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에 있는 진안 이씨의 동족 마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사인암 마을은 진안 이씨에 의해 형성되었다. 진안 이씨의 인구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 943호에 312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라북도에는 192호에 643명, 진안군에는 58가구에 156명이 거주하고 있다. 거석리는 부귀면에 속한 법정리로, 본래 진안군 내면 지...
-
고려 후기 진안에서 활약한 의병. 고윤덕(高允德)[?~?]은 고려 후기 진포를 통해 내륙으로 쳐들어온 왜구가 진안 지역을 약탈하였을 때 염군리(廉君利)와 더불어 현령 피원량(皮元亮)을 도와 용담현의 남쪽에 목책을 세웠다. 그리고 돌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여섯 곳에 돌을 쌓아 놓고서 왜적이 쳐들어오면 돌을 내려뜨려 분쇄하고자 하였다. 적이 이쪽의 방비가 튼튼한 것을 엿보고...
-
고려 후기 용담 현령을 지낸 문신. 김봉린(金鳳麟)[?~?]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담현편 ‘명환(名宦)’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공민왕 때 최영(崔瑩)에게 명하여 6도를 순찰하게 하였다. 최영이 지나가는 곳에 번진(藩鎭)의 목사와 수령들이 겁을 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김봉린이 홀로 태연하게 응대하여 넘기니, 도내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당시의 모든 지방...
-
전라북도 진안군 옥천사에 배향된 고려 말 조선 초기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초명(初名)은 한생(漢生), 호는 이헌(怡軒). 시호는 문정(文靖).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시조(始祖) 성인보(成仁輔)의 현손(玄孫)으로 할아버지는 전객사 부령(典客司 副令)을 지낸 성공필(成公弼)이고 아버지는 판도 총랑(版圖摠郞)을 역임한 성군미(成君美)이다. 어머니는 삼사 좌윤(三司左尹...
-
고려 말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왜구(倭寇)는 삼국 시대부터 출현하였지만, 고려 시대에는 고종(高宗) 때부터 시작하여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빈번하게 침략하였다.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재위 1349~1351] 이후 1392년(공양왕 4)까지 약 40여 년 간이며, 그 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 간[1374~1388]에 가장 극심...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있는 용담 향교의 대성전. 용담 향교 대성전은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용담 현령 최자비(崔自俾)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용담 향교 대성전은 진안군 동향면...
-
고려 후기 용담 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헌숙(憲叔), 호는 동정(桐亭). 고려 시대 성리학을 익힌 윤택(尹澤)의 손자이다. 5대조 윤량비(尹良庇)는 호장 출신이었고 4대조 윤해(尹諧)는 과거에 합격하여 가문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아버지는 윤귀생(尹龜生)이다. 아들은 윤회(尹淮)이다. 윤소종(尹紹宗)[1345~1393]은 1360년(공민왕 9)에...
-
고려 후기 전주 이씨 진안 입향조.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만상(晩祥)·정암(靖菴). 시조는 사공(司空) 이한(李翰)이고 아버지는 이용부(李勇夫)이고 형제로는 이린(李璘)이 있다. 『씨족원류』에는 이용부의 아들로 이준의(李俊義)와 이의방(李義方)이 기재되어 있다. 『씨족원류』와 전주 이씨의 계보를 수록하고 있는 『태조실록』 등에는 이거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거(李...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문평공 전문식의 묘. 전문식(全文軾)[?~?]의 호는 도은(都隱)이며, 본관은 천안(天安)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학과 도덕에 밝아 포은(圃隱) 정몽주는 그를 어지러운 세상의 큰 선비라는 뜻으로 탁세학종(濁世學宗)이라고 크게 칭찬하였다. 전문식은 문과에 급제하여 정당문학, 집현전 대제학을 지내고 상서사를 맡았다. 김농암...
-
고려 후기 남송에서 귀화하여 진안에 은거한 신안 주씨 시조.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주자(朱子)이고 할아버지는 안양후(安陽候) 주야(朱埜)이고 아버지는 광국후(光國候) 충무공(忠武公) 주거(朱鋸)이다. 아들은 추밀원밀직사(樞密院密直司)를 역임한 주여경(朱餘慶)이고 손자는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를 역임한 주열(朱悅)이다. 주잠(朱潛)[119...