제천시 영천동과 강제동을 연결하는 다리. 사천교는 교량이 위치한 장평천의 또 다른 이름인 사천을 따서 이름 붙였다. 장평천은 모래가 많아서 ‘사천’, ‘사계’, ‘모라내’라고도 하며, 이에 따라 사천교도 ‘사계교’, ‘모라내다리’ 등으로 불린다. 현재의 사천교는 4차선 교량으로 총연장은 60m, 총 폭은 25m, 유효 폭은 19m이다. 높이는 5.8m...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경재(敬哉), 호는 관수재(觀水齋). 서상무(徐相懋)[1856~1925]는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태어났다. 동학 농민 운동 때에는 진압군을 일으켜 동학 수령을 체포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제천의 을미 의병에 참여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이끌고 만주 지역으로 건너간 이후 벼슬길에 올라 순릉참봉(順陵參奉)...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사연(士淵). 문정공 신현(申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신한주(申翰周)이며, 부인은 최응숭(崔應嵩)의 딸 충주 최씨(忠州崔氏)이다. 신부(申溥)[1764~?]는 제천에서 살았다. 1787년(정조 11)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성균관 전적·예조 좌랑 등을 거쳐 사헌부와 사간원의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미암(亹巖). 고려 말 문신인 정양(定襄) 오방우(吳邦祐)의 후손이다. 오진호(吳鎭鎬)는 밤중에 침입한 도적이 아버지를 해치려 하자 가로막으면서 흉기를 빼앗다가 손가락 세 개를 잃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술과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공양하였으며, 아버지가 병을 얻어 여러 해 동안 고통을 겪자 제단을 모으고 백일기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옹암(甕巖) 원천상(元天常)의 후손이다. 원탁(元倬)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다. 1618년(광해군 10) 명과 후금의 전쟁 중, 명에 조선군 원병이 출전할 때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였다. 부차(富車)[현 랴오닝성 무순(撫順) 일대] 싸움에서 패전하고서 강홍립은 항복하였으나 원탁은...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벽파(碧波). 유번(柳藩)의 후손이다. 유진(柳璡)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을 당하자 의병을 인솔하여 남한산성을 호위하다가, 광주(廣州) 쌍령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벼슬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
조선 전기 제천에 거주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시숙(時叔)·경시(景時), 호는 백암(白巖). 증조할아버지는 윤석보(尹碩輔)이고, 할아버지는 생원 윤덕형(尹德亨)이며, 아버지는 찰방 윤신(尹信)이다. 어머니는 유영백(劉榮伯)의 딸 청풍 유씨(淸風劉氏)이다. 부인은 금극인(琴克仁)의 딸 봉화 금씨(奉化琴氏)이다. 아들로 감사를 역임한 윤조원(尹調元)을 두었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이중(伊仲), 호는 단산(丹山). 감사 윤조원(尹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생국(尹生國)이다. 윤학신(尹學信)[1769~1830]은 단산(丹山)의 남쪽에 은거하면서 부모님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다.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문집 9권이 있다....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직(公直), 호는 단애(丹崖). 증조할아버지는 강양군(江陽君) 이숙(李潚)이며, 할아버지는 희안 군수(喜安郡守) 이집(李輯)이고, 아버지는 금천 군수(錦川郡守) 이감(李瑊)이다. 어머니는 김윤장(金允章)의 딸로 서흥 김씨(瑞興金氏)이다. 부인은 조언충(趙彦忠)의 딸로 배천 조씨(白川趙氏)이다. 이경중(李敬中)[1...
-
제천에 영당이 있는 조선 후기 의관.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 이색의 6세손이며, 문열공 이계전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이영(李泠)이며, 어머니는 김근(金瑾)의 딸 흥양 김씨(興陽金氏)이다. 부인은 조서린(趙瑞鱗)의 딸 직산 조씨(稷山趙氏)이다. 아들로 한풍군(韓豊君) 이영남(李英男)이 있다. 이공기(李公沂)는 16세기 말엽에 살았던 사람으로, 외과 처치술에...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제이(濟而)·제경(濟卿), 호는 우헌(愚軒). 증조할아버지는 이장영(李長英)이며, 할아버지는 이구성(李九成)이고, 아버지는 이문정(李聞政)이다. 어머니는 김하석(金夏錫)의 딸 상주 김씨(尙州金氏)이다. 부인은 유덕옥(柳德玉)의 딸 전주 유씨(全州柳氏)와 최후진(崔後進)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이광세(...
-
개항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모명(冒名)은 이도희(李道熹), 자는 성관(聖寬), 호는 두남(斗南). 경창군(慶昌君)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색(李惟穡)이며, 아버지는 이덕초(李悳初)이다. 이도철(李道徹)[1852~1895]은 제천시 천남동 출신이다. 행장에는 1853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천에서 생활하다 제천향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1893년...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증조할아버지는 호성공신 이공기(李公沂)이고, 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 이빈(李霦)이다. 어머니는 진주 유씨(晉州柳氏)이다. 부인은 신윤극(辛贇克)의 딸 영월 신씨(寧越辛氏)이다. 아들로 이만휘(李萬輝)가 있다. 이두용(李斗龍)은 1723년(경종 3) 용양위 부호군, 한천군(韓川君)에 봉하여졌다. 묘소는 제천시에 있다. 아들인 이만...
-
조선 후기 제천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초(善初), 호는 화암(花巖).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우춘(李遇春)이다. 이숙(李俶)[1568~1645)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음서로 찰방에 이르렀다. 인목대비 서궁 유폐 등 광해군이 패륜을 저지른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고...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좌의정 이행(李荇)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의정부 좌찬성에 증직된 이안성(李安性)이다. 이식(李植)[1584~1647]은 1610년(광해군 2)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1613년 세자시강원 설서를 거쳐 1616년(광해군 8) 북평사(北評事)가 되고, 이듬해 선전관청 선전관을 지냈다. 1618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문중(文仲), 호는 오정(梧亭). 이의병(李宜炳)은 숙종 때 적성 현감을 지냈으며, 글씨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
조선 후기 제천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수(大叟), 호는 파서(坡西). 이경중(李敬中)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명식(李命式)이며, 할아버지는 이진오(李震五)이고, 아버지는 이송령(李松齡)이다. 어머니는 윤상림(尹商霖)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부인은 허념(許恬)의 딸 양천 허씨(陽川許氏)와 백상덕(白尙德)의 딸 수원 백씨(水原白氏)이다....
-
개항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화좌(華佐). 아은(啞隱) 이정악(李挺岳)의 후손이다. 이직현(李稷鉉)은 헌종 때에 음사로 관직에 들어가 여러 차례 승진하여 공조 참판에 이르렀다.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 부여 영강정(映江亭)을 건립하였고, 1870년(고종 7) 청풍 부사로 재직할 때에는 제천 청풍 한벽루, 제천 금남...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회(景晦)·회부(晦夫), 호는 평천재(平泉齋). 세종의 아홉째 서자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의 후손이며, 묵전당(黙全堂) 이시만(李時萬)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참봉을 지낸 이태제(李泰躋)이다. 이창현(李昌顯)[1723~?]은 1750년(영조 26)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세자익위사의 세마(洗馬)를...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에 있는 고려 시대 토석 혼축 산성. 작성산성은 제천시 금성면 포전리와 성내리의 경계인 작성산 정상부와 계곡 상부를 이용하여 쌓은 성으로 둘레는 약 1100m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의 고적편에 “작성(鵲城)이라 하고 금수산 북쪽 기슭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성으로 그 안에 석탑이 있다”고 하였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공사(孔嗣). 단양군(丹陽君) 장효원(張孝元)의 후손이다. 장봉남(張奉男)은 임진왜란 때 공을 많이 세웠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반란이 일어나 왕이 공주로 피난을 가게 되자 자천하여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 장만(張晩)을 도와 이를 진압하였다. 이때의 전공으로 충훈부 사에 이르렀다. 이괄...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만창(晩昌), 호는 태백산인(太白山人). 할아버지는 강릉 부사를 역임한 정종명(鄭宗溟)이고, 아버지는 정양(鄭瀁)이다. 부인은 민광훈(閔光勳)의 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정보연(鄭普衍)[1637~1660]은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자질과 품성이 뛰어나고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나 2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처음에는...
-
제천에 거주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 증조할아버지는 정진(鄭振)이며,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정언신(鄭彦信)이고, 아버지는 정율(鄭慄)이다. 동생인 정세구(鄭世矩)는 사마시와 문과를 거쳐 감사를 역임하였으며, 아들인 정담(鄭儋)은 사마시를 거쳐 뒤에 영월 군수에 이르렀다. 정세규(鄭世䂓)[1583~1...
-
충청북도 제천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안숙(晏叔), 호는 부익자(孚翼子)·포옹(抱翁). 할아버지는 정철(鄭澈)이고, 아버지는 강릉 부사를 역임한 정종명(鄭宗溟)이다. 정양(鄭瀁)[1600~1668]은 1618년(광해군 10)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 삼척에서 은거 생활을 하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겸(子謙), 호는 회와(晦窩)·겸재(謙齋). 증조할아버지는 정양(鄭瀁)이며, 할아버지는 정보연(鄭普衍)이고, 아버지는 정천(鄭洊)이다. 어머니는 심약명(沈若溟)의 딸 청송 심씨(靑松沈氏)이고, 부인은 이교악(李喬岳)의 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이다. 정익하(鄭益河)[1688~1758]는 1717년(숙종 43) 사마...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도이(道以), 호는 건재(健齋)·임정(林汀). 정양(鄭瀁)[1600~1668]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택현(鄭澤鉉)이고, 아버지는 정해기(鄭海箕)이다. 아들로 의병에 참여한 정운호(鄭雲灝)[1862-1930]가 있다. 정일원(鄭一源)[1827~1889]은 1870년(고종 7)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숭릉 령(崇陵...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에 있는 석축 산성. 제비랑산성은 해발 502.2m의 형제봉과 그 서쪽 작은 능선의 봉우리를 돌아 북향한 계곡 상단을 에워싸서 축조한 마안형(馬鞍形)의 산성으로 둘레는 1㎞ 가량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제비랑고성(齊非郞古城)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상고(上古)에 성묵산(城墨山)[제비랑산...
-
충청북도 제천시 신동과 산곡동, 봉양읍 장평리와 삼거리에 걸쳐 있는 산. 제비랑산(齊飛郞山)에는 제비왕이 피난을 위해 쌓았다는 산성이 있다. 정상부인 형제봉 고지는 천혜의 자연 망대이다. 제비랑산 서쪽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는 제천 시내를 비롯하여 원주, 충주, 청풍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제비랑산은 상고 시대에 제비왕이 처음으로 성곽을 축성하면...
-
임진왜란 때 청풍 지역의 취봉치(鷲峰峙)에서 벌어졌던 전투. 1592년 4월에 왜군이 수만의 병력으로 침공해 오자 오랜 승평(昇平) 세월에 잠겨 있던 조선의 관군이 무너져 버렸다. 이에 향촌 사회에서 성장해 온 재지 사족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섰다. 의병들은 보잘 것 없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도 지리에 밝고 향토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여 임진왜란의 전개 과정에 큰 변수가 되...
-
한계군(韓溪君) 이공기(李公沂)는 선조 대에 『의림촬요(醫林撮要)』를 저술한 양예수(楊禮壽),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주 저자인 허준(許俊)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선조를 진찰한 조선의 저명한 어의이자 의관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수의(首醫)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어의로서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허준과 같이 호성공...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 양천(陽川). 자는 계량(季良), 초당 허엽(許曄)의 후손이다. 허필(許鉍)은 숙종 대에 출사하여 덕천 군수가 되었으나 세상의 어지러움을 비관하여 향리로 돌아왔다.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고 마을 사람들을 화목하게 대하여 칭찬이 높았다. 만년에는 동중추부사가 되었으며, 명환(名宦)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
임진왜란 당시 제천 취봉치 전투에서 순절한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상고(尙古). 아버지는 진천 현감 홍인지(洪仁祉)이다. 부인은 한양 조씨(漢陽趙氏)이고, 아들로 홍여수(洪汝守)가 있다. 홍원(洪遠)[1549~1593]은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충주 화개산에서 크게 이기고 1593년(선조 26) 아들 홍여수와 제천시 한수면 서...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진주(晉州). 시아버지는 강성학(姜聲鶴)이고, 남편은 강상구(姜商求)이다. 황광자(黃光子)는 17세에 결혼하였다. 20세 때 남편이 물에 빠져 죽었으나 늙은 시부모와 어린아이 때문에 따라 죽지 못하였다. 남편을 장사 지내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참배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무덤을 보살피는 등 정성이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